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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애주가(愛走家)’…남 이기지 않아도 자신과 경쟁할 수 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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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기해 씨는 시간만 나면 혼자 달린다. 어릴 때부터 달리기를 좋아했던 신 씨는 태권도 선수생활도 했지만 육아에 집중하면서 다시 달리고 있다. 신기해 씨 제공.

어려서부터 태권도를 했다. 고등학교 때부터는 태권도 선수로 활약하기도 했다. 결혼해 아이를 낳은 뒤에는 달리기에 심취해 있다. 평생 운동을 생활화하고 있는 신기해 씨(33)는 스스로를 ‘애주가(愛走家)’라고 부른다. 가장 쉽게 할 수 있으며 운동효과도 좋은 달리기가 너무 좋다.


“어릴 때부터 달리는 게 좋았습니다. 태권도를 하긴 했지만 친구들과 뛰어 노는 것도 즐겼죠. 각종 릴레이 대회에도 나갔고, 단축마라톤대회에 출전해서 입상하기도 했어요. 고등학교 1학년부터 태권도 선수생활을 하면서 달리기를 하지는 않았지만 제 몸 속엔 그 유전자가 그대로 남아 있었던 것 같아요.”


어렸을 때부터 태권도는 기본으로 하는 것이라 했지만 선수생활을 할 생각은 없었다. 중학교 졸업할 무렵 ‘어차피 할 것이라면 선수하는 게 좋겠다’는 주위의 권유로 선수생활을 시작했다. 하지만 유도 태권도 명문 용인대에 들어가서 선수생활을 접었다.


“대학에 가서도 전국대회에서 메달도 획득해 국가대표까지 되려는 생각을 했죠. 하지만 뭐 그런 것 있잖아요. 엘리트선수가 되니 다른 것은 모두 포기해야 하고 운동만 해야 하는…. 태권도에만 매몰돼 살아가는 게 싫었어요. 대학 1학년 때 인턴으로 미국에 가서 태권도를 지도할 기회가 있었죠. 그 때부터 다양한 경험을 해보고 싶다는 결심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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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권도 공인 5단 신기해 씨가 최근 한 유튜버 방송해 출연해 머리 위에 있는 사과를 발차기로 차고 있다. 신기해 씨 제공.

2007년 미국 캘리포니아로 갔다. 태권도장 3군데를 돌아다니며 지도했다. 돌아와 휴학하고 아르바이트로 돈을 모아서 2009년 다시 미국으로 떠났다. 펜실베이니아 쪽 대학에서 어학연수를 하며 태권도를 지도했다. 시카고까지 가서 태권도 마스터로 활약한 뒤 2010년 귀국했다. 그는 태권도 5단, 유도 1단, 공인 6단이다.


“이렇게 미국에 오고 가다보니 대학교 생활에 집중하지 못했어요. 방황한 것은 아니고 계속 새로운 것을 찾았지요. 그래서 아직도 대학을 졸업하지 못했습니다.”


결혼하고 아이를 낳으면서는 육아에 집중하고 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 19)이 터지기 전까진 요가를 했다.


“근질거리는 몸을 바로잡기 위해 다소 거칠다는 아쉬탕가요가를 시작했어요. 재미가 붙으려고 하는데 코로나19가 터진 겁니다. 실내 활동에 제약을 받기 시작하면서 학원을 못 가게 돼 아쉬웠어요. 그 때 시작한 게 달리기입니다.”


지난해 11월이었다. 대부분 실내 스포츠를 할 수 없게 되면서 혼자 즐길 수 있는 스포츠를 찾았다. 그 때 어릴 때부터 좋아했던 달리기를 하기로 결정한 것이다.


“집이 서울 도림천 근처에요. 시간만 있으면 바로 나가서 달릴 수 있었죠. 그래서 달리기 시작했습니다. 달리니까 너무 좋았습니다. 스트레스를 날리는 것은 물론 살아 있음을 느낄 수 있었죠.”


거친 숨을 몰아쉬며 10km를 달리고 나면 날아갈 듯 기분이 좋았다. 계속 운동을 해 와서인지 제법 잘 달렸다. 주위에서 ‘엄지 척’을 하며 응원해줬다.


“달리기, 마라톤은 자기와의 싸움이라고 하잖아요. 전 태권도를 했는데, 태권도에서는 상대를 눌러야 합니다. 마라톤은 순위도 있지만 제 자신만의 목표를 정할 수 있어요. 예를 들면 개인 최고기록 경신이 있죠. 굳이 남을 이기지 않아도 저 자신과 경쟁할 수 있어 좋아요. 일종의 원윈(Win-Win) 스포츠조. 전 혼자 달리는 것도 좋고, 남들과 같이 달리는 것도 좋아합니다. 달리기는 뭐든 가능합니다.”


신 씨는 속칭 ‘혼뛰족(혼자 뛰는 사람)’이다. 육아하느라 동호회에 가입해 특정 시간에 나갈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도 즐겁다.


“전 한번 달릴 때 12km를 달립니다. 체조를 한 뒤 첫 1km는 워밍업으로 달리고, 10km를 제대로 달리고, 다시 마지막 1km는 웜다운으로 달립니다. 많이 달릴 땐 1주에 4~5회, 한 달에 총 280km까지 달린 적도 있어요. 주로 아침에 아이 유치원에 보낸 뒤 달렸는데 요즘엔 코로나19로 유치원에 보내지 않아 제가 돌봐야 해 남편이 퇴근하고 오면 바통터치하고 달립니다.”


달리면서 뭔가 의미 있는 일이 없을까 인터넷 서핑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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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기해 씨(오른쪽)가 한 시각장애인 레이스 도우미를 하고 있다. 그는 빛나눔동반주자단에 가입해 시각장애인들을 돕는 일을 하고 있다. 신기해 씨 제공.

“시각장애마라토너와 함께 달리는 마라톤 동반주자(가이드러너)가 눈에 들어왔어요. 오래전부터 시각장애인들을 도와주고 있는 김영아 한국시각장애인마라톤클럽 감독님을 알게 됐죠. 그래서 저도 다른 사람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가이드러너가 되기로 했습니다. 김 감독님께 배운 것은 아니지만 여기저기 찾다 빛나눔동반주자단이란 곳을 알게 됐습니다. 김 감독님을 롤 모델 삼아 저도 가치 있는 일을 하기로 결정했습니다.”


하나은행 직원인 김영아 씨(48)는 2000년대 초반부터 달린 마스터스마라톤계의 유명 스타다. 2007년부터 시각장애마라토너와 함께 뛰는 마라톤 동반주자 활동을 시작했고, 2016년부터는 훈련 코치로 활약했다. 매년 시각장애마라톤체험 프로그램을 실시하고 있다. 빛나눔동반주자단도 시각장애인들에게 다양한 운동 기회를 주고 있다.


“코로나19로 활동을 못하다 지난달부터 다시 시작했어요. 매월 셋째 주 토요일 서울 잠실올림픽주경기장 보조경기장에서 시각장애인들을 돕는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어요.”


신 씨는 남편도 달리기에 입문시켰다.


“제 남편은 결혼 전 사이클 마니아였습니다. 그런데 결혼한 뒤 10kg이 넘게 체중이 불었어요. 남편 운동을 시킨다는 것보다는 그냥 한마디 했죠. 제가 좀 더 잘 달리려고 연구하다보니 여자들의 경우 남자 페이스메이커가 있으면 기록 단축이 빠르더라고요. 올 봄쯤 그런 얘기를 남편에게 했더니 ‘조금만 기다려’라며 혼자 달리더라고요.”


남편이 3개월 새 9kg이나 뺐다. 5km를 1km당 3분40초 페이스로 달릴 수 있게 됐다. 남편이 생일 선물로 뭐가 필요하냐고 했을 때 ‘나랑 달려주면 된다’고 했고 9월 생일날 남편과 함께 21.0975km 하프코스를 달렸다.


“1km를 4분50초대 페이스로 달렸습니다. 하프를 1시간 43분 정도에 완주했습니다. 그 정도면 제 페이스메이커로 합격점이었죠. 역시 운동을 좋아해서인자 잘 달리더라고요. 좀 더 빨리 달리면 제 기록 단축에 큰 도움이 될 것 같아요. 남편에게 다른 선물은 필요 없다고 했어요. 앞으로 틈날 때 저랑 달려주면 된다고 했죠. 이젠 평생 함께 달려야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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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기해 씨가 11월 13일 울산에서 열린 제18회 태화강국제마라톤대회 10km에 출전해 질주하고 있다. 신 씨는 여자부에서 40분 43초로 2위를 했다. 신기해 씨 제공.

신 씨는 11월 13일 울산에서 열린 제18회 태화강국제마라톤대회에 출전해 10km 여자부에서 40분 43초로 2위를 했다. 코로나19 탓에 대회가 열리지 않아 처음 참가한 공식대회였다.


“달리기 동호회에서 만든 이벤트 대회에 경험삼아 출전하기는 했지만 공식대회 출전은 처음이었어요. 첫 대회에서 좋은 기록과 성적을 내서 기쁩니다.”


신 씨는 마라톤 42.195km 풀코스 첫 대회에서 마스터스마라토너 꿈의 기록인 ‘서브스리(3시간 미만 기록)’를 하는 게 목표다.


“지금은 5km와 10km에 집중하고 있습니다. 엘리트 선수들도 이 기록이 좋아야 결국 풀코스 기록도 좋다고 합니다. 이 기록을 바짝 당겨놓고 거리를 늘려 3년 안에, 늦어도 마흔이 되기 전에 서브스리 달성하는 게 목표입니다.”


집에 트레드밀도 있어 틈나는 대로 걷고 달린다. 생활 속에서 맨몸 스¤, 팔굽혀펴기 등 근육운동도 한다. 기록이 절대 기준은 아니지만 목표를 세우고 조금씩 달성해가는 재미도 있다. 달리면서 체력도 탄탄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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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기해 씨는 틈나는 대로 집에 있는 트레드밀에서도 달리고 걷는다. 신기해 씨 제공.

“건강해야 뭐든 할 수 있습니다. 체력이 있어야 어떤 힘든 일도 버틸 수 있죠. 또 진부하지만 ‘건강한 신체에 건전한 정신이 깃든다’는 말도 있잖아요. 달리면 머리가 맑아져요. 몸도 튼튼, 마음도 튼튼, 평생 달릴 겁니다.”


양종구 기자 yjong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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