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넌 내게 모욕감을 줬어", 20년만에 밝혀지는 명대사와 각본
한국 영화 명대사와 함께 다시 주목받는 각본집들. [달콤한 인생], [기생충], [헤어질 결심], [파묘]까지 창작의 뒷이야기를 만나보세요.
각본집은 단순 대사집이 아니다.
고뇌와 영감이 고스란히 묻어있는
창작의 지도이기도 하다.
한국의 원조 누아르 영화 [달콤한 인생]은 개봉 20년 만에 팬들의 후원을 받아 각본집을 새로 출간했다. 스크린에서 스쳐 지나간 명대사를 원작 각본에서 다시 확인하는 순간, 감독의 의도와 작가의 숨겨진 생각을 들여다보는 특별한 관객이 될 수 있다. 영화 관람의 즐거움을 클라이맥스까지 올려 줄 명작과 각본집을 소개한다.
![]() ⓒ네이버영화 [달콤한 인생] 스틸컷 |
“넌 나에게 모욕감을 줬어” ㅡ [달콤한 인생]
2005년 4월 1일, 한국영화계에 '누아르'라는 장르가 아직 보편화되지 않았던 시기에 등장한 김지운 감독의 [달콤한 인생]은 한국형 누아르의 탄생을 알린 작품이다. 이 영화의 가장 유명한 대사는 단연 ‘강사장(김영철)’이 ‘선우’에게 던진 "넌 나에게 모욕감을 줬어"다. 이 한 줄의 대사는 영화를 보지 않은 사람들조차 알고 쓸 정도로 인터넷에서 꾸준히 회자되며, 수많은 패러디와 밈(meme)을 양산해냈다.
김지운 감독은 2005년 5월 동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달콤한 인생]의 아이디어는 고속도로 화장실에서 우연히 읽은 “흔들리는 것은 바람도, 나무도 아닌 네 마음이다”라는 한 스님의 말씀에서 영감을 얻었다고 밝혔다. "살면서 느꼈던 의문, 인상에서 아이디어를 얻어요"라는 그의 말처럼 일상의 작은 경험에서 영화의 소재를 찾는 그만의 방식이 돋보인다.
![]() ⓒ알라딘 |
[달콤한 인생 - 김지운 각본집] │ 김지운
개봉 20주년을 맞아 4월 1일 출시 예정인 [달콤한 인생] 각본집에는 무삭제 최종 시나리오, 영화 제작 당시 김지운 감독이 직접 작성한 제작기, 개봉 20주년 기념 인터뷰, 다양한 스틸컷이 빼곡히 수록되어 있다.
특히 20주년 기념 인터뷰에는 김지운 감독뿐만 아니라 당시 프로덕션디자인을 맡았던 류성희 미술감독, 촬영을 담당했던 김지용 촬영감독이 함께 참여해 각자의 분야에서 정상을 달리는 스태프들의 생생한 회고담을 만나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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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네이버영화 [헤어질 결심] 스틸컷 |
“나는요. 완전히 붕괴됐어요” ㅡ [헤어질 결심]
박찬욱 감독의 11번째 장편영화 [헤어질 결심]은 2022년 6월 29일 개봉하여 칸 영화제에서 감독상을 수상하며 한국영화의 위상을 한층 높인 작품이다. 산에서 추락사한 한 남자의 사망 사건을 조사하는 형사 장해준(박해일)과 사망자의 아내 송서래(탕웨이)의 이야기를 담고 있는 이 영화는 미스터리와 멜로가 절묘하게 어우러진다.
정서경 작가는 개봉 당시 제작발표회에서 처음에는 이 내용으로 시나리오를 쓰기 꺼렸다고 고백했다. 멜로도, 치정도 스스로 자신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다 한 번 도전해보자는 결심을 하고 이왕 쓸 거면 어떻게 죽을지부터 구상을 시작했다고 한다. 명대사 중 하나인 "나는요. 완전히 붕괴됐어요"는 장해준이 송서래에게 자신의 마음을 토로하는 장면에서 나오며, 영화 전체를 관통하는 핵심 키워드다.
![]() ⓒ예스24 |
[헤어질 결심 각본] │정서경, 박찬욱
이 각본집은 영화에서 삭제된 장면들을 포함하고 있어 서래 캐릭터의 내면을 더 깊이 이해할 수 있는 귀중한 자료다. 극중 주인공인 서래와 해준의 캐릭터와 행동의 의미를 더 깊이 알 수 있다.
서래가 해준의 "영원한 미결 사건으로 남기 위해" 선택한 "그 어떤 영화보다 잔인하고 창조적인 방법"의 의도도 더욱 명확히 드러난다. 각본집을 통해 서래가 해준의 말을 어떻게 해석했는지도 더 선명하게 이해할 수 있으며 정서경 작가의 팬이라면 그 의도와 의미를 더 자세히 엿볼 수 있는 기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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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네이버영화 [기생충] 스틸컷 |
“너는 계획이 다 있구나” ㅡ [기생충]
봉준호 감독이 연출하고 한진원과 공동 각본을 맡은 2019년 개봉 한국 블랙 코미디 스릴러 영화다. 가난한 김 가족이 부유한 박 가족의 삶에 침투하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2019년 5월 21일 칸 영화제에서 처음 상영되어 한국 영화 최초로 황금종려상을 수상했다. 흥미로운 점은 봉준호 감독이 원래 [기생충]을 영화가 아닌 연극으로 구상했다는 사실이다.
2013년, 영화 [설국열차] 제작을 마무리할 무렵 이 이야기를 떠올렸고 연극배우 친구의 권유로 연극을 쓰려고 했다. 그의 20대 초반 서울의 부유한 가정에서 가정교사로 일했던 경험이 이 작품의 중요한 영감이 되었다고 한다.
![]() ⓒ예스24 |
[기생충 각본집 & 스토리보드북] │봉준호, 한진원
봉준호 감독의 창작 과정과 영화 제작의 내밀한 순간들을 담아낸 [기생충] 각본집과 스토리보드북 세트는 영화의 대본뿐만 아니라 봉준호 감독이 직접 그린 촬영 장면의 사전 스케치와 그의 코멘트, 인터뷰 등을 생생하게 담고 있다.
출판사 플레인아카이브는 봉준호 감독의 스토리보드에 있는 맞춤법 오류나 흔들리는 필체를 수정하거나 편집하지 않고 그대로 실어, 스토리 작성과 영화 제작 과정을 최대한 진정성 있게 보여주려 했다고 밝혔다. 각본집을 읽는 독자들은 마치 봉준호 감독의 작업 노트를 직접 들여다보는 듯한 친밀한 경험을 느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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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네이버영화 [피묘] 스틸컷 |
“여우가 범의 허리를 끊었다” ㅡ [파묘]
2024년 2월 22일 개봉한 장재현 감독의 오컬트 미스터리 영화로, 개봉 32일 만에 천만 관객을 돌파하며 한국 오컬트 장르 영화 최초로 천만 영화에 등극하는 기염을 토했다. 장재현 감독은 "어릴 시절 100년도 넘은 무덤의 이장을 가까이서 본 기억에서 시작되었다"라고 영화의 계기를 밝혔다.
이 작품은 미국 LA에서 '기이한 병'이 대물림되는 집안의 의뢰를 받은 무당 화림(김고은)과 봉길(이도현)이 조상의 묫자리가 문제임을 발견하고 최고의 풍수사 상덕(최민식)과 장의사 영근(유해진)과 함께 이장 작업을 시작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사람이 살기에 적당하지 않은 '악지'에 자리한 묘를 파는 과정에서 나와서는 안 될 것이 나오며 위기가 시작된다.
![]() ⓒ예스24 |
[오컬트 3부작 : 장재현 각본집]│장재현
장재현 감독의 오컬트 3부작 각본집은 [검은 사제들](2015), [사바하](2019), [파묘]의 오리지널 시나리오를 고스란히 담고 있다. 이 각본집은 장재현 감독이 10년에 걸쳐 정성스럽게 구축해온 K-오컬트 세계관의 시작과 현재, 그리고 미래를 한눈에 볼 수 있게 해준다.
특히 주목할 점은 영화에서는 볼 수 없었던 장면과 대사, 지문이 포함되어 있다는 것이다. [검은 사제들]의 라틴어 대사와 [파묘]의 고대 일본어 원문 등 이 각본집은 장재현 감독의 세계에 한 걸음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는 많은 힌트들을 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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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우 에디터 tmdrns1111@mcircle.biz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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