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중식 서울대 교수의 1인 가구 트렌드 Ato Z
서울대학교 사용자 경험 연구실은 서울대학교 융합과학기술대학원 지능정보융합학과 소속이다. 이중식 교수를 필두로 한 이 연구실은 2019년 12월 신림동 고시촌에 셰어하우스를 열었고, 1인 가구 연구를 위한 리빙 랩을 오픈했다.
리빙 랩은 1인 가구의 삶을 데이터로 이해하고, 현장에서 찾은 생활 문제 중 일부를 정보통신기술(ICT)로 해결하려는 시도를 하고 있다. 최근 1인 가구 증가 트렌드를 묻기에 최적이다. 그 대표이자 국내 1인 가구 관련 콘텐츠의 최고 권위자 이중식 교수를 만나 물었다. 1인 가구, 그 실체와 중요성에 대하여.
서울대학교 융합과학기술대학원 교수, 혼자잘살기연구소 소장 |
혼자살기연구소인 줄 알았는데 혼자'잘'살기연구소다. 이름의 의미는?
1인 가구들이 자유롭고 편해 보이지만, 사실 늘 시간이 부족하고 번거롭다. 가사 생활 일체를 자기가 돌봐야 하니 그럴 수밖에. 그래서 1인 가구들이 하는 얘기 중에 가장 많이 나오는 것이 “쓰레기 버리다 보면 혹은 정리하다 보면 하루가 지나간다”는 말이다. 가족과 함께 살 때는 구성원이 나눠 하던 일을 혼자 해야 하는 것이 가장 큰 고충인 셈이다. 외롭기도 하고, 건강이나 안전문제도 걱정이다. 결국 4인 가구일 때는 보이지 않던 것이 1인 가구일 때는 부각되는 것이다. 그런 문제를 풀기 위해 연구를 거듭하다 혼자잘살기연구소를 설립했다. 혼자 ‘잘’ 살도록 하는 것이 목적이다.
혼자잘살기연구소는 일종의 셰어하우스 같다
그렇다. 신림동 고시촌에 있는 여성 전용 셰어하우스다. 오픈하자마자 빠르게 사람들이 입주했다. 보증금을 서울시에서 대고 월세만 내면 되는 시스템이기 때문이다. 원룸이나 일반 주택에 비해 저렴한 비용으로 이용할 수 있는 데다 여성이 사는 데 꼭 필요한 안전성이 보장되니 많은 이에게 주목받았다.
이곳을 1인 가구가 모인 ‘미래형 타운’이라고 언급했다. 그 의미는?
이 동네는 신림동 고시촌이라고 해서 고시를 준비하는 이나 취업 준비생이 모여 산다. 하숙이나 자취 같은 1인형 가구가 굉장히 많은 것이 특징이다. 1인 가구 비중이 무려 90%가 넘는다. 그러다 보니 낮에는 편의점 주인밖에 없다. 동네에 사람이 남아 있지 않은 것이다. 그러나 저녁 6시쯤 되면 하나둘 사람들이 걸어 들어오는데, 각자의 집에 들어간 뒤 길거리에 나오는 사람은 다시 아무도 없다.
이런 모습은 앞으로 더욱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데이터만 보더라도 현재 1인 가구 비중이 2020년 기준으로 전체 가구의 33%를 넘었고, 지금은 40%에 육박할 것으로 예상한다. 20년 전인 2002년에는 14%이던 걸 감안하면 엄청나게 늘어난 수치다. 아직 강남, 신도시 등은 3~4인 가구 형태가 많지만, 이는 1970~2000년대 초반까지 모습이다. 1인 가구의 증가 추세로 볼 때 향후 서울의 미래는 신림동 고시촌처럼 1인 가구로 꽉 들어찬 벌집 형태일 수 있다는 의미다. 단순히 학생과 고시생이 모인 공간이 아니라 향후 우리나라 가구 중 대다수를 차지할 1인 가구가 모인 모습일 수 있다는 말이다.
1인 가구가 급격히 늘어난 이유는?
크게 비자발적 이유와 자발적 이유로 나눌 수 있다. 먼저 비자발적 이유를 살펴보면 직업 구조의 변화에 따른 사회·경제적 불안정성을 들 수 있다. 최근 한국 사회에는 비정규직과 긱(Gig) 이코노미가 활성화되면서 노동자의 지위가 불안정해졌다. 긱 노동자는 기본적으로 단기계약직 혹은 임시직 노동자를 일컫는다. 기업 입장에서는 고용의 유연성, 노동자 입장에서는 자율성이라는 장점이 있지만 결과적으로 비정규직이기 때문에 하루 사이에 일자리를 잃기도 한다. 그런 불안정한 지위가 다인 가족 형성의 고리를 끊는다는 해석이다. 갈수록 치열해지는 사회 분위기도 1인 가구 증가에 영향을 미쳤다. 입시, 취업 경쟁 과열은 가족과 떨어져 독립 가구를 형성하도록 유도하고 있다. 자기 계발과 성장에 시간과 자원을 투자하기 위해 사람들은 이동을 마다하지 않는다.
그에 비해 자발적으로 ‘혼삶’을 결심한 사람은 전통적 집단주의에 대한 반작용이 그 원인이다. 가족 구성원으로서의 정체성을 지나치게 요구받은 개인은 가정에서조차 쓸데없이 많은 에너지를 소비해 왔다. 그런 집단주의에서 벗어나 자신을 보호하기 위한 도피처로 1인 가구를 선택한 것이다.
KB금융지주 경영연구소의 ‘2020 한국 1인가구 보고서’에 따르면 혼삶을 하는 이들이 결혼 대신 시간과 비용을 투자하는 분야는 취미 활동과 여행, 여가였다. ⓒKB금융지주 경영연구소, ‘2020 한국 1인가구 보고서’ |
트렌드는 급변하고 있지만, 아직까지 한국에서는 싱글 라이프가 익숙지 않아 어려움을 겪기도 할 것 같다
물론이다. 우선 경제적인 부분이 문제다. 1인 가구는 경제적으로 취약하다. 통계청에 따르면, 2020년 10월 일자리가 있는 1인 가구는 370만 가구로, 전체 1인 가구 중 59.6%를 차지한다. 나머지 40.4%는 학생, 실업 등 무직 상태다. 이들 1인 가구의 소득은 2019년 기준으로 월 80만~250만원 미만이 46.6%로 가장 많다. 다시 말해 국내 1인 가구의 상당수는 구직 중인 청년이며, 소득이 넉넉지 않다. 만약 다인 가구였다면 실직 등의 이유로 가족 일부가 경제활동을 하지 못하더라도 다른 구성원이 일시적으로 이를 보완할 수 있다. 하지만 1인 가구는 특이 사항이 발생할 경우 경제적 위기에 직접 노출된다.
두 번째로 주거 문제를 들 수 있다. 1970년대 이후 한국의 주거 공급 정책은 4인 가구 중심이었다. 이에 따라 1인 가구의 주거 선택지는 좁아진다. 공간을 나눠 쓰거나 원룸, 오피스텔 등 1인 가구에 맞춰 새롭게 설계된 주택을 구해야 한다. 하지만 그마저도 늘어나는 1인 가구 수에 비해 공급량이 턱없이 부족하다.
셋째는 건강 문제다. 1인 가구는 눈치 볼 동거인이 없어 다인 가구보다 자유롭지만, 간섭하는 사람이 없기에 건강한 생활 리듬을 잃어버리기도 쉽다. 통계청에 따르면, 2020년 1인 가구의 정기 건강검진과 적정 수면 실천율은 75% 내외였지만, 규칙적 운동 실천율은 29.2%로 저조했다. 불규칙한 수면과 생활 패턴은 건강에 해로운데 1인 가구는 아플 때 돌봐 줄 이가 아무도 없다.
그 외 일상생활, 즉 가사 노동을 오롯이 혼자 해야 하는 부담과 주거 침입이나 도난 같은 안전문제, 고독 등도 1인 가구가 겪는 문제다.
많은 문제가 있는데도 1인 가구가 늘어나는 건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혼삶에서 마주하는 문제는 새로운 수요로 이어진다. 문제를 겨냥한 다양한 제품이나 서비스 등이 출시되는 것이다. 그러면 싱글 라이프가 재미있어진다.
혼삶을 돕는 제품과 서비스가 있다면 알려달라
트렌드 중심으로 말하자면, 가전제품이 작아지고 있다. 밥을 지어 먹고, 옷을 세탁하고, 음식물을 냉장고에 보관하는 것은 가구원이 줄어도 필수적인 것이다. 이를 담당하는 가전제품은 기능이 아닌 크기가 변했다. 1인용 밥솥, 소형 세탁기, 소형 건조기, 소형 냉장고 등이 그것이다. 1인 가구는 음식 배달과 외식 비율도 높아 잔반이 남지 않을 정도의 용량을 선호한다.
또 효율화가 키워드로 떠올랐다. 분업이 어려운 1인 가구는 생업과 가사를 동시에 수행하기에 시간이 부족하다. 이에 시간을 효율적으로 활용할 수 있도록 돕는 제품이 주목받고 있다. 전자레인지를 예로 들면 에어프라이어, 토스터, 그릴 등의 기능을 모두 담고 있는 제품이 인기다. 가사 도움 서비스를 신청하는 앱도 등장했는데 청소, 설거지, 분리수거, 음식물 쓰레기 배출, 화장실 청소 등을 모두 해결할 수 있다. 집 앞에 세탁물을 두면 알아서 수거해 가서 세탁한 뒤 다시 집 앞에 갖다 놓는 서비스도 등장했다. 그 외 접이식 가구와 가전 등도 효율성을 높이는 것이다.
치안의 경우 가장 민감한 부분인데, 안면 인식 도어록이 등장하는가 하면 집을 오래 비울 때 집 안에 누가 있는 것처럼 보이도록 하는 소음 발생기, 그림자가 움직이는 기술도 나왔다.
삶의 필수 요소가 채워지면 외로움 등의 문제가 따라온다. 어떻게 해야 혼자 잘 살 수 있을까?
1인 가구는 직장 등 공적인 일과를 제하고 특별한 일정이 없는 한 혼자다. 아침에 눈뜨고 잠들 때까지 하루 동안 맞닥뜨리는 여러 가지를 혼자 생각하고 선택하며 생활한다. 그 과정에서의 외로움 해결과 자기 강화를 위해 반려동물과 함께하거나 취미 활동을 한다.
사회관계 측면에서 1인 가구는 원할 때만 소속감을 느낄 수 있는 ‘느슨한’ 연대를 선호한다. 취미, 관심사 기반 커뮤니티를 주로 활용하는데, 원 데이 모임으로 경험을 공유한 뒤 헤어진다. 커뮤니티는 운동, 액티비티, 문화 예술, 푸드, 드링크, 여행까지 카테고리도 다양하다.
생각해 보면 이런 문제는 비자발적 1인 가구에 해당할 뿐 자발적 1인 가구는 싱글 라이프를 훨씬 잘 즐길 것 같다
그렇다. 자발적 1인 가구는 자신의 싱글 라이프를 더욱 건강하고 만족스럽게 꾸려 가길 원한다. 건강관리, 레저, 자기 계발, 여행 등 생산 활동에 더욱 많은 시간과 비용을 투자한다. 이들의 라이프스타일과 어우러지는 제품과 서비스도 많다. 홈트레이닝 앱부터 모임, 레슨 등 또 다른 사회 참여로 이어지는 일종의 커뮤니티 앱까지 다양하다.
자발적 1인 가구는 아무래도 경제적 여유가 있는 이들일 것 같다
그런 경향이 없지 않다. ‘액티브 시니어’라는 표현도 있는데, 40대 후반에서 50대 초반 계층도 1인 가구를 지향하는 추세다. 이들은 경제적으로 어느 정도 여유가 있어 1인 가구로 살아가며 취미 생활을 누리려는 경향을 보인다. 굳이 집에 얽매이고 싶지 않아 서울 강남에 있는 큰 아파트를 팔고 작은 규모의 레지던스나 포터블 하우스를 옮겨 다니며 그때그때 테마에 맞춰 사는 라이프스타일을 선호한다.
교수님도 자발적 싱글 라이프를 살고 있나?
완벽하게 독립된 생활은 아니지만 워케이션이나 자유를 위해 2주에 한 번꼴로 1인 가구를 자처해 살고 있다. 한곳에 터를 잡고 사는 것보다는 훨씬 다양한 곳에서 살아보는 게 재미있다. 집은 작더라도 더 여러 가지 활동을 할 수 있으니 불편해도 만족한다.
중년에 1인 가구를 자처하다니, 가족과는 합의가 된 건가?
그렇다. 내 경우 부부의 성향이 맞아 합의한 것이다. 나와 둘 다 일을 하는데, 굳이 과거처럼 집에서 안정을 추구하며 사는 라이프스타일을 선호하지 않는다. 그 덕에 훨씬 다양한 삶을 살 수 있다.
실제로 해보니 행복도가 올라가던가?
나는 직업상 학교에 있으니 방학이라는 시간적 여유가 있다. 자발적 1인 가구가 되기로 한 건 40대 때다. 어느 날 문득 생각해 보니 한국에 아는 도시가 별로 없었다. 서울만 해도 내가 아는 동네는 손에 꼽을 정도로 적었다. 그때부터 지방에서 격주로 지내보자고 마음먹었다.
다녀보니 한국의 지방은 그렇게 오지나 시골은 아니더라. 요즘은 정보화가 잘되어 있어 어디를 가도 서울과 비슷할 만큼 온라인 접근성이 좋았다. 그래서 굳이 모여 있지 않아도 일과 삶을 영위할 수 있었다. 일은 서울에 있을 때와 같은 양을 처리하지만, 새로운 동네가 주는 신선한 생각과 자극이 있으니 오히려 좋았다.
가장 기억에 남은 1인 가구 생활이 있다면?
최근 경남 밀양에서 2주 정도 혼자 지냈다. 인스타그램을 찾아보니 커피집도 서울에서 내려온 총각이 운영하고 있더라. 그는 이탈리아에서 커피를 배운 정통파로 파스타도 만들었다. “저기다” 싶어 냅다 찾아갔다. 맛있는 음식과 독특한 스토리의 가게를 찾아가는 것 자체로도 힐링이 되고 재미가 있더라. 로컬은 그만큼 묘한 매력이 있다.
2주에 한 번씩 떠난다고 했는데, 짐 꾸리는 일도 보통 번거롭지 않을 텐데
한국은 사계절이 뚜렷해 계절용품이 많은 것이 특징이다. 그래서 현대인들은 단기 여행이나 출장 때 그렇게 많은 짐이 필요하지 않다. 옷이 필요하면 인근 옷가게에서 구매해도 되고, 편의점이나 슈퍼마켓에서 구비할 수 있는 것도 많아 짐을 꾸리는 건 번거롭지 않다.
직접 해본 사람으로서 혼자 잘 사는 법을 알려준다면?
주눅 들 필요가 없다. 누구나 가족과 떨어져 홀로 산다는 건 낯설다. 스스로 어색해 쭈뼛쭈뼛하기보다는 재미있는 걸 찾아라. 눈치 볼 사람 아무도 없으니 자유를 만끽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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