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젓가락이 인종차별 도구? 젓가락에 숨겨진 깊은 의미

인종차별 논란을 일으킨 '버키킹' 광고 영상

최근 패스트푸드 업체인 버거킹의 햄버거 광고가 인종차별 논란에 휩싸였다. 해당 광고는 버거킹 뉴질랜드 지사가 신제품 '베트남 스위트 칠리 텐더 크리스프'를 홍보하기 위해 만든 동영상이다. 광고에는 큼직한 햄버거를 길고 굵은 젓가락을 이용해 힘겹게 집어먹으려는 남성과 여성의 모습이 나온다. 영상이 퍼지자 원래 손으로 먹는 음식을 굳이 젓가락을 사용해 우스꽝스럽고 힘든 모습으로 연출할 필요가 있었냐는 비난이 이어졌다. 문화의 차이를 인정하지 않는 무례한 태도라는 것이다. 젓가락에 대한 차별적인 논란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전 세계적인 브랜드 '돌체앤가바나'는 'DG(돌체앤가바나)는 중국을 사랑해'라는 제목의 패션쇼 홍보 영상에 젓가락을 등장시켰다. 문제는 빨간 드레스를 입은 중국인 모델이 젓가락으로 피자, 파스타 등의 음식을 먹으려 안간힘을 쓰는 모습이 역시나 매우 불편해 보였고 적절치 않았다는 점이다. 이는 중국 내에서 해당 브랜드의 불매운동으로 이어졌고, 돌체앤가바나의 설립자는 중국 웨이보에 사과 영상을 올리기도 했다.

서양과 다른 동양의 젓가락 문화는 어디서 왔는가

일련의 상황들은 젓가락을 동양의 불편하고 낯선 도구로만 인식하는 문화적 무지(無知) 때문은 아닐까? 젓가락의 역사를 조금만 들여다보면 단순한 식사 도구가 아닌 아시아의 찬란한 문화유산이라는 점을 알 수 있는데 말이다. 현재 젓가락을 사용하는 국가는 한국, 중국, 일본, 태국, 베트남, 싱가포르 등 아시아 지역에 몰려 있다. 그중에서도 한국, 중국, 일본 3개국은 젓가락 사용 인구의 80%를 차지한다. 젓가락의 발상지인 중국 최초의 젓가락은 장쑤성에서 출토된 것으로 약 5,500여 년 전 사용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돌체앤가바나가 중국과 중국 전통 문화를 비하했다는 논란이 있었다

흔히 젓가락과 비교되는 포크는 서양만의 문화로 알기 쉽지만 동양에서도 포크를 사용했다. 고대 중국 은나라 유적에서 뼈로 만든 포크가 발견됐으며, 용도는 끓인 물에 익힌 고기를 꺼낼 때 사용했던 것으로 추측된다. 포크는 육식 문화와 연관이 있는데 쌀을 주식으로 삼았던 아시아에서는 젓가락의 비중이 훨씬 높았고, 그 전통이 계속 이어져 내려왔다. 이렇게 오랜 시간 젓가락은 아시아인들에게 중요한 식사 도구이자 문화의 일부분으로 영역을 넓혀온 것이다.

식문화의 변화에 따른 중국의 젓가락 변천사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중국의 젓가락은 식문화의 변화에 따라 조금씩 모양이 달라졌다. 한두 사람씩 밥상 하나를 놓고 나눠먹던 분식제에서 큰 식탁을 사용하며 여럿이 함께 먹는 방식인 합식제로 바뀌게 되면서 먼 곳의 음식을 집어먹기 위해 점차 젓가락의 길이가 길어지고 끝이 뭉툭해졌다. 또한 명·청 시대를 거치면서 제작 공법이 우수해졌고 대나무, 목재, 구리 외에도 은, 상아, 산호 등 진귀한 보석을 이용하며 생필품을 넘어선 사치품으로 그 역할이 확대되기도 했다.

 

젓가락의 발달은 주식의 변화와도 밀접한 관련이 있다. 10세기 북송시대를 거치며 농사기법이 발전하면서 쌀 대신 밀 농사가 대규모 호황을 이루게 되었다. 그러자 중국인들의 주식은 현재 중국의 전통 음식이라 말할 수 있는 국수와 만두 등 기름진 밀가루 음식으로 변모하였다. 점차 밥을 뜨던 숟가락 대신 젓가락을 활용해야 할 경우가 많아졌고, 이와 같은 시대의 흐름이 지금의 독특한 젓가락 문화를 공고히 한 것이다.

한.중.일 3국의 젓가락은 생김새가 다르다?

젓가락은 영어로 '찹스틱(Chopsticks)'이라고 한다. 찹스틱은 '빨리빨리'를 의미하는 중국어 '찹 찹(chop chop)'과 막대를 뜻하는 영어 'Stick'의 합성어이다. 그만큼 중국은 대표적인 젓가락 국가로 통한다. 중국의 젓가락은 3국 중에서도 가장 길고 굵직하다. 커다란 원탁에 음식을 두고 나눠먹기 위해 길어야 했기 때문이다. 또 기름지고 뜨거운 음식들이 많아 열전도율이 낮은 나무를 재료로 했고, 끝을 뭉툭하게 만들어 음식이 미끄러지지 않도록 했다.

 

중국의 영향을 받은 젓가락이지만 일본과 한국은 또 다른 모습이다. 일본은 끝을 뾰족하게 해서 그들이 즐겨먹는 생선의 가시를 발라내기 적합하게 만들었다. 또 그릇을 들어 입 가까이에 대고 먹기 때문에 가장 짧은 길이의 젓가락을 사용하게 되었다. 이에 비해 한국의 젓가락은 더 납작하고 끝으로 갈수록 뾰족하며 금속 재질을 사용하는 것이 특징이다. 과거에는 놋쇠, 은 등으로 만들었지만 최근에는 스테인리스 재질이 대부분이다. 다양한 가짓수와 절임음식이 많은 특성상 집기 편하고 위생관리가 좋은 금속 재질을 사용한다는 해석이 있다.

젓가락 예절을 보면 그 나라의 문화가 보인다?

서로 다른 모습만큼 세 나라는 비슷한 듯 다른 젓가락 에티켓이 있다. 중국에서는 밥그릇 한가운데 젓가락을 꽂지 않는다. 제사상을 연상시키기 때문이다. 또 식사 중 젓가락으로 밥그릇을 두드려 소리를 내면 먹을 것이 없다는 뜻을 내포하는 것으로 삼가야 할 행동이다. 한국에서는 숟가락은 밥과 국을 뜨기 위해 젓가락은 반찬을 집기 위해 활용하는데, 두 개를 함께 잡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게 여긴다. 또 젓가락으로 반찬을 이리저리 뒤적거리는 것 또한 함께 음식을 나눠먹기에 지양해야 할 부분이다.

 

자신의 젓가락을 사용해 상대에게 음식을 전달하는 행동은 한국에서는 가까운 사이라면 흔히 할 수 있는 행위지만 일본에서는 절대 금물이다. 사람이 죽은 후 유골을 옮길 때 젓가락과 흡사한 물건을 사용하는데, 바로 이 동작과 비슷하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또 음식 안으로 젓가락을 넣어 끄집어내거나, 젓가락으로 식탁 위의 그릇을 움직이는 것도 예의에 어긋난다. 이외에도 한국과 중국은 숟가락과 젓가락을 세로로 놓지만 일본은 가로로 두는 차이점이 있다.

단순한 식사도구에서 국례품까지 젓가락의 다양한 쓰임새

식사를 할 때 빛을 발하는 젓가락이지만 중국에서는 손난로의 불을 피우거나 숯을 집을 때 또는 차를 달일 때 등 다양한 쓰임새로 활용했다. 최근에는 항저우 G20 정상 회의, 올림픽, 엑스포 등 각종 국제행사 때마다 젓가락을 국례품으로 내놓아 눈길을 끌었다. 짝이 맞아야 사용할 수 있는 젓가락을 통해 화합과 통합의 의미를 더하고 전통 식기류로서의 가치를 더한 것이다. 질 좋은 대나무가 나기로 유명한 중국 저장(浙江)의 칭위안(慶元)을 기반으로 하는 솽창주예(雙槍竹業)의 젓가락과 300년 이상 전통을 이어온 항저우의 특산품 '톈주 젓가락(天竺筷)‘이 특히 유명하다.

 

한국에서도 젓가락은 예법의 한 부분으로 꼽힌다. 여자가 결혼할 때 이불과 더불어 꼭 챙겨가는 혼수품 중 하나로, 조선시대 양반가에서는 딸이 시집갈 때 은 젓가락을 챙겨 보내기도 했다. 지금은 많이 없어졌지만 예단으로도 유기 수저는 필수품이었다. 아무리 힘든 순간에도 먹는 것 하나만큼은 잘 챙기라는 가족의 따뜻한 정과 사랑이 담겨 있었을 것이다.

찬란한 젓가락 문화는 계속된다

사진 : YOUTUBE <YTN사이언스 - 젓가락과 두뇌발달>

이처럼 젓가락은 비슷해 보이지만 서로 다른 문화를 꽃피우며 오랫동안 아시아인들의 삶 깊숙이 자리해왔다. 한 조사에 따르면 전 세계에서 식사를 할 때 손을 쓰는 사람은 40%, 젓가락과 포크를 사용하는 사람은 각각 30%로 비슷한 비율이라고 한다. 포크만큼이나 많은 인구가 사용하고 또 그 역사가 오래되었음에도 여전히 문화적 무지(無知)에서 기인한 젓가락에 대한 차별적 태도가 곳곳에서 나타나는 것이다.

 

그러나 젓가락의 역사를 알고 조금만 관심을 기울인다면 사용하기 불편해 보이는 식사 도구에서 역사성을 지닌 귀중한 문화재로 인식의 변화를 느낄 수 있다. EBS의 한 실험에 의하면 젓가락을 이용하였을 경우 정서와 기억력을 담당하는 우측 측두엽의 눈에 띄는 활성화가 이루어졌다고 한다. 어쩌면 아시아인들이 셈에 강하고 손재주가 좋은 것은 젓가락의 힘일지도 모른다고 강한 자신감을 드러낼 수 있는 대목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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