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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르디아스의 매듭

동아일보

카타리나 프리치 ‘쥐 왕’, 1993년.

사람보다 큰 검은 쥐들이 원을 그리며 빙 둘러 서있다. 바깥쪽을 향해 몸을 세운 채 앞발을 치켜들고 있다. 앞으로 나가고자 하나 꼬리가 한데 묶여 있어 꼼짝할 수가 없다. 독일 조각가 카타리나 프리치의 ‘쥐 왕’은 강렬한 이미지와 압도적인 스케일로 1999년 베니스 비엔날레에서 큰 주목을 받았다. 작가는 왜 하필 쥐를 작품의 주제로 삼은 걸까?


프리치는 쥐뿐 아니라 뱀, 닭, 코끼리, 교황 등 누구나 알 수 있는 형상 위에 검은색이나 강렬한 원색으로 칠을 한 조각으로 유명하다. 전설이나 동화에서 작품의 영감을 얻는 그는 이 작품도 어린 시절 들었던 쥐 왕의 이미지를 형상화했다. 쥐는 불교 문화권에서는 근면과 지혜, 풍요의 상징이지만, 서양에서는 오랫동안 흑사병과 연관된 나쁜 징조로 인식돼 왔다. ‘쥐 왕’을 뜻하는 독일어 ‘라텐쾨니히(Rattenk¨onig)’는 꼬리가 서로 묶여 있는 쥐의 무리를 말한다. 일련의 불쾌한 것, 여러 사건의 얽힘 등을 비유할 때 쓰는 말이다. 작가는 이 쥐들이 자신의 자화상이며 ‘고르디아스의 매듭처럼 너무 꼬여서 도저히 빠져나갈 수 없는 상황’을 표현했다고 말한다.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고르디아스는 자신의 수레를 신전 기둥에 복잡한 매듭으로 묶어두었던 왕이다. 신탁은 이 매듭을 푸는 자가 아시아의 왕이 될 거라 했고, 많은 이들이 도전했지만 모두 실패했다. 마침내 이 매듭을 푼 사람이 나타났는데 그가 바로 알렉산더 대왕이다. 알렉산더는 사실 매듭을 푼 게 아니라 단칼에 잘라버렸다. 여기서 유래한 고르디아스의 매듭은 복잡해 보이는 문제를 발상의 전환을 통해 쉽게 해결하는 것을 비유하는 말이 됐다.


작가의 메시지는 명확해 보인다. 이 쥐들은 오랜 시간 함께 있어 꼬리가 서로 유착된 운명 공동체다. 이대로 있다간 전멸할 게 뻔하다. 살기 위해선 결단을 내려야 한다. 일이든 관계든 복잡하고 어려운 상황은 누구에게나 찾아오는 법. 해결책은 의외로 간단할지 모른다.


이은화 미술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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