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차·롯데 덮쳤던 ‘초고층의 저주’, 중국에 직격탄
<차학봉기자의 부동산 봉다방>
초고층 짓던 헝다 디폴트, 중국 부동산업체 연쇄 부도위기
사막의 기적 두바이, 세계 최고층 완공 시점에 경제 위기
초고층 추진에 주가 폭락했던 현대차, 50층으로 계획 변경
롯데, 한국 최고층건물에 막대한 투자, 신규사업 진출 늦어져
인천시 151층 재추진, 초고층 시행사 부도 속출
초고층 랜드마크 시대 종언, 상징물 디자인 경쟁시대
중국 안후이성 허페이시에는 헝다국제파이낸셜센터 예정 부지가 있다. 중국을 대표하는 부동산 개발업체 헝다그룹이 높이 518m, 128층 규모로 2025년 완공 목표로 사업을 추진했다. 파산위기에 몰리면서 사업이 보류된 상태이다. 헝다그룹은 자동차 산업에도 진출, 전기차 생산을 준비중이다. 중국에는 전 세계 20대 초고층 건물 중 9개가 몰려 있다. 현재 중국에서 건설 중인 높이 500m 이상 초고층 건물은 8개나 된다.
작년 헝다그룹의 파산위기이후 부동산 버블 붕괴론이 나올 정도로 중국 부동산업계는 연쇄 부도위기에 몰렸다. 부동산 가격 하락과 경기 침체 등이 겹치면서 중국 내 초고층 건물 계획은 상당수 보류되거나 취소되고 있다.
이른바 ‘마천루(초고층건물)의 저주’가 ‘부동산은 불패’라며 초고층 건물 건설붐을 주도하던 중국에 직격탄을 날리고 있다. 초고층의 저주는 도이체방크의 분석가 앤드루 로런스가 제시한 가설로, 초고층 건물 건설 자체가 경제위기를 예고한다는 것이다.
헝다그룹이 추진했던 안후이성 허페이시의 헝다국제파이낸셜센터 조감도, 높이 518m, 128층 규모로 2025년 완공 목표로 사업을 추진했으나 파산위기에 몰리면서 공사가 중단됐다. /위키피디아 |
◇초고층 저주, 두바이, 중국도 직격
천문학적 비용이 들어가는 초고층 빌딩 건설은 주로 부동산 버블기에 추진이 되는데, 정작 건물이 본격화되거나 완공 시점에는 버블이 꺼지고 경제 불황을 맞는다는 것이 ‘초고층의 저주’이다. 초고층 건물은 자재비, 건축비가 많이 들고 공간활용이 어렵고 운영비가 많이 들어 사업성이 떨어진다. 사업성 떨어져도 프로젝트가 추진되는 것은 호황이 계속 이어질 것이라는 무한 낙관론을 배경으로 기업이나 국가가 ‘ 위세 과시형’ 으로 사업을 밀어 붙인다. 1930년대 미국 뉴욕에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102층)이 완공됐을 때 대공황이었다. 1997년 말레이시아 페트로나스 트윈타워(88층, 451.9m)가 완공할 즈음에는 아시아 외환위기가 발생했다.
사막에서 기적을 일으켰다는 칭송을 듣던 두바이도 ‘초고층의 저주’를 피할 수 없었다. 세계 최고층인 부르즈할리파(828m, 162층)의 마무리 공사가 한창이던 2009년 국영기업의 모라토리엄(채무상환 유예) 선언으로 두바이는 경제위기에 빠졌다. 아랍에미레이트의 구제금융으로 위기를 넘겼으나 경제가 회복되는데는 수년이 걸렸다. 부르즈할리파를 뛰어넘는 167층, 1007m의 건물을 목표로 했던 사우디아라비아 제다타워는 2013년에 착공했다. 불투명한 사업성에다 코로나 여파 등으로 2018년 1월 이후 공사가 중단됐다.
◇초고층으로 주가 급락 현대차, 100층 건물 50층으로 바꿔
2017년 개장한 한국의 최고층 빌딩인 롯데월드타워(123층, 555m)는 롯데그룹 창업주인 고 신격호 명예회장의 숙원 사업이었다. 서울공항 항공기의 안전성, 교통 혼잡 우려가 겹치면서 건축허가를 받는데 20년 이상이 걸렸다. 총 공사비로 4조2000억 원이 들어갔다. 엄청난 투자비와 운영비용으로 건물 자체만으로는 수익성을 맞추기 어려워 ‘ 영구 적자 건물’이라는 쓴 소리도 듣고 있다. 롯데그룹이 한국 최고층 빌딩이라는 상징성을 획득했지만, 천문학적 자금을 건물신축에 투자하는 사이 사업다각화와 신성장 동력 확보에 뒤처졌다는 비판도 나온다. 초고층 빌딩 탓은 아니겠지만 공사기간을 전후해 형제의 난, 사드보복, 면세점 취소 등 롯데는 유례없는 암흑기를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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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자동차그룹도 한때 초고층의 저주에 빠졌다. 현대차그룹이 2014년 강남구 삼성동의 한전부지를 10조5500억원에 사들였다. 관련 계열사와 자동차 전시관 등이 입주하는 글로벌비즈니스센터(GBC)를 짓겠다고 선언했다. 당시 10조원은 전세계 주요 도시의 랜드마크급 빌딩 10개를 구입할 수 있는 천문학적 돈이었다. 한전부지 예상 낙찰가가 4조∼5조원 수준이었는데, 갑자기 삼성이 입찰에 참여하면서 터무니 없이 가격이 치솟았다. 자동차 업계에선 10개의 자동차 조립공장 건립, 20여 종의 새 차 모델 개발, 글로벌 완성차 기업을 인수할 수 있는 자금을 사옥건설에 투자하는 것은 지나치다는 비판이 나왔다.
삼성동 부지 낙찰을 전후로 외국인 투자가들이 현대차 주식을 대거 팔아 치우는 바람에 주가가 급락했고 전고점 회복에 거의 7년 정도가 걸렸다. 2020년 10월 현대차 회장에 취임한 정의선 회장은 결국 100층 이상 초고층을 포기하고 50층짜리 3개동으로 변경했다.
건물 높이를 기업 자존심으로 여기던 1,2세 재벌회장과 달리, 젊은 회장은 실용주의를 선택한 것이다. 당초 건축비만도 약 3조7000억원대였지만, 계획변경으로 비용이 1조 이상 줄어들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전기차, 자율주행차에 더 많은 자금을 투자하기 위한 결정이었다. 경남기업은 1조5000억원을 들여 베트남 최고층 건물을 완공했지만 워크아웃에 들어갔다.
◇초고층 건물 포기 삼성, 사옥 대거 매각
삼성동 부지를 놓고 현대차와 경쟁을 벌였던 삼성그룹도 한때 초고층 빌딩을 추진했다. 고 이건희 삼성 전 회장은 90년대 강남 도곡동에 102층 규모의 삼성타운을 짓는 계획을 추진했다. 주변에 교통혼잡을 초래한다는 주민들의 민원으로 좀체 인·허가를 받지 못했다.
1998년 외환위기가 터지자 초고층의 꿈을 접었다. 삼성은 공사비가 많이 들어 사업성이 떨어지는 100층 건물 대신 지금의 타워팰리스를 지어 분양했다. 사옥대신 현금을 챙긴 것이다. 삼성은 외환위기를 계기로 전자, 반도체에 집중투자해 글로벌 기업으로 도약했다. 삼성그룹은 삼성생명 태평로 본관, 서초동 삼성물산 사옥, 삼성화재 을지로 사옥 등 관계사 사옥을 대거 매각했다. 삼성이 그룹의 역사가 담긴 건물까지 매각한 것은 건물로 사세를 과시하는 시대가 끝났다는 것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사건이었다.
◇서울시, 인천시 100층 고집에 빈땅 방치
2000년대 후반 부동산 가격이 급등하면서 한국에서도 초고층 건물 붐이 거세게 불었다. 롯데타워와 현대차의 삼성동 GBC외에도 용산 랜드마크 빌딩(110층, 620m), 서울 상암동 디지털미디어시티 랜드마크 (130층, 580m), 인천 송도 인천타워(151층.610m), WBC 솔로몬타워 (108층 500m) 등이 한꺼번에 추진됐다.
하지만 사업성 부족, 자금난 등으로 10년 이상 추진 자체가 되지 않았다. 무리한 사업추진을 하다 관련 업체가 부도를 내기도 했다. 용산, 상암동, 송도의 부지는 여전히 빈땅으로 방치돼 있다. 최근 인천시장 인수위측은 “ 서울 잠실의 롯데월드타워(123층·555m)보다 높은 국내 최고층 타워를 인천 송도에 건설해야 한다”는 주장을 내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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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앞으로도 초고층 빌딩 추진자체가 쉽지 않을 전망이다. 금리가 치솟고 경기침체 우려가 나오는 등 사업 여건이 더 악화되고 있다.
국내에서도 롯데월드타워 완공이후 초고층이 갖는 랜드마크적 희소성과 상징성이 사실상 없어졌다. 세계적으로도 중국에 너무 많은 초고층 건물이 건설돼 희소성 자체가 거의 없다. 중국 정부는 2020년 안전상의 이유 등을 들어 높이 500m 이상 빌딩의 신축을 원칙적으로 승인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초고층 보다 상징성 확보할 수 있는 디자인과 활용이 더 중요
기업이 사업성 없는 부동산 사업에 수조, 수십조 단위의 투자를 하는 것은 시대착오적이라는 비판도 나온다. SK, 롯데 등 대기업들은 보유 건물을 리츠에 매각, 건물을 임대해 사용하면서 신사업 투자자금을 확보하고 있다.
하지만 일부 지방자치단체들은 초고층 건물을 통한 상징성 획득과 관광객 유치 활용 등의 이유를 들어 초고층에 집착한다. 시대착오적이다. 뉴욕의 허드슨야드의 랜드마크는 초고층건물이 아니다. 높이 45m의 벌집 모양의 청동색 개방형 건축물 베슬(Vessel)이다. 이 건물은 계단 2500개와 전망 공간 80개로 이뤄져있다. 건물 내 계단을 올라가며 맨해튼 시내와 허드슨강을 다양한 각도로 조망할 수 있는데다, 독특한 외관으로 ‘뉴욕의 에펠탑’이란 별칭까지 붙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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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의 작은 항구도시 빌바오는 주력 산업인 철강·조선 산업이 아시아 국가에 밀리면서 경기침체에 빠졌다. 빌바오가 선택한 활로는 건축과 문화였다. 건축가 프랭크 게리가 설계한 빌바오 ‘구겐하임 미술관 분관’은 감탄이 절로 나오는 독특한 외관으로 1997년 완공되자마자 단숨에 세계적인 명소가 됐다. 연간 100만 명의 관광객이 찾을 정도로 인기를 끌면서 빌바오는 도시 개발의 새로운 모델로 떠올랐다.
도심재개발로 지어진 스페인 빌바오의 뉴욕 구겐하임 미술관 분관은 지역경제 활성화의 견인차 역할을 하고 있다. |
[차학봉 부동산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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