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에 나만의 휴식 공간 지은 동양학자 조용헌
문필가, 크리에이터라면 응당 있어야 한다. 아무것도 안 할 공간이.
이영민 에디터 / 한도희 포토그래퍼
강호의 동양학자, 건국대학교 문화콘텐츠학과 석좌교수, 신문 칼럼니스트 |
"긴장은 알려주지 않아도 누구나 저절로 해.
사는 과정이 다 긴장이거든.
그런데 릴랙스는 고도로 훈련된 전문가의 안내를 받아야 해.
릴랙스는 어려워.
누군가 “쉬어”라고 한다고 해서 쉬어지나?
그러니까, 어떻게 쉴지를 정해 주는 고도의 장치가 필요하다.
내 경우,
1번 숲속, 2번 구들장, 3번 차(茶)다.”
한중일 3국의 1000여 개 사찰과 고택을 찾아다닌 동양학자의 집이라서 궁금했다. 이 집을 간략히 소개한다면?
작은 집에서 인물 난다. 왜냐하면 공간에 기가 꽉 들어차니까. 만약 공간이 넓으면 있던 기도 퍼져버려 헐렁해질 것이다. 그래서 방, 공간이 너무 크면 못쓴다.
기가 밀도 높게 공간에 꽉 들어차면 뭐가 좋은가?
그 공간 안에 있는 사람이 한껏 농축된 기를 오롯이 받을 수 있다. 누워만 있어도 기가 충전되니 이보다 더 좋은 곳이 또 있을까.(웃음)
이곳의 면적은 어느 정도인가?
약 50㎡(15평). 머물러보니 혼자 있기에는 이 정도가 적당하더라. 청소를 비롯해 이런저런 관리를 하는데 그 이상 규모면 버거워진다. 50정도면 기가 퍼지지 않고 응축되기에도 좋다.
이 집을 갖게 된 계기는?
한 스님이 지은 걸 매입했다. 2002년 때이니 벌써 21년이나 됐다. 믿을지 모르겠지만, 이 집을 매입하기 전에 꿈을 꿨는데 꿈속에 이 집과 형태가 비슷한 건물이 나왔다. 기분 좋은 꿈이었고, 꿈속의 집을 현실에서 찾고 싶어졌다. 방방곡곡을 수소문한 끝에 이 집을 발견했다.
스님이 지은 집이라니, 뭔가 신비한 기운이 느껴진다
그 스님은 환속한 분이다. 절에 있다가 결혼한 이후에는 아파트에 사신다. 이 집을 지을 때에도 절에서 지내다 자신의 공간을 하나 마련하고 싶어 지었을 뿐이다. 애석하게도 이 집에는 어떤 신비한 기운이나 특별한 건축 스토리는 없다.
꿈에 나온 집을 구할 수 있었던 것은 이 집과 당신의 인연이 닿아 있기 때문이 아닐까?
그럴 수는 있다. 스님이 집 짓고 잘 활용하고 있던 곳을 내가 나타나 대뜸 팔라고 하니 황당했을 거다. 그래도 인연이 있었으니 결국 내 집이 되지 않았을까?(웃음) 처음에 스님은 “진짜 살 거냐?” 물었고, 나는 “산다”고 했다. “이유가 뭐냐” 묻길래 “꿈에 나와서 산다”라고 했다. 스님은 의심스러웠는지 또 한 번 “살 거냐”라고 물었다. 나도 계속해서 “산다”고 대답했다.
이 집에서 가장 마음에 든 건 뭔가?
외관이 자연스럽다. 황토로 되어 있어 색감이 편안한 느낌을 주고, 손으로 덕지덕지 바른 듯한 질감이 인위적이지 않아서 좋다. 그렇다고 다 쓰러져가는 초가집 같은 느낌은 아니다. 검이불루(儉而不陋, 검소하되 누추하지 않다)는 이 집의 가장 큰 매력이다.
‘검이불루’를 실현하기 위해 평소 관리를 철저히 하나?
그렇다. 황토집은 시간이 지나면서 황토가 조금씩 떨어지니까 가끔 흙을 덧발라 주는 정도로 손질을 해야 한다. 그 외에는 청소 정도만 하고 있다.
집의 용도는 무엇인가?
나만을 위한 공간. 문필가로서 누구의 간섭도 받지 않는 공간이다. 나처럼 문필가, 콘텐츠 크리에이터들은 게을러야 한다. 부지런하면 안 된다. 일상생활에서 70%는 멍때리고 있어야 한다. 누워서 낮잠 자거나 농담 따먹기나 하고 시간을 보내야 한다. 지금의 나처럼 이렇게 차나 마시고, 때로는 팝콘이나 먹으면서 살아야 한다.
이유가 있나?
그래야 창의적인 생각이 나온다. 그렇다고 아무것도 안 하는 건 아니다. 누워서도 생각은 한다. 남들이 볼 때는 노는 것 같은데 사실은 아니다. 생각을 하고 있으니까. 지금도 머릿속에는 인터뷰의 기승전결을 구상하고 있다.
그렇게 해서 만족할 만한 성과를 냈나?
오늘의 내가 있는 거다. 문필가가 자기 공간이 없으면 중간에 창의력이 고갈될 수 있다. 서울에서 아스팔트 위를 걷고, 아파트에만 머물면 언젠가는 에너지가 고갈된다고 생각한다. 건강상 문제가 생길 수도 있다. 긴장이 누적되니까. 그래서 어떻게 긴장을 푸느냐가 현대인의 관건이다.
며칠을 주기로 오나?
많으면 한 달에 2~3회 온다. 한 번 오면 3~4일간 머물기 때문에 10일 이상 머문다고 보면 된다.
이 집의 이름을 ‘청운서당’이라고 지었다. 무슨 뜻인가?
내 호가 ‘청운(靑雲)’이다. ‘청운의 꿈을 안고’ 할 때의 청운. 호도 꿈에서 받은 거다. 공중에서 음성이 들렸다. “너의 호는 청운이다”라고. 결국 나 청운이라는 사람의 공부방이라는 뜻에서 청운서당이라고 지었다.
가장 좋아하는 공간은?
구들장이 있는 거실. 이 집은 방 1개, 거실 1개, 주방 1개, 화장실 겸 욕실 1개로 구성되어 있다. 그중 거실에 구들장을 깔았다. 아궁이에 장작을 때는 진짜 구들장인데, 뜨끈한 바닥에서 등을 지지면 피로가 풀린다. 긴장도 함께 풀린다. 우리가 등을 지져야 하는 이유다. 등이 뜨뜻해야 긴장이 풀린다. 우리는 머리로 신경을 쓰는데, 그 스트레스가 목뒤로 넘어가 척추에까지 영향을 준다. 거기서 노화가 시작된다고 생각한다. 등을 지져 긴장을 풀면 마사지를 하지 않아도 된다.
집이 숲에 둘러싸인 형세다. 숲 산책도 하나?
그렇다. 집 뒤에 약 661만1570㎡(200만 평) 지대에 70년 된 편백나무 숲이 있다. 우리나라 편백나무 숲으로는 최대 면적이다. 시간 날 때마다 그 숲을 한 시간 반 정도 거니는데, 편백나무의 피톤치드가 머리를 맑게 해준다. 문필가에게 산책은 필수이고, 숲속을 산책하는 것이라면 더할 나위 없다.
TIP. 고수가 알려주는 시골에 휴식 공간 마련하기
1. 잠을 자보고 결정하라
숙면을 취할 수 있다면 몸이 편안함을 느낀다는 증거다. 잠을 자보기 어렵다면 마음이 편안하고 기분이 안정되는지 살피면서 30분 정도 집 가운데에 앉아 있어본다.
2. 너무 큰 집은 구하지 말라
쉬기도 바쁜데 관리하느라 시간 다 뺏긴다. 약 66㎡(20평) 이내가 적당하다.
3. 단출하게 시작하라
100년 살려는 거창한 마음보다는 휴식 공간을 가져본다는 데 의미를 둬야 부담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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