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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한상황으로 내몰리는 사춘기 여고생, 너무 자책하지 말라고 말하고 싶었죠”

올해 창비청소년문학상 ‘유원’의 백온유 작가

“화재사건에서 살아남은 주인공, 트라우마와 자책감 사이 방황

충분히 자기혐오에 빠질 수 있어… 함부로 청소년 대하지 마시길”

동아일보

트라우마를 가진 청소년의 성장기를 그려낸 백온유 작가. 창비 제공

동아일보

불이 난 아파트 11층에서 젖은 이불에 싸여 떨어진 아이가 기적적으로 살아났다. 빠른 판단력으로 자신을 희생하고 동생을 살린 언니와 온몸으로 아이를 받아낸 행인 덕분이었다. 구조된 이 여섯 살 아이에게 언론의 이목이 쏠렸다. 10여 년 전 그 사건으로 여전히 ‘이불아기’로 기억되는 소녀가 이제 고등학생이 된 유원이다.


올해 창비청소년문학상 수상작인 ‘유원’(사진)은 교우관계와 입시에 치이는 것만으로도 한창 예민할 사춘기의 소녀가 잊을 수 없는 그날의 트라우마와 죄책감 사이에서 방황하는 특별한 성장기를 응집력 있게 그려낸다.


1일 전화로 만난 작가 백온유 씨(27)는 “큰 도움을 받았기 때문에 미워하면서도 같이 가야 하는 존재가 누구에게나 한 명쯤 있을 것 같다”며 “그런데 만약 그 사람이 대외적으로는 의인으로 알려진 이라면 어떨까 하는 생각에서 소설이 출발했다”고 말했다. 소설에선 그런 존재가 유원을 얼결에 구하다 불구가 된 트럭 기사 아저씨다.


언론에 의인으로 보도된 아저씨는 답지한 성금을 금방 탕진해버리고 툭하면 유원의 가족 앞에 나타난다. 유원은 사람들에게 “쟤가 걔구나” 하는 호의와 동정과 함께 ‘언니 몫까지 살라’는 압박을 받는 것이 힘겹다. “나는 나를 살린 우리 언니가 싫어. 나는 나를 구해 준 아저씨를 증오해”란 소설 속 내밀한 고백이 그의 속마음이다.


작가는 등장인물들이 관계의 모순과 상처를 극복해 가는 과정을 그리면서 10대 특유의 예민한 심리 변화를 잘 포착한다. 그는 “극한 상황으로 내몰리다 보면 혼자 비뚤어지고 오해하고 자기혐오가 깊어지는 일들이 그 시기엔 충분히 일어날 수 있다고, 그러니 너무 자책 하지 말라고 말해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백 씨는 등단도 장편동화로 했다. “딱히 성장소설을 염두에 두고 쓴 적은 없지만 소재가 떠올랐을 때 거기에 맞는 이상적인 주인공이 그 연령대 아이들이어야 가장 잘 어울렸다”고 설명한다.


“어릴 때 느끼는 억울함이나 서러움은 오히려 컸을 때보다도 더 깊고 클 수 있는 것 같아요. 어린이나 청소년이라고 절대 함부로 해선 안 된다는 걸 꼭 한 번 말해보고 싶었어요. 흔히들 ‘아들은 아빠처럼 산다’고 하는데 어떤 아이에겐 너무 큰 좌절과 상처가 될 수 있는 말 아닌가요?”


1990년대 생인 작가에겐 아직 어른의 세계보다 청소년의 세계가 심리적으로 더 가깝기도 하단다. 이금이 구병모 손원평 등의 청소년 소설을 즐겨 읽었고, 그래픽노블도 좋아한다. 그는 “공교롭게도 앞으로 쓰고 싶은 이야기도 청소년기에 해야 할 이야기들”이라며 “감각을 많이 열어두고 그 시기 아이들의 생생한 목소리를 담아내고 싶다”고 말했다.


박선희 기자 teller@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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