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사 인수해 매출 3조 원 돌파한 한국 브랜드 ‘휠라코리아’
마치 MSG와도 같은 자극!
휠라(FILA)는 1911년 이탈리아 비엘라에서 휠라 형제들에 의해 출범한 브랜드다. 본래는 속옷을 주로 생산하던 이 업체는 1923년부터는 스포츠웨어로 발전해 패션 브랜드로서 입지를 다졌으며, 1972년에는 이탈리아의 자동차 기업인 피아트에 인수된 바 있다. 1980년대에 이르러서는 전 세계 어디에서나 찾아볼 수 있는 패션 브랜드로 성장했으며, 이 기조는 1990년대까지 이어지게 된다. 하지만 세계 4대 스포츠 브랜드 중 하나로 꼽히던 휠라는 얼마 지나지 않아 위기에 처하게 된다.
100년의 역사를 가진 휠라
세계 4대 스포츠웨어 브랜드로 꼽히던 휠라가 흔들리다 |
100년의 역사를 가진 이 기업이 흔들리기 시작한 것은 2000년대 들어서였다. 1990년대 후반부터 과도한 제품 개발 투자와 이에 반하는 부진한 매출, 연이은 마케팅 실패로 휠라는 어려움에 빠졌다. 1997년 14억 달러의 매출을 기록한 휠라의 매출은 해가 갈수록 줄어들었고, 위기를 느낀 경영진은 매각을 추진했으나 쉽지 않았다. 최악의 위기에 빠져 허덕이던 휠라를 인수하겠다고 나선 업체가 나타난 것은 2001년 말경이었다. 놀랍게도 인수의 주체는 한국의 한 기업인이었다.
휠라는 한국에서 크게 성공한 브랜드였다. 한국 시장에서의 성공을 주도한 것은 샐러리맨의 신화로 꼽히는 ‘윤윤수 휠라코리아 대표이사’였다. 1984년 종합상사 대운무역을 설립한 그는 미국에서 휠라를 처음으로 접했고, 이 브랜드로 신발을 만들어 미국에 판매하면 성공할 수 있겠다는 판단을 내리게 된다. 이에 그는 미국에서 휠라 신발의 판권을 보유하고 있던 호머 알티스를 설득해, 한국에서 만든 신발에 휠라의 브랜드를 붙여 미국에 판매하는 데 성공을 거두게 된다.
휠라코리아가 휠라를 인수하다
휠라코리아가 휠라 본사를 인수하면서, 휠라 브랜드는 커다란 변화를 겪게 된다 |
신발의 성공에 고무된 휠라는 1991년 윤윤수 당시 대운무역 대표이사에서 휠라코리아를 맡아줄 것을 요청했다. 휠라코리아 대표이사가 된 윤윤수는 1992년 150억 원의 매출을 기록했으며, 채 10년이 되지 않은 2000년에는 10배가량이 늘어난 매출 1,470억 원을 거두게 된다. 2000년대 들어 휠라의 전 세계 27개 지사는 대부분 적자의 늪에 빠져 허덕였으나, 휠라코리아만 지속적으로 흑자를 기록했다. 그리고 2001년 말이 되어서, 휠라 본사가 휘청거리는 것을 본 휠라코리아는 특단의 대책을 수립하기에 이른다. 바로 휠라 본사를 인수하겠다는 대책을 말이다.
2001년 말 휠라USA의 존 엡스틴 사장을 비롯한 3명의 임원진, 미국의 헤지펀드 케르베로스 캐피탈 매니지먼트와 손을 잡은 휠라코리아는 ‘SBI’라는 회사를 설립해 휠라 본사의 인수작업에 착수했으며, 2003년 3월에는 이에 성공하게 된다. 이후 휠라코리아는 2007년 SBI로부터 글로벌 휠라 브랜드 사업권을 넘겨받아, 온전히 휠라 브랜드 전체를 관리하게 된다. 휠라코리아가 미국 뉴욕에 설립한 자회사인 GLBH(Global Leading Brands House)홀딩스가 휠라 룩셈브루크사의 지분을 SBI로부터 인수하는 형태로 휠라 글로벌 사업권의 이전이 이뤄졌다. 휠라 브랜드 인수를 위해 GLBH홀딩스가 지불한 금액은 한화 약 4,500억 원이었다.
성공을 위한 노력들, 그리고 M&A
골프 분야에서 저명한 브랜드를 가진 아쿠쉬네트를 휠라가 인수하다 |
하지만 휠라 브랜드의 사업권을 한국 기업이 관리하게 된 시점은 글로벌 브랜드로서의 휠라의 영향력은 예전과는 달리 많이 줄어든 상태였다. 미국 시장의 매출이 한국 시장의 전체 규모보다 작았기에, 이에 휠라는 미국에서의 브랜드 이미지 강화에 본격적으로 나서기 시작했다. 휠라는 미국 시장의 매출을 당시의 1억 2,500만 달러에서 3년 내 5억 달러 상당으로 올려놓겠다는 계획을 세우고, 이를 위한 전략을 실행해 나갔다.
우선 이들이 집중한 것은 비용의 절감이었다. 2008년에는 휠라 신발의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중국 푸젠성으로 생산 기지를 이전해 생산원가를 50% 이상 낮췄으며, 중국에서의 활동을 통해 ‘짝퉁’ 제품의 생산을 원천적으로 봉쇄하는 데 성공했다. 2011년에는 세계 1위의 골프공 브랜드인 미국 아쿠쉬네트(Acushnet)사를 인수했는데, 이 회사는 골프공 세계 1위 브랜드인 ‘타이틀리스트’, 골프화와 장갑 분야에서 1위 브랜드인 ‘풋조이’를 가지고 있는 기업이었다. 휠라코리아는 현재 이 회사의 지분 53%를 보유하고 있다.
두 번의 성공, 세계 시장에 다시
세계적으로 커다란 성공을 거둔 고샤 루브친스키와 휠라의 콜라보 |
과감한 투자를 통해 2015년에 이르러 휠라코리아의 매출 규모는 2007년 대비 10배가 증가한 8,158억 원으로 성장했다. 그리고 2015년에는 다가오는 2020년까지 매출을 두 배 신장시키겠다는 ‘2020년 비전’을 발표하게 된다. 노후화된 휠라를 재정비해서 보다 젊은 패션 브랜드로 만들기 위한 리브랜딩 작업이 시작됐다. 때마침 미국을 시작으로 전 세계적인 복고 유행이 불었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휠라는 연이어 두 번의 성공을 거두면서, 이 유행의 중심에 서게 된다.
첫 번째는 러시아 디자이너인 ‘고샤 루브친스키’와의 콜라보레이션을 통해 탄생했다. 고샤 루브친스키는 러시아의 스트릿 감성을 담은 컬렉션을 선보이며 성공을 거두던 디자이너로, 휠라는 2017년 SS 시즌을 겨냥해 그와의 콜라보 제품을 선보였다. 그리고 이것이 성공을 거두고 할리우드의 셀러브리티들이 휠라 콜라보 제품을 착용한 모습이 자주 노출되면서, 패션 브랜드로서의 휠라의 가치는 수직으로 상승했다. 두 번째는 휠라의 스니커즈인 ‘코트디럭스’의 성공이었다. 기존의 유명 브랜드에 질린 소비자들이 새로운 브랜드의 스니커즈를 찾으면서, 단색의 휠라 코트디럭스 신발은 2016년 9월 말 처음 출시된 이후 약 1년 3개월 만에 단일 신발 100만 족 판매의 기록을 쓰게 된다.
2019년 연 매출 3조 원을 돌파
어글리슈즈가 주목을 받으면서 큰 성공을 거둔 디스럽터2 |
두 제품의 성공적 론칭에 이어서, 2017년 6월에 출시된 복고풍의 신발인 ‘디스럽터2’가 2018년의 휠라 브랜드 가치 상승을 견인했다. 이 제품은 미국의 전문지 ‘풋웨어뉴스’가 꼽은 2018년 올해의 신발로 선정됐으며, 전 세계 1천만 족 판매라는 커다란 성공을 거두게 된다. 아울러 이때 휠라는 이탈리아의 하이엔드 명품 패션 브랜드인 ‘펜디(FENDI)’와의 콜라보도 성사시키게 된다.
2018년에는 윤윤수 회장의 장남인 윤근창 부사장을 대표이사 사장으로 승진시키며 휠라코리아 2세 경영 시대의 막이 올랐다. 2018년 이후로도 휠라의 브랜드 가치는 계속 상승해, 미국은 물론 과거 휠라 위기의 진원지였던 유럽은 물론 중국에서의 매출도 크게 오르기 시작했다. 2018년에는 2조 9,546억 원의 매출을 기록하며 아쉽게 3조 원의 벽을 넘지 못했지만, 작년에는 연간 매출 3조 원을 넘어선 것으로 관측되고 있다. 다만 현재는 폭발적인 성장의 효과가 다해, 미국을 시작으로 전 세계에서 성장성이 둔화되고 있는 것으로 평가된다. 몇 번이나 한계에 부딪혔지만 다시금 성장한 휠라코리아가, 올해에 또 성장의 ‘천장’을 뚫어낼 수 있을지가 새로운 경영자인 윤근창 CEO에게 주어진 숙제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최덕수 press@daily.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