‘라라랜드’엔 없고, ‘바빌론’에는 있는
영화 ‘바빌론’ 속 1920년대 파티장 모습. 영화 배우를 꿈꾸는 주인공 넬리(마고 로비)가 무아지경으로 파티를 즐기고 있다. 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 |
임현석 디지털이노베이션팀 기자 |
어떤 한 시절이 아름답게 느껴진다면, 그 이유는 뭘까. 그때 실제로 아름다웠던 풍경과 대상 자체의 속성에서 비롯하는 것일까, 아니면 한 사람의 내면이 대상을 예민하게 포착한 감수성의 흔적일까. 만약 둘 다라면 마음속에서 일어나는 화학작용의 배합은 어떻게 될까. 숱한 세월 속에서 유독 몇몇 순간만이 훗날 추억의 질료로 절취되는 까닭은 뭘까.
비범한 예술가는 여기에 구구이 대답하지 않는다. 아무것도 모르는 채로 한 풍경과 장면에 사로잡혀서 지난 일들을 오래 매만지는 운명만을 보여줄 뿐이다. 해석하지 않고 감정 속으로 전진한다. ‘바빌론’이 그런 영화다.
영화는 1920∼1950년대 할리우드 영화산업 태동기를 배경으로, 무성영화 스타가 유성영화로 넘어가는 격변기에 잊혀져 가는 이야기를 다룬다.
보통 이런 회고조 작품은 통속적인 공식을 따르는 법. 이전 시대의 찬란한 아름다움이 새 시대에 빛을 잃었다고 한탄하든지, 변화 속에서 소실된 훌륭한 덕성과 가치를 아쉬워한다든지. 극명한 대조 속에서 과거를 더 중요하고 의미 있는 것으로 부각하기 십상이다. 그럴수록 삼류 회고록에 가까워진다.
반면 바빌론은 그런 인위적이고 의도적인 대조가 허위라는 점을 정확히 인식한다. 바빌론이 조명하는 할리우드의 초창기를 옹호하기란 어렵다. 밤에는 환락 파티를 벌이고 다음 날 촬영 현장에서 술에 취한 채로 영화를 찍고, 캐스팅은 주먹구구다. 영화 산업 종사자의 권리 같은 것도 없다. 그곳에서 사람 목숨은 소품보다 사소하고, 촬영장은 제대로 통제되지 않는다. 시대가 지긋지긋함으로 온통 가득 차 있다.
본작을 연출한 데이미언 셔젤 감독은 자신의 대표작 ‘라라랜드’처럼 낭만적인 구석을 비출 듯하다가 결국 구역질 나는 이면으로 전환하며 어둠 속까지 깊숙하게 들어갔다가 빠져나오길 반복한다. 영화는 189분에 달하는 긴 러닝타임 동안 어둠과 낭만이 수시로 균형추를 맞춘다. 라라랜드엔 없던, 꿈 공장의 뒷단을 비추는 방식을 통해서다. 그러다 보면 결국 쇼 비즈니스에 대한 환멸이 부각된다.
그럼에도 누군가는 이 광기에 마음이 사로잡힌다는 점이 중요하다. 왜 우리는 어떤 순간과 대상에 매혹되는가? 모른다. 그러나 붙들린 마음은 결코 착시나 거짓이 아니다. 모든 종류의 사랑이 그렇듯 어딘가에 매혹되고 사로잡히는 마음은 본질적으로 불가해하다. 왜 사랑하는지 모르는 대상을 사랑할 수 있을까? 영화는 이것이 잘못된 질문임을 보여 준다. 대신 왜 사랑하는지 알 수 없음에도 빨려드는 감정이 본질적으로 사랑이라고 답한다. 영화는 하염없이 대상에 빠져드는 마음의 작용을 시작부터 줄곧 비춘다.
영화 도입부에서 환락과 욕망으로 가득 찬 파티에서 심부름꾼 매니(디에고 칼바)는 제멋대로인 배우 지망생 넬리(마고 로비)를 보고 단번에 사랑에 빠진다. 자신의 감정을 따르는 넬리의 생기와 광기는 유난하다. 넬리는 그저 되는 대로 살아갈 뿐이지만 이는 무성영화 속에선 타고난 천재성으로 발현된다. 매니는 넬리에게 속절없이 마음이 붙들린다.
영화 초반부 작품 속에서 스타로 가는 첫 단계에 접어든 넬리가 노래하고 춤추면서 빛날 때, 매니는 무성 영화배우 잭(브래드 피트)의 조수로 일하면서 그가 일하는 영화 촬영 현장에 카메라를 배달하기 위해 속도를 낸다. 넬리가 춤을 추다가 눈물을 흘리면서 자신의 에너지를 주체하지 못할 때, 매니는 꿈을 향해 정직하게 나아간다. 이 장면은 비범함과 범속함을 대조적으로 드러낸다. 매니가 결코 이해하지 못한 채로, 탁월함에 끌려가게 될 운명을 암시하면서.
바빌론을 통해 예술이 한 시대를 망각에서 건져 올리는 방식을 본다. 누군가는 K팝이 궁극의 예술로 진화하더라도, 여전히 싸이월드 시대의 소몰이 창법 음악 속 감정만 못하다고도 할 수 있다. 저마다의 진실은 다 다르니까. 그러나 한 시대의 매혹된 이가 이를 미화하지도 조롱하지 않고 누군가를 그 시대 감정으로 데려갈 수 있느냐는 다른 문제다. 영화를 보면 개인의 내면에 남긴 저릿한 자국을 이야기하고 싶어하는 마음만큼은 이해할 수 있게 된다. 많은 예술가들이 그 유혹에 빠져서 숱하게 실패하곤 한다. 그럼에도 누군가는 이야기를 다시 시작한다. 그런 마음이 영화의 역사를 만들어왔다. 누군가는 환락과 환멸의 도시 바빌론을 떠나고, 다시 돌아오고 이야기는 쌓인다.
임현석 디지털이노베이션팀 기자 lhs@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