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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드]by 조선일보

호호 불어 드세요, 코로나 불안 달래주는 '영혼의 수프'

하루키 수필에도 나온 양파 수프, 바이러스 공포에 보양식으로 각광

채 썬 양파 볶아 육수에 고면 끝… 집에서는 시판 곰탕 국물도 좋아

청양고추 넣으면 해장에도 제격


"옆방에서는 라이온이 야식으로 수프를 데우고 있다. 따스한 양파의 향기가 문틈으로 우리가 있는 곳까지 새어 들어왔다."


무라카미 하루키 수필집 '소울메이트'에서 연금 생활 중인 라이온은 옆방에서 룸메이트가 여자 친구와 사랑을 나누는 동안 야식으로 '양파 수프'를 데운다. 언제든 데워 먹을 수 있는 저장 음식이고, 외로움도 다독여주기 때문이다. 또 다른 기능은 '보양(保養)'이다. 양파에 있는 알리신과 케르세틴은 항(抗)바이러스 성분이다. 양파 수프 한솥 끓여놓고 우한 코로나를 이겨보는 건 어떨까. 양파 수프 맛집 셰프들에게서 그 비법을 훔쳐왔다.

고대 로마서 시작한 보양식 수프

양파 수프의 기원은 고대 로마 시대다. 기본 요리법은 채 썬 양파를 캐러멜색이 날 때까지 달달 볶아 육수를 붓고 푹 고는 것이다. 곰탕과 비슷해 양이 많을수록, 낮은 온도에서 푹 골수록 맛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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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서초구의 프렌치 레스토랑 '태번 38'의 양파 수프. 4가지 와인(레드·화이트·셰리·포트)과 브랜디, 코냑으로 풍미를 더했다. 김종연 영상미디어 기자

국내에서 가장 오래된 이탈리안 레스토랑 '라칸티나'는 소고기로 육수를 뽑는다. 기름기를 제거한 안심에 양파·당근·셀러리 등을 넣고 뽀얗게 육수가 우러날 때까지 끓인 뒤 거른다. 수프 볼에 볶은 양파, 육수를 넣고 식빵 토스트를 하나 올린 후 임실 피자치즈를 뿌려 오븐에 넣으면 완성. 정곤택 주방장은 "예전엔 임실 치즈밖에 없어서 이걸 썼는데 지금은 이 맛을 좋아하는 사람 때문에 다른 걸로 못 바꾼다"고 했다. 간은 설탕과 후추, 쇠고기 가루 등으로 한다.

18세기 프랑스의 왕실 요리

양파 수프가 지금과 같은 모습을 갖춘 건 18세기 프랑스 파리에서다. 루이 15세가 사슴 사냥을 하다 들어간 빈 오두막에서 찬장에 남은 양파, 버터, 샴페인을 조리해 먹은 것이 시작이라고 한다.


광화문 프렌치 레스토랑 '라브리'는 사골로 육수를 낸다. 장정기 책임주방장은 "사골을 미리 오븐에 넣어 180도에서 30분 정도 갈색이 날 때까지 구워 육수를 낸다"며 "당근, 양파, 셀러리, 마늘도 볶아서 이틀 정도 우려낸 사골과 함께 5일을 끓인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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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종로에 있는 프렌치 레스토랑 '라브리'의 양파 수프. 며칠을 고아낸 사골 육수를 사용한다(왼쪽). 오른쪽은 서울 중구에 있는 이탈리안 레스토랑 '라칸티나'의 양파 수프. 소고기 안심으로 우려낸 육수에 임실피자치즈를 올려 식감을 더했다. 김종연·양수열 영상미디어 기자

이 육수를 사용해 다진 소고기, 양파, 셀러리, 당근, 마늘, 월계수, 허브, 후추, 계란 흰자 등으로 콩소메(고기육수)를 뽑는다. 볶은 양파와 콩소메를 넣고 그 위에 바게트와 스위스 그뤼에르 치즈를 넣고 오븐에 넣으면 완성. 진한 맛과 양파의 식감은 샥스핀 수프 같기도 하다. 장 셰프는 "양파 채를 얇게 썰수록 식감이 좋다"며 "집에서 한다면 육수로 곰탕이나 시판용 사골 육수를 쓰는 것도 방법"이라고 했다.

미국에서 유행하며 전 세계로 퍼져

양파 수프가 전 세계적으로 인기를 끈 것은 1960년대 미국에서 프랑스 요리가 유행하면서다. 그 역할을 한 건 요리사 '줄리아 차일드'. 그를 주인공으로 한 영화 '줄리&줄리아'에서도 요리 수업 첫날 양파 채 써는 법부터 배운다.


서초구 '태번38'의 고병욱 셰프는 미 라스베이거스 부숑에서 처음 양파 수프를 접했고, 나파밸리에 있는 부숑에서 요리를 배웠다. 고 셰프는 "소고기보다 닭이 더 깔끔해 닭으로 육수를 낸다"며 "집에서는 시판용 삼계탕 육수나 치킨스톡을 사용해도 된다"고 말했다. 여기에 닭발, 당근, 양파, 셀러리, 대파, 버섯, 타임, 로즈메리, 후추(백·흙), 월계수잎 등으로 치킨 주(jus·즙)를 뽑는다. 육수에 청양고추를 넣는 것이 비법. 이렇게 만든 육수와 즙을 볶은 양파와 수프 볼에 넣고 4가지 와인(레드·화이트·셰리·포트)과 브랜디, 코냑을 넣고 끓인다. 그 위에 수분을 날린 바게트와 에멘탈 치즈·콩테 치즈를 1대2 비율로 올리고 오븐에 넣으면 완성. 고 셰프는 "12~18개월 정도 숙성시킨 콩테 치즈가 향이 제일 잘 맞는다"고 말했다.


달달한 양파와 브랜디 향, 청양고추의 톡 쏘는 매운맛이 부드럽게 어우러졌다. 고 셰프는 "술 마신 다음 날 해장으로 좋다"고 했다. 그런데 먹고 나니 위스키 한잔이 생각났다.


[이혜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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