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성 여행-금수강산 청정 지역,강원도 고성으로
겨울에는 바다에 가야 한다. 차가운 바닷바람 맞으며 마시는 뜨거운 커피 한 잔이 그리워서, 작은 항구에서 조업하는 어민들 사이로 끼룩거리는 갈매기 떼 구경하고 싶어서, 걸어도 걸어도 바다만 보고 싶어서, 바다에 가야 한다. 겨울 바다의 정석은 동해안. 강원도의 청정 바다를 끼고 있으면서도 지금까지 속초와 강릉에 가려 제 매력을 펼치지 못한, 그래서 아직도 깨끗하고 아름다운 고성 바다를 소개한다.
화진포 |
코로나19의 확산으로 해외여행이 거의 불가능해졌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방학이나 휴가를 이용해 해외여행을 떠나는 여행객의 숫자는 해마다 신기록을 세울 정도로 증가 일로였지만, 코로나19가 확산되기 시작한 올해 초부터 해외여행은 꿈도 꾸지 못할 일이 되어 버렸다. 국제선 공항 청사는 한산해졌고, 비행기들은 계류장에 묶인 지 일 년이 되어 가고 있다.
해외여행이 어려워지니 상대적으로 국내여행이 증가해 제주도를 비롯한 국내 유명 여행지들이 사시사철 사랑을 받고 있다. 정부의 사회적 거리두기 단계 변화에 따라 차이가 있긴 하지만 전국 방방곡곡 유명한 곳은 물론이고, 새로 알려진 곳에도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최근 SNS에서 자주 볼 수 있는 문장 중 하나가 ‘우리 나라에 이렇게 좋은 곳이 많았구나!’일 정도로 2020년은 ‘국내 여행지 재발견’의 해였다.
강원도 최북단 고성高城 역시 최근에 새롭게 조명되는 여행지 중 하나다. 1950년대에는 북한 땅으로 군사분계선에 가까운 곳이라 사람들이 잘 가지 않던 조용하고 경계 삼엄한 어촌이었다. 그러다 2003년 금강산 육로 관광이 시작되면서 한동안 통일의 꿈과 한반도의 명산인 금강산 구경으로 주가가 올랐다가 금강산 관광 중단과 함께 다시 조용해졌다.
해당화 활짝 핀 바다에 괭이갈매기만 한가로이 날던 어촌 고성이 다시 사람들의 화제에 오른 건 동해안 7번 국도 드라이브의 인기 상승과 관련이 있다. 강릉과 속초만 오가던 이들의 관심이 7번 국도의 최북단인 고성까지 이르게 된 것. 특히 2017년 서울양양고속도로가 개통되면서 서울에서 2시간 만에 속초에 도착할 수 있게 되자 청정 지역으로 소문난 고성을 찾는 이들이 늘었다.
바닷가를 따라 이어지던 군부대 초소들과 철조망이 부분적으로 없어지면서 사람의 손길이 닿지 않은 청정 해안들이 드러났고, 서핑 성지로 유명한 양양이 포화 상태가 되면서 파도가 좋은 고성 해안으로 서퍼들이 이동했다. 서핑을 즐기는 힙스터들과 함께 고성 해안을 따라 큼직한 카페와 세련된 숙소, 브루어리 등이 하나둘 늘었다.
지형적으로 봐도 북쪽에 금강산, 남쪽에 설악산, 서쪽으로 태백산맥, 동쪽으로 너른 동해가 펼쳐진 천혜의 명승지고, 해안을 따라 지각 변동으로 생긴 화진포와 송지호 등의 석호가 있어 생태학적으로도 가치가 높다. 통일 전망대부터 7번 국도를 따라 화진포, 거진항을 거쳐 천진항까지 내려오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볼거리를 선사하는데, 최근에 드라마와 예능 프로그램을 통해 전국권으로 화제가 되었다. 전통 가옥으로 이뤄진 왕곡마을과 조용한 어촌 풍경을 지닌 아야진의 모습이 매스컴에 소개되었고, 아야진항과 천진항 쪽에 새로운 공간들이 연이어 생기면서 SNS를 통해 화제가 되어 청정 지역 고성은 ‘가고 싶은 여행지 리스트’에서 점차 순위를 높여 가고 있다.
진부령을 넘어 소똥령숲길을 걸어 보고, 화진포에서 거진항을 거쳐 청진항까지 해안 도로를 달려 보고, 벽화 가득한 아야진마을에서 어촌의 일상을 스케치하고, 울산바위를 등지고 끝없이 넓고 푸른 바다를 멍하니 바라보는 일. 이 모든 것을 할 수 있는 고성 바닷가 여행을 소개한다.
고성 가는 길은 60여 개 터널 여행
백두대간을 가로지르는 국내 최장 도로 터널인 인제양양터널, 긴 터널 운전의 지루함을 달래 주는 터널 속 일곱 색깔 무지갯빛 장식 |
서울에서 고성으로 가는 길은 터널 여행이다. 강일IC에서 시작하는 서울양양고속도로는 전 구간 150㎞ 중 70%가 터널과 교량으로 구성되어 터널만 60여 곳을 지난다. 35m로 가장 짧은 화촌4터널부터 10.9㎞에 달하는 국내 최장 도로 터널인 인제양양터널까지 길고 짧은 터널이 끊임없이 이어진다. 월문, 금남, 서종, 이천, 엄소, 발산, 북방, 화촌, 내촌, 기린, 서면 등 경기도에서 강원도까지 터널 이름만 열거하기도 숨이 차다.
2시간 코스로 길지는 않지만 한반도의 허리인 태백산맥을 관통하니 주변 풍경은 산으로 이어진 능선뿐이어서 다소 지루할 수 있다. 운전자는 주의를 집중해야 하는 코스지만 보조석 동승자가 운전자를 위해 터널이 나올 때마다 터널 이름을 확인하고 입구에 명시된 터널 길이를 알려주면서 이야기를 나눈다면 운전이 덜 지루할 것이다.
특히 서울양양고속도로에는 터널이 많고 길다 보니 터널마다 특징도 있다. 졸음운전을 할 가능성이 있는 긴 터널은 일부러 S자 모양으로 네 번 휘게 설계하든가 호루라기 소리를 지속적으로 내기도 하고, 벽화 또는 LED 조명을 설치해 아름답게 꾸미기도 한다. 구간 단속 지정으로 과속을 방지하기도 한다. 인제양양터널에는 동해를 연상하게 하는 파도 무늬 벽화도 있고, 무지개 조명이 설치되어 지나는 동안 환상적인 분위기에 빠지기도 한다.
터널을 어둡고 빨리 지나가야 할 곳으로만 생각했다가 ‘이건 터널 여행이구나’ 하고 생각을 바꾸니 여행의 분위기가 바뀌었다. 터널 중간쯤에서 ‘백두대간 통과 중’이란 안내 사인을 보면서 이 터널들을 뚫기 위해 고생했을 공사 관계자들에게 고마움도 느끼고, 우리가 목적지에 빨리 도착하기 위해 뚫은 이 터널로 인해 파괴되었을 생태계도 떠올리게 된다. 터널을 지나며 환경 보호를 위해 내가 할 일이 뭐가 있을지 고민까지 했다면 터널 여행은 그것만으로도 가치 있다. 이렇게 달려 양양에서 동해고속도로를 타고 양양2터널을 나오면 비로소 푸른 파도가 넘실거리는 동해가 한눈에 들어온다.
울산바위와 인사하고, 소똥령숲길로
울산바위 촬영 휴게소라는 이름에 걸맞게 이 자리에서는 울산바위의 원모습을 한번에 감상할 수 있다. 미시령 옛길로 올라가면 울산바위를 더 가까이서 볼 수 있지만 미시령터널이 뚫린 뒤로 옛길을 이용하는 이가 많이 줄었다, 진부령에서 고성 방향으로 내려오는 길에 소똥령숲길 입구 표지판이 있다. |
속초톨게이트를 지나 미시령 쪽으로 빠져나오면 고성의 자랑인 설악산 울산바위를 가장 멋있는 모습으로 볼 수 있는 울산바위 촬영 휴게소가 있다. 미시령터널 들어가기 직전 오른쪽에 있는데 주유소가 함께 있어 서울로 돌아갈 때 들르기 좋다. 휴게소 앞에서 보이는 울산바위는 마치 경복궁 근정전 왕좌 뒤를 지키는 일월오봉도처럼 웅장하고 기품이 있다. 해발 870m의 단단한 화강암 봉우리 여러 개가 수천 년 비바람으로 풍화되어 기기묘묘한 암괴 형상을 지니고 있어 직접 올라가기는 쉽지 않으니 이렇게 편하게 멀리서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위로가 된다.
시간이 넉넉하다면 근처의 바우지움미술관에 들러 보길 권한다. 조각가 김명숙 관장이 현대 조각 미술의 대중화와 발전에 기여하기 위해 지은 사립미술관인데 모던한 건축물 안에 가치 있는 조각품들이 소장되어 있다. 특히 미술관 중정에서 울산바위를 바라보면 거대한 자연의 조각품인 울산바위가 현대의 예술적 조각품들을 품은 듯해, 이보다 멋진 차경은 없을 듯한 근사한 경치를 만날 수 있다.
울산바위를 감상하고 미시령터널을 통과해 진부령을 넘어 46번 국도를 타고 내려가다 보면 ‘소똥령숲길’이란 독특한 간판을 만나게 된다. 원초적 궁금증을 일으키는 고개 이름은 말 그대로 소똥과 관련이 있다. 소똥령은 옛날에 고성에서 한양으로 물건을 사러 가거나 과거 시험을 보러 갈 때 넘던 고개로, 마을 주민들이 원통 장날에 소를 팔기 위해 능선을 넘다가 쉬어 가는 주막이 있는 곳이었다.
구름다리를 건너 소똥령숲길로 들어서면 빽빽한 소나무 숲을 만날 수 있다. 여기서부터 소똥령숲길 산책이 시작된다, 농촌 체험 마을인 소똥령마을 입구, 소똥령마을의 송림 속 야영장 |
밤새 소들이 똥을 많이 눠서 소똥령이란 이름이 붙었다는 설과, 이 길을 이용하는 사람이 하도 많아서 봉우리에 자리가 패였는데 그 모양이 소똥을 닮았다 해서 소똥령이라 이름 붙었다는 설이 있다. 어떻게 해석해도 ‘소똥령’하면 ‘소똥’이 떠오르니 지명만으로 화제가 되는 경우가 많다. 당시에는 산세가 험해 길이 좁고 숲이 우거져 으슥하지만 주민들에게 꼭 필요한 길이라서 이들의 짐을 노리는 산적들이 자주 출몰하는 길이었다 한다. 그러다 주변에 도로가 많아지면서 왕래를 위한 용도는 점차 줄어들어 아는 사람들만 이용하다가 얼마 전부터 고성군에서 숲길을 정비해서 개방했다. 오랫동안 인적이 드물었던 곳인 만큼 숲의 생태계가 거의 자연 그대로 보존되어 있는 청정 숲길이다.
도로 옆에 차를 세우고 표지판 화살표를 따라 내려가면 바로 깊은 숲 속으로 들어가게 된다. 입구에는 ‘소똥령숲길’ 종합 안내판이 있어 각자 사정에 맞게 코스를 정해서 숲을 걸을 수 있다. 입구의 출렁거리는 구름다리를 건너 300~400년 수령의 소나무가 우거진 숲으로 들어가면 쇠똥구리 쉼터와 진부리 유원지, 율리와 장산리 임도를 거쳐 소똥령샘터로 돌아오는 5㎞ 거리의 2시간 30분 코스가 있다. 또 칡소폭포와 생태 체험 학습장을 지나고 백두대간 트레일 초입을 지나 장산리 임도에서 소똥령샘터로 돌아오는 길로 총 10㎞를 6시간가량 걷는 코스가 있다.
숲길 산책을 마치고 다시 간성 방향으로 좀 더 내려오면 마치 알프스의 전원 마을처럼 조용하고 한가로운 풍경의 농촌 체험마을인 소똥령마을이 나타난다. 유아 숲 체험장과 자연학교 등이 있는 이곳은 영화 ‘안시성’ 촬영지로도 알려진 곳이다. 민박할 수 있는 게스트 하우스와 농촌 체험관, 솔숲 야영장 등이 잘 정비되어 있다.
고성의 꽃, 화진포
화진포를 둘러볼 수 있게 정비된 둘레길, 겨울이면 철새가 날아오고, 고니, 청둥오리, 가시고기, 남생이 등이 서식하는 아름다운 호수 화진포 |
화진포의 성 옥상에서 내려다본 동쪽 화진포 앞바다와 서쪽 호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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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해안에는 유난히 석호潟湖가 많다. 석호란 지각 변동과 모래톱 등으로 바다와 격리되어 자연적으로 만들어진 호수다. 담수와 해수의 중간 성격을 갖는 기수호汽水湖로, 분포되어 있는 생물이 다양하다. 강릉의 경포호와 속초의 영랑호, 그리고 고성의 화진포호와 송지호 등이 모두 석호다. 일반 육지의 호수와 다르고, 바다와는 또 다르다. 물의 종류가 달라서 연어·숭어·도미 등 서식어가 많아 낚시터로 유명하고, 겨울이면 고니와 청둥오리 등 철새가 날아오기도 한다. 남생이와 가시고기 등 천연기념물이나 멸종 위기종 등이 서식하는 생태의 보고이자 근사한 풍경을 간직한 여행의 보고이기도 하다.
그중 화진포花津浦는 16㎞에 달하는 호숫가에 아름다운 해당화가 만발해서 붙은 이름이다. 거센 바닷바람을 맞으면서도 붉은 꽃을 탐스럽게 피워내는 끈기와 슬기를 지닌 해당화는 고성군의 군화이기도 하다. 둘레길을 걸으며 갈대숲과 소나무숲을 동시에 감상해도 좋고, 주변 명소인 ‘화진포의 성’과 생태박물관 등을 돌아봐도 좋다.
가장 유명한 곳은 화진포의 성이다. 1938년에 선교사 셔우드 홀 부부의 의뢰로 독일 건축가인 베버가 지어 예배당으로 사용하던 곳인데, 1948년 이후 북한이 귀빈 휴양소로 운영했다. 그 당시 김일성과 가족들이 묵고 간 적이 있어 ‘김일성 별장’으로 알려졌다. 지금은 6.25 전쟁 중 훼손된 건물을 복원해 ‘역사안보전시관’으로 운영 중이라서 누구나 관람할 수 있다.
화진포 금강소나무숲길의 시작점에 자리해 소나무로 둘러싸인 이 건물은 지상 3층의 석조 건물로 앞쪽을 둥글게 유럽 중세 시대 성처럼 설계해서 이 부분 때문에 이 건물을 ‘화진포의 성’이라 부른다. 2층에는 예전의 사용 모습을 재현한 전시관과 함께 원형 거실이 있다. 그 시절에 김일성 일가가 묵었다는 것은 이 일대에서는 가장 좋은 전망을 지닌 곳이었다고 볼 수 있는데, 옥상에 올라가면 그 이야기에 저절로 고개가 끄덕여진다. 동쪽으로는 송림을 건너 바다가, 서쪽으로는 화진포가 햇살을 받아 반짝이는 모습이 한눈에 들어오는 화진포 최고의 전망대다.
화진포의 성이 있는 화진포 국민관광단지 안에는 화진포 생태박물관도 있다. 3층 규모의 박물관에서는 기증 받은 박제와 골격, 화석류와 영상, 실물 모형 등을 통해 석호인 화진포의 생성 과정과 서식하는 동식물의 생태계를 관찰할 수 있다. 1층에 들어가면 패널에 석호에 관해 설명이 쉽게 쓰여 있다. 전시관에 들어서면 마치 호수 안에 들어간 듯 바닥을 유리로 하고, 그 아래 서식하는 물고기들을 모형으로 전시했다. 겨울이면 옆면에는 화진포에 날아오는 철새들 모형을 전시하고, 화진포 바닷가에서 볼 수 있는 물고기 모형도 전시해 놓았다. 선사 시대에 살았을 공룡 골격과 호랑이 등 동물 모형도 실물에 가깝게 재현해 놓았다. 옥상에는 화진포 호수를 자세히 볼 수 있는 전망 망원경을 설치해 호수를 전체적으로 한눈에 볼 수 있게 했다.
아이들 체험 학습장 정도의 전시이긴 해도 화진포가 석호라는 특성을 갖고 있어 멸종 위기종이나 천연기념물 등 다양한 동식물이 서식하는 생태계의 보고임을 확인시키는 데는 충분하니 일부러 들러 볼 만하다.
새로운 일출 명소, 백섬해상전망대
백섬해상전망대는 널찍한 데크와 유리 바닥으로 꾸며진 전망대 등으로 해돋이를 보기 좋게 꾸몄다, 거진항 수산물 판매장 전경과 판매 중인 해산물들 |
거진항 못 미처 왼쪽에 커다란 바위섬이 나타난다. 백섬이라 부르는 곳으로 최근에 ‘거진항 어촌관광 체험마을 조성사업’의 일환으로 해안 도로와 백섬을 연결하는 해상 데크가 완성되어 지나는 이들의 시선을 끈다. 원래 백섬은 잔돌이 많아 ‘잔철’이라 부를 정도로 바위가 많고 배가 닿기 힘들어 사람이 들어가기 힘든 곳이었다. 인적이 드문 섬은 갈매기들의 휴식처가 되었고, 섬은 갈매기 배설물로 하얗게 변해서 지금의 ‘백섬’이란 이름을 얻었다.
길이 130m, 폭 2.5m에 푸른 파도 모양을 디자인해 놓은 데크를 걸어 해상 전망대에 오르니 동쪽으로는 푸른 바다, 북쪽으로는 해금강과 금구도, 남쪽으로는 거진항과 거진11리 해변이 수놓는 빛의 장관이 펼쳐진다. 강화 유리로 바닥을 만든 전망대 위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면 바닷물이 바위들 사이를 소용돌이치는 장면이 아찔한 스릴감을 느끼게 해 준다. 바로 앞 도로 건너편 거진삼림욕장 안의 해맞이봉과 함께 조만간 동해 일출을 볼 수 있는 새로운 명소로 떠오를 전망이다.
근처의 거진항에 새로 준공된 수산물 판매장도 들러 볼 만하다. 천혜의 항구인 거진항 해안가에는 활어 난전이 열리곤 했는데 고성군에서 정비를 위해 조성한 곳으로 앞바다에서 잡히는 각종 활어와 대게, 홍게, 문어 등을 판매한다. 지은 지 얼마 안 되어 깨끗하고 친절한 수산물 시장 구경도 하고, 저녁에 숙소에 가서 먹을 횟감을 구입할 수 있다.
독특한 형태의 암석 해안, 송지호 해안 서낭바위
화강암 사이에 규장암맥이 독특한 무늬를 이루는 지질을 보이는 함석해안, 서낭바위, 서낭바위 지역 가운데 우뚝 솟은 부채바위. 1억7000만 년의 시간 동안 화강암과 규장암이 교차하면서 만들어 냈다. |
화진포와 함께 유명한 석호인 송지호 인근에 독특한 경관을 가진 암석 해안이 있다. 강원평화지역 국가지질공원 중 하나인 송지호 해안 서낭바위는 화강암과 파도의 침식 작용이 어우러져 독특한 지형 경관을 이룬다. 오래 전 그곳에 오호리의 성황당이 있었다 해서 이 일대를 서낭바위라 부른다.
서낭바위 일대의 화강암들을 자세히 보면 마치 띠를 두른 듯 회색 바위 사이에 붉은색 바위가 층을 이루며 끼여 있는 모습을 발견할 수 있다. 풍화와 침식이 진행되면서 화강암과 규장암맥이 서로 층을 이루게 되었고, 압축되어 마치 무늬처럼 된 것.
해안가 중심에 우뚝 솟아 있는 버섯 모양의 바위는 부채바위라 하는데 얼핏 보면 스누피처럼 생겼다. 머리 부분은 화강암, 잘록한 허리 부분은 규장암으로 이뤄져 있고, 아랫부분은 다시 화강암이다. 오랜 시간의 침식 작용으로 현재 형태가 되어 서낭바위의 대표 이미지로 자주 소개되곤 한다.
강태공들은 여유롭게 낚싯대를 드리우고 고기를 낚고 아이들은 바위 사이를 콩콩 뛰어다니며 즐겁게 노는 곳이지만, 그들이 발을 딛고 서 있는 곳이 1억7000만 년 전 형성된 바위고, 그 시간을 들여 만들어 낸 자연의 무늬임을 알면 새삼 자연의 위대함에 놀라게 된다. 그저 그런 바위 해안이라고 생각했던 곳이 1억7000만 년에 걸친 신의 작품임을 깨닫게 되는 경험, 여행이 주는 선물이다.
젊은 고성, 아야진
아야진 해안을 거닐다 보면 양미리나 도루묵 등을 줄줄이 꿰어서 말리는 광경을 자주 만난다, 아야진항 안쪽 마을 담장에 설치한 트릭아트들. |
아야진 등대길. 항구에는 배들이 정박해 있고, 양미리 말리는 풍경 등 조용하고 비릿한 어촌의 일상을 구경할 수 있다, 벽화마을처럼 등대길 곳곳에 트릭아트를 설치해 볼거리를 만들어 놓았다. |
아마도 요즘 고성에서 가장 인기 있는 곳을 꼽으라면 젊은 층에서는 단연 아야진을 1위로 내세울 것이다. 양미리 주산지로 유명해 바다만 바라보며 살던 작은 어촌 아야진이 드라마 ‘사이코지만 괜찮아’의 촬영지로 등장하면서 이곳을 찾는 젊은 층의 발길이 잦아졌기 때문이다.
원래 아야진의 이름이 구암리龜巖里였던 것은 바닷가에 거북이 등처럼 넓고 편평한 바위가 펼쳐져 있어서였는데 어찌어찌 이 이름은 아야진我也津으로 바뀌었다. 거북이 등 같은 바위가 깔려 있는 해안은 지금도 여전히 바위틈으로 에메랄드빛 바닷물이 밀려오고 쓸려 나가며 보기 드문 암석 해안 풍경을 선사한다. 그 옆에는 넓은 모래사장이 펼쳐져 여름이면 다이빙도 하고 스노클링도 하는 액티비티 강한 해수욕장이다.
요즘 같이 쌀쌀한 겨울에 아야진을 찾는다면 드라마 속 장면처럼 버스 정류장 부근의 해안가나, 아야진반점을 끼고 올라가는 벽화마을 산책이 좋다. 해안을 산책하다가 중간에 경계석에 앉아 멍하니 바다를 바라보기만 해도 좋고, 벽화마을로 들어가 느긋한 걸음으로 아야진 마을을 돌아보는 것도 좋다.
아야진 벽화마을은 도시 재생 공공 미술 사업인 ‘DNA코리아’가 아야진항을 트릭아트뮤지엄으로 만들겠다는 기획 아래 작업한 곳이다. 일반적인 벽화와는 달리 마치 배가 창문에서 막 튀어나올 것 같고, 물고기들이 헤엄치는 듯한 트릭아트를 페인팅과 타일을 사용해 아야진의 마을 벽에 작업했다. 마을 곳곳에 그려진 트릭아트는 주민들에게는 생활 속의 즐거움을 주고, 관광객들에게는 기존 벽화와는 차별화된 이색적인 볼거리로 알려지고 있다. 벽화에 있는 것처럼 마을 강아지들과 인사하고, 어르신들이 배로 잡아 온 생선을 손질해 볕에 말리고, 텃밭에 움파를 심는 어촌의 일상을 구경할 수도 있다.
동네를 다 돌고 나면 바다 쪽으로 나가 등대길로 들어선다. 하늘에서 내려다보면 방파제 두 개가 두 팔을 길게 뻗어 항구를 끌어안고 있는 모양이다. 빨간 등대가 있는 긴 방파제 입구에는 갓 잡아 온 양미리를 꿰어 말리는 모습이 진풍경을 이루고, 걸어 나가다 보면 중간에 트릭아트를 설치해 재미있는 사진을 찍을 수 있게 해 놓았다. 널찍한 방파제 길을 걸어서 바다 쪽 끝에 닿으면 거북이 모양의 조형물이 있고, 건너편으로 흰색 등대가 마치 동생 같은 모습으로 아야진을 지키는 모양새다. 이곳 역시 해돋이 보기에 좋은 장소다.
바람소리가 일품인 청간정
청간정 누각에서 내다본 천진해수욕장의 모습, 청간정 아래 모래톱 위로 흰 갈매기 떼가 우루루 날아오르고 있다, 솔숲길을 지나 만나게 되는 절벽 위의 아름다운 중층 누각, 청간정 |
고성 하면 청간정이 떠오르는 것은 고등학교 때 외우다시피 배운 송강 정철의 ‘관동별곡’ 때문이다. 정철은 관동에서 가장 경치가 좋은 여덟 곳 중 하나로 청간정을 꼽았다. 정철이 꼽은 낙산사와 죽서루, 망양정 등이 그러하듯 이곳 청간정 역시 위치가 우선 일품이다.
좁은 숲길을 따라 걸어 올라가면 낙락장송 굵직한 소나무들이 호위하듯 양 옆에 있고, 그 끝에 아름다운 팔작지붕의 중층 누각인 청간정이 있다. 1560년에 처음 지어 여러 번 풍화를 겪고 1981년에 완전히 보수해 복원한 강원도 유형 문화재 제32호다. 나무 계단으로 누각 위에 오르면 사방으로 막힘 없이 트여 있는 바다가 눈에 들어온다. 바닷바람이 불 때마다 기분 좋은 솔향이 실려 온다.
화려한 단청으로 장식한 누각에 앉으면 눈 높이로는 끝없는 바다고, 일어서 누각 아래를 내려다보면 모래 벌판에 괭이갈매기 수백 마리가 떼를 지어 날아 오르내리며 꾸룩꾸룩 자연의 소리를 세찬 파도소리에 얹어 올린다. 이 바람소리가 동해안 어느 정자에서 듣는 것보다 최고다. 그래서 청간정에서는 보는 것보다 듣는 것이 더 중요하다.
옛 선비들이 굳이 언덕 높은 곳에 정자를 짓고 그곳에서 시문을 읽고 지었던 이유에 갑자기 공감하게 된다. 정면 3칸, 측면 2칸의 좁은 누각인데도 여기서라면 누구라도 두어 줄짜리 시 한 수는 읊을 수 있겠다. 동해안을 따라 수많은 정자가 있지만 그 중 쏙 뽑아 관동팔경에 넣은 데는 다 이유가 있었다. 여기서 보는 일출과 일몰은 더 장관이겠다. 화진포에서 청간정까지 7번 국도를 타고 고성의 바다를 한껏 누리는 것, 이번 겨울에 꼭 시도해 보기를 추천한다.
[글과 사진 신혜연(콘텐츠 기획자, 헤이컴 대표)
[본 기사는 매일경제 Citylife 제761호 (21.01.04)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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