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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를 따라가는 낭만 여행, 메르헨 가도 Märchenstraße

<백설공주>, <브레멘 음악대>, <신데렐라> 등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동화의 배경을 찾아 가는 여행 루트가 있다. 중세 유럽의 환상적 분위기를 120% 체험할 수 있는 인문학 여행지로 자신 있게 추천한다.

ⓒ Den

어른을 위한 《그림 동화》

<백설공주>, <신데렐라>, <라푼첼>, <브레멘 음악대> 등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동화가 수록된 《그림 동화》는 그림(Grimm) 형제가 독일의 구전 민담을 수집해 편찬한 책이다. ‘동화’라는 타이틀 때문에 오해하기 쉽지만, 사실 《그림 동화》는 옛날 독일 성인들이 즐기던 민담이었다. 따라서 잔혹하고 선정적인 내용이 많지만 국내에 번역될 때는 어린이용 콘텐츠로 소개되어 대부분 삭제됐다.


독일어 ‘메르헨(Märchen)’은 ‘환상적이고 공상적인 이야기’를 뜻하는 단어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그림 동화》를 비롯한 민담과 전래 동화를 아우르는 고유명사가 되었다. 독일 곳곳에 흩어져 있는 민담의 발원지, 배경지를 엮은 코스가 바로 ‘메르헨 가도(Märchenstraße)’다. 거점이 되는 도시는 물론 지나는 길도 독특하고 환상적인 분위기를 자랑한다.


렌터카 여행에 최적화된 코스 메르헨 가도는 그림 형제가 태어난 하나우(Hanau)부터 독일 북부 브레멘(Bremen)까지 독일의 중심을 남북으로 가로지른다. 프랑크푸르트 공항에서 바로 렌터카를 대절하면 지척에 있는 하나우부터 일정을 시작할 수 있다. 아우토반을 따라 달리는 만큼 운전하는 재미를 느낄 수 있는 건 덤.


항공편

인천에서 프랑크푸르트까지 대한항공과 루프트한자 항공에서 직항편을 운항한다. 약 13시간 소요.


렌터카

국내에서 온라인으로 예약하고 출발하는 게 가장 좋지만, 현지에서 차량을 수배하는 것도 어렵지 않다. 준비물은 여권, 국제운전면허증, 국내 운전면허증, 신용카드, 연락 가능한 전화번호. 사고가 났을 때를 대비해 작은 업체보다는 SIXT, HERTZ, AVIS 등 글로벌 업체를 이용하는 편이 좋으며, 보험은 완전 면책(SCDW) 옵션을 선택하기를 권한다. 렌터카 회사 업무 시간 외 반납도 가능하며 차량 인수, 반납 시 상태 확인 절차도 생략한다.


추천 일정

하나우, 슈타이나우, 알스펠트 – 1일

카셀 – 2일

트렌델부르크, 자바부르크 – 1일

하멜른 – 2일

브레멘 – 2일


각 소도시 간 이동 시간은 평균 1시간 30분에 불과하다. 따라서 오전에 이동해 다음 코스에서 점심 식사부터 일정을 이어갈 수 있다.

<빨간 모자>
알스펠트 Alsfeld

ⓒ Den

마을 전체가 동화의 배경

알스펠트는 인구 1만 7000명 정도의 작은 마을로 흔히 ‘빨간 망토’로 알려진 동화 <빨간 모자>의 배경지다. 동화 속 주인공이 입은 옷인 망토는 원래 이 지역 여성의 전통의상이었다. 결혼 적령기의 처녀는 녹색 모자를, 기혼 여성은 보라색 모자를 썼는데, 이것이 빨간 망토로 변형된 것. 시내 중심 광장에는 마을의 상징인 ‘빨간 모자 분수’가 있다. 광장에서 걸어서 5분 거리에는 ‘동화 박물관’이 있는데, 《그림 동화》를 비롯해 메르헨가도에 산재한 동화 콘텐츠를 한데 모아놓은 전시장이다.


아름다운 중세 마을

동화와 상관없이 알스펠트는 중세 독일의 전통 가옥이 잘 보존된 곳으로 유명하다. 삐뚤빼뚤한 나무 프레임이 인상적이며, 도시의 역사적 가치를 인정해 유럽연합에서 목조주택 보존지구로 지정했다. 도시의 상징은 마을 중심 광장에 있는 시청 건물이다. 1512년에 지어진 건물로 가분수 형태의 독특한 모양이 특징이다. 독일 기념품 상점 어디를 가도 찾을 수 있는 ‘독일 건물’ 피겨의 원본이기도 하다. 알스펠트 구시가지는 정말 작다. 걸어서 한 시간이면 다 돌아보고도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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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간 모자(Rotkäppchen)>

할머니에게 심부름 갔던 예쁜 소녀 ‘빨간 모자’가 늑대의 꾐에 빠져 잡아먹히는 이야기다. 원래 프랑스 민담이 원본으로, 늑대인간 전설에서 파생해 강간을 조심하라는 교훈을 전하기 위한 내용이었다고 한다. 그림 형제 버전은 늑대에게 잡아먹힌 소녀가 사냥꾼의 도움으로 다시 살아나는 내용이 추가됐다.

독일의 문화 수도
카셀 Kassel

ⓒ Den

《그림 동화》가 탄생한 곳

그림 형제는 카셀에서 청소년기를 보냈다. 마르부르크(Marburg)에서 대학을 졸업한 형제는 다시 카셀로 돌아와 빌헬름스회헤(Wilhelmshöhe) 궁전 도서관에서 사서로 근무하면서 《그림 동화》를 집필했다. 카셀시는 이를 기리기 위해 2015년 ‘그림 월드’라는 체험형 동화 박물관을 만들었다. 이곳에는 《그림 동화》의 초판본부터 세계 각지의 《그림 동화》 판본을 모아놓았는데, 당연히 한국어 판도 전시하고 있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빌헬름스회헤 궁전

빌헬름스회헤 궁전 공원은 18세기 말 헤센-카셀 지역의 영주 빌헬름 1세가 지은 궁전이다. 빌헬름 1세는 미국 독립전쟁에 자신의 군대를 영국 용병으로 파병해 막대한 부를 쌓았다. 공원 공식 설명에 따르면, 빌헬름 1세는 프랑스 베르사유 궁전을 부러워해 이 공원을 조성했다고 한다.


공원은 카셀시 서쪽 외곽에 있으며, 240헥타르에 달하는 거대한 면적을 자랑한다. 언덕 꼭대기에는 높이 70m에 달하는 대좌(받침) 위에 헤라클레스상이 서 있으며, 그 아래는 ‘카스카덴’이라 부르는 계단식 분수가 있다. 공원 내에 있는 오랑제리 궁전은 나폴레옹 3세가 여름 별궁으로 이용했으며, 현재는 미술관으로 운영 중이다. 렘브란트, 루벤스, 반 다이크 등 대가의 작품 1000여 점 이상을 소장 중이니 미술 애호가라면 놓치기 어려운 곳이다.


현대미술의 메카

카셀에서는 5년마다 한 번씩 <도큐멘타(Documenta)>라 부르는 현대미술 전시회가 열린다. 미술 애호가라면 모를 리 없는 이 전시는 1955년 피카소, 칸딘스키 등이 참가한 제 1회 전시 이후 세계 최고의 현대미술 전시회로 자리 잡았다. 매 회 100일간 진행되어 ‘100일 동안의 미술관’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가장 최근 전시는 2022년 6월 18일부터 9월 25일에 열렸다.

<라푼첼>
트렌델부르크 Trendelburg

ⓒ Den

중세 고성 박물관

《그림 동화》 원본의 <라푼첼>에 등장하는 삽화는 바로 이 성을 보고 그렸다. 성의 상징인 원형 탑 꼭대기 창문에는 라푼첼의 상징인 긴 머리카락을 형상화한 밧줄을 길게 늘어뜨렸다. 성은 13세기에 축성됐다고 하며, 원형 탑은 원래 방어용 총탑으로 설계됐다. 내부를 돌아보면 중세시대 공성전에서 수비군이 어떻게 전술을 운용했을지 상상해 볼 수 있다. 탑의 지하는 감옥으로, 실제 과거 감옥의 열악한 환경을 생생하게 재현했다.


고성에서의 하룻밤

트렌델부르크성은 내부를 개조해 호텔로 운영 중이다. 캐노피 침대가 놓인 객실에서 트렌델부르크 마을을 내려다보면 중세 귀족이 된 기분을 느낄 수 있다. 객실은 4층까지 있는데, 엘리베이터가 없어 짐을 옮기려면 꽤나 고생스럽다.


호텔에 묵는다면 반드시 저녁 만찬을 신청할 것. 맛있는 독일 전통 요리를 풀코스로 즐길 수 있으며, 중세시대 하인 복장을 한 직원들이 친절한 미소로 서빙한다. 가격은 1인당 15만원 정도로, 양이 엄청나게 많다. 또 독일 음식은 전체적으로 짠맛이 강하니 주문 전 미리 소금을 적게 쳐달라고 요청할 것.


Tip. 호텔 예약은 홈페이지보다 부킹닷컴, 아고다 등 예약 사이트를 이용하는 것이 편리하다. ‘Hotel Burg Trendelburg’로 검색하자.

ⓒ Den

ⓒ Den

<잠자는 숲속의 미녀>
자바부르크 Sababurg

ⓒ Den

수령 수백 년이 넘는 떡갈나무 숲을 헤치고 나아가면 거짓말처럼 아름다운 고성이 나타난다. <잠자는 숲속의 미녀>는 이 성을 보고 만들었다는 설이 있다. 울창한 숲을 바라보면 마녀의 저주로 100년 간의 잠에 빠진 공주를 구하기 위해 왕자가 가시나무 숲을 칼로 헤치고 들어가는 그림이 절로 그려진다. 트렌델부르크성에서 약 5km 떨어진 곳에 있으며, 마찬가지로 호텔로 개조해 운영 중이다. 성 외부는 누구나 참관 가능하지만 내부는 투숙객에게만 공개한다.


자바부르크성은 원래 14세기 중엽 이 지역 영주였던 헤센 공이 사냥을 위한 거처로 만들었다. 성 주변을 둘러싼 거대한 숲이 바로 사냥터였던 것. 이 지역은 1571년에 ‘티어가르텐’이라는 이름의 동물원으로 조성되었으며, 유럽에서 가장 오래된 동물원으로 알려졌다. 80여 종의 동물을 숲속에 풀어놓아 사람이 바로 옆에서 관찰하고 만져볼 수도 있다.

<피리 부는 사나이>
하멜른 Hameln

하멜른 구 시가지 ⓒ Den

흑사병에 얽힌 전설

1284년 6월 26일, 하멜른에서 130여 명의 아이가 사라지는 사건이 일어났다. 하지만 아이들이 사라졌다는 기록만 남아 있을 뿐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기록을 찾을 수 없어 수많은 사람의 궁금증을 자극했다. ‘하멜른의 피리 부는 사나이’는 이 사건을 모티브로 만든 이야기다. ‘쥐’라는 소재 때문에 중세 유럽을 강타한 흑사병을 소재로 한 이야기로  해석하기도 한다. 하멜른 구시가지에서는 피리 부는 사나이가 아이들을 데리고 지나간 길, 쥐 떼가 빠져 죽은 강 등 동화 속 디테일을 곳곳에 확인할 수 있다.


중세 모습을 간직한 구시가지

하멜른 구시가지는 제2차 세계대전의 포화를 피해간 몇 안 되는 독일 도시다. 그 덕분에 중세 독일의 건축물이 다수 남아 있어 거리를 돌아다니다 보면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로 돌아간 듯한 느낌을 받는다. 구시가지는 지름 500m에 불과한 원형 구역으로 느긋하게 걸어도 반나절이면 다 둘러볼 수 있다. 구시가지가 오히려 하멜른 시내보다 더 깨끗하고 정돈된 분위기이며, 번잡함과는 거리가 멀어 여유 있는 중세 소도시의 정취를 만끽할 수 있다.

<피리 부는 사나이> 동상 ⓒ D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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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리 부는 사나이> 동상 ⓒ Den

<피리 부는 사나이(Der Rattenfänger von Hameln)>

어느 날 하멜른에 이유를 알 수 없는 쥐 떼가 출몰한다. 온 도시를 뒤덮은 쥐 떼를 퇴치하기 위해 시장은 현상금을 내걸었다. 알록달록한 옷을 입은 남자가 나서서 신비한 피리 소리로 쥐 떼를 모두 강으로 몰아 익사시킨다. 그러나 시장이 약속과 달리 보수를 지불하지 않자 남자는 피리 소리로 하멜른의 어린이 130명을 유인해 아무도 모르는 곳으로 데려가 버렸다. 14세기 유럽을 초토화시킨 흑사병과 관련한 전설로도 보지만, 시기적으로 맞지 않는다. 혹자는 12세기 후반 독일인이 인구가 희박한 동유럽 지역으로 대거 이주했던 ‘동방식민운동’을 모티브로 한 동화라고도 해석한다.

<허풍선이 남작>
보덴베르더 Bodenwerder

뮌히하우젠 남작은 1720년에 태어나 1792년 사망한 실존 인물로, 실제로도 농담을 좋아하는 쾌활한 성격이었다고 한다. ⓒ Den

독일 북부를 관통하는 베저강 중류에 위치한 소도시로, <허풍선이 남작>의 주인공 ‘뮌히하우젠 남작(Baron Münchhausen)’이 태어난 곳이다. 뮌히하우젠 남작은 1720년에 태어나 1792년 사망한 실존 인물로, 실제로도 농담을 좋아하는 쾌활한 성격이었다고 한다.


<허풍선이 남작>은 주인공 뮌히하우젠 남작이 젊은 시절 러시아와 튀르키예, 아시아 각지를 돌아다니며 모험한 후 겪은 이야기를 허풍과 함께 풀어낸 이야기다. 대포알을 타고 날아다닌 이야기, 철새를 잡아타고 날아온 이야기, 전쟁터에서 대포에 맞은 말의 하반신이 날아가버려 물을 마시면 그대로 뒤로 흘러나왔다는 이야기 등 기상천외한 모험담이 이어진다. 도시 중심 구시가지에는 뮌히하우젠 남작 기념관과 기념 동상, 분수 등 동화와 관련한 콘텐츠가 남아 있으며, 중세시대 목조 가옥이 잘 보존되어 있다. 도시 자체가 크지 않은 데다 구시가지도 작아 돌아보는 데 한두 시간이면 충분하다. 트렌델부르크에서 하멜른으로 가는 길에 있어 잠시 들러가기에 좋다.

<브레멘 음악대>
브레멘 Bremen

브레멘 시청사 ⓒ Den

문화예술의 도시

축구 팬에게는 분데스리가 명문 팀인 ‘SV 베르더 브레멘’으로 익숙한 도시이면서 《그림 동화》의 대표작 중 하나인 <브레멘 음악대>로 유명한 곳이다. 브레멘은 18세기 초 독일제국에 편입되기 전까지 독일의 상인 조합이 만든 무역 공동체인 ‘한자(Hansa) 동맹’이 자치권을 갖고 통치한 도시였다. 덕분에 예전부터 상인의 지원을 받은 문화와 예술 활동이 활발했다. <브레멘 음악대>의 주인공 당나귀가 “브레멘으로 가서 음악가가 되자”라고 말한 이유가 바로 이것. 지금도 브레멘 중심가 골목에는 거리의 예술가들이 버스킹을 하며 자신의 음악을 세상이 알아줄 날을 기다리고 있다.


독일에서 가장 아름다운 광장

브레멘 중심가인 마르크트 광장은 독일 전체에서 가장 아름다운 광장으로 손꼽힌다. 광장의 중심인 시청사는 15세기 초 지어진 건물로, 화려한 파사드가 압권이다. 시청사의 지하 식당 ‘라츠켈러’는 무려 600년 역사를 자랑하는 레스토랑으로 독일의 다양한 프랑켄 와인을 맛볼 수 있다. 광장 한구석에 서 있는 기사 ‘롤란트’의 석상은 1404년에 만들어졌으며, 중세 기사 문학의 백미인 <롤랑의 노래>의 주인공이다. 여기에 압도적인 규모를 자랑하는 고딕양식의 성 페트리 대성당이 광장을 둘러싸고 있다. 광장에서 베저강으로 이어지는 뵈트허 거리는 고풍스러운 붉은벽돌 건물로 조성된 상업지구로 레스토랑, 펍, 기념품 상점 등이 늘어선 관광 중심가다.

브레멘 마르크트 광장 ⓒ Den

ⓒ Den

<브레멘 음악대(Die Bremer Stadtmusikanten)>

평생 주인을 위해 성실히 일한 당나귀가 늙었다는 이유로 버림받는다. 이에 상심한 당나귀는 음악가가 되기로 결심하고 자기와 비슷한 처지인 고양이, 개, 닭을 만나 유랑악단을 꾸린다. 이들은 브레멘으로 가는 길에 음식과 벽난로가 있는 집을 발견했지만, 도둑들이 살고 있는 걸 알게 된다. 음악대는 당나귀, 개, 고양이, 닭이 차례로 등에 올라타 괴물 행세를 해 도둑들을 쫓아내고 보금자리를 찾아 행복하게 살게 된다.

 김구용(자유기고가) denmagazine@mcircle.biz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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