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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동차]by 조선일보

4만번 열어본 피아노… 공연장 아침은 내가 깨운다

대한민국 조율 명장 1호… 

국내 최고령 피아노 조율사 이종열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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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아노 조율사 이종열씨가 2021년 2월 24일 서울 서초구 예술의전당에서 공연 전 피아노 조율 작업을 하고 있다. 65년째 피아노 조율을 하고 있는 대한민국 피아노 조율 명장 1호 이종열 조율사는 세계적인 피아니스트들의 찬사를 받고 있다. /김연정 객원기자

공연장의 저녁이 시끌벅적한 파티장이라면, 아침은 고요한 산사(山寺) 같다. 적막한 공연장을 깨우는 소리가 다음 연주회를 준비하기 위한 피아노 조율(調律)이다. 조율은 피아노 뚜껑 아래의 현(絃)이 감긴 핀을 조이거나 풀어서 음정을 맞추고 건반 상태를 점검하는 일. 피아노가 환자라면 조율사는 의사요, 피아노가 자동차라면 조율사는 정비사다. 지난 60여 년간 4만1000번에 걸쳐서 이 작업을 해온 국내 최고령 피아노 조율사가 이종열(83)씨다.


지난 24일 오전 9시.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1층의 아홉 평 남짓한 피아노 보관실에서 어김없이 조율 소리가 흘러나왔다. 이날 저녁 피아노 이중주(IBK챔버홀)와 피아노 독주회(리사이틀홀) 등 2건의 연주회가 잡혀 있었다. 이 때문에 그는 이틀간 3대의 악기 조율을 맡았다. 이씨는 왼손으로 88개의 건반을 누르면서 오른손으로는 튜닝용 해머를 들고 핀을 조였다가 푸는 일을 반복했다. 건반마다 강철로 만든 줄이 적게는 하나, 많게는 3개씩 매여 있다. 연주자가 건반을 누르면, 양털을 압축한 해머가 이 줄을 때려서 소리를 낸다. 피아노는 건반 악기. 하지만 현을 때려서 소리를 내기 때문에 ‘타현(打絃) 악기’로도 불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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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의전당에서 아침 일찍 들리는 소리는 피아노 조율이다. 조율사 이종열씨는 60여 년간 4만1000번이나 반복했다. 뒤편에는 그의‘만물상자’인 공구함이 보인다. /김연정 객원기자

드라이버·몽키스패너는 물론, 핀셋·바늘·전기 면도기까지. 그의 공구함은 만물 상자다. 해머가 납작해지면 사포를 꺼내서 문지르거나 면도기로 수염 깎듯이 다듬는다. 섬세하고 매끄러운 느낌을 보태기 위해서 파우더를 살짝 뿌리고, 바늘로 해머를 쿡쿡 찔러서 소리의 생기를 더하기도 한다. 그는 “뼈와 관절을 살피는 정형외과 의사 같지만, 침술을 쓴다는 점에서는 한의사와도 닮았다”며 웃었다. 건반이 미끄러우면 행여 연주자가 잘못 누를까 봐, 즉석에서 건반에 헤어스프레이도 뿌린다. 조율은 짧게는 한두 시간이면 끝나지만, 해외 연주자의 굵직한 내한 무대나 음반 녹음이 잡히면 며칠씩 장고를 거듭한다.


전북 전주에서 태어난 그는 고교 3학년 때 마을 예배당의 풍금 소리에 반해서 독학으로 악기를 익혔다. “난생 처음 들어본 화음의 구덩이에 빠져서, 평생 못 헤어나게 될 줄은 몰랐다”고 말했다. 저녁에 몰래 예배당에 들어가 풍금 자물통의 걸쇠를 드라이버로 풀고서 새벽까지 찬송가를 연주했다. 일본 조율 책을 사다가 공부했고, 군에서 제대한 뒤 아예 서울의 피아노 공장에 들어갔다. 그는 “대학도 안 나왔고, 스승도 없다. 전부 독학”이라고 말했다. 1971년에는 프리랜서 조율사로 독립했고 2007년 정부의 ‘대한민국 명장’ 증서를 받았다. 그의 명함에는 ‘피아노 조율 명장 제1호’라고 적혀 있다. 최근에는 유재석·조세호가 진행하는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해서 화제가 됐다. 그는 “녹화 당일 손녀딸이 현장에 와서 ‘할아버지 덕분에 연예인과 사진 찍었다’고 좋아했다”라며 웃었다. 피아니스트 조성진은 그에 대해 “선생님이 조율해 주시면 피아노 소리에서 빛이 나는 느낌이 든다”고 격찬하기도 했다.


그는 청력 관리를 위해서 시끄러운 곳에는 가지 않는다. 이어폰도 쓰지 않는다. “전날 과음하면 다음 날 소리가 멀게 들린다. 주량도 맥주 반 컵이 전부”라고 말했다. 2003년 명피아니스트 크리스티안 지메르만의 내한 공연을 앞두고는 여름 감기에 걸렸지만 감기약도 안 먹었다. 그는 “까다로운 연주자 앞에서 긴장 풀어졌다고 괜히 트집 잡히기 싫었다”고 말했다.


조율이란 ‘타협’이라는 것이 그의 지론. 하나의 음으로는 화음도, 조율도 성립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는 “조율이란 단지 몇 개의 화음을 아름답게 하기 위해 다른 음을 희생시키는 것이 아니다. 서로 똑같이 양보해서 음을 결정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래서 정치를 조율에 빗대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는 “앙상블이나 합창에서 크게만 소리 내면 음악적 균형이 깨지듯이 모든 것이 민주주의적 타협으로만 가능하다”고 말했다. 어쩐지 정치권이 그에게 한 수 배워야만 할 것 같았다.


[김성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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