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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업에 극단선택까지...별을 따고도 망하는 ‘미쉐린의 저주’

‘독이 든 성배’ 미쉐린 효과 & 저주


조선일보

‘미쉐린 가이드 서울 & 부산 2024년’에 소개된 1스타 레스토랑 요리사들이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미쉐린은 국내 진출한 2017년 이후 서울 지역 식당만을 평가 대상으로 하다가 올해 처음 부산 지역으로 범위를 넓혔다./미쉐린 가이드 서울·부산

레스토랑 평가·안내서 ‘미쉐린 가이드’에서 최고 등급 별 셋을 받은 ‘가온’과 ‘모수’가 나란히 문을 닫았다. 두 식당이 폐업을 결정한 공통된 이유는 운영난이었다.


광주요 그룹이 2003년부터 서울 강남에서 운영해온 가온은 ‘랍스터 떡볶이’ 등 최고급 재료를 활용하며 한식 고급화와 세계화를 이끈 모던 한식당이다. 하지만 영업 첫해부터 문 닫을 때까지 별 수익을 내지 못했고, 2017년부터 6년 연속 자본 잠식 상태가 지속되다가 결국 지난해 초 영업 종료를 결정했다.


모수를 운영했던 CJ그룹은 오너 셰프 안성재씨와 계약 연장을 하지 않고 올해 초 폐업했다. 외식 업계에는 CJ그룹이 전반적으로 실적 부진을 겪으면서 수익성이 떨어지는 파인다이닝(고급 외식)에서 손을 떼고 싶어 했다는 후문이 파다하다. 안 셰프는 새로운 투자자를 찾아 6월 모수를 다시 열 계획이다.


‘미쉐린 스타’ 특히 최고 등급인 ‘3스타’는 요리사라면 누구나 꿈꾸는 인생의 가장 큰 목표이자 영광이다. 별을 달자마자 예약이 급증하는 등 금전적 이익도 크다. 이른바 ‘미쉐린 효과’다. 하지만 미쉐린 스타가 반드시 성공을 보장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별을 달고 망하기도 한다. 별이 주는 중압감을 견디지 못하고 자살하는 요리사들도 있었다. 이른바 ‘미쉐린의 저주’다. 그래서 미쉐린 스타는 외식 업계에서 ‘독이 든 성배’로 불리기도 한다.

◇ 손님·매출 급등하는 ‘미쉐린 효과’

프랑스를 대표하는 요리사였던 고(故) 조엘 로부숑(Robuchon)은 한때 ‘세계에서 가장 많은 별을 거머쥔 요리사’로 통했다. 세계 여러 도시에서 운영하는 레스토랑으로 미쉐린 스타를 모두 32개 획득했다. 로부숑은 “미쉐린 스타 1개를 받으면 매출이 20% 오르고, 2개를 획득하면 40%, 3개면 100% 늘어난다”고 말한 바 있다.


로부숑의 말에 셰프들은 대체로 동의한다. 지난해 미쉐린 별 1개를 얻은 미국 덴버 ‘브루토(Bruto)’의 마이클 디아즈 데 리언 요리사는 “별을 받기 전까지 하루 예약이 20~30건이었던 반면, 별을 받은 당일만 예약이 259건 쏟아졌다”고 했다. 별 1개를 획득한 서울 청담동 M레스토랑 오너 셰프 P씨는 “미쉐린 스타를 받기 전과 후의 매출을 비교하면 평균 30% 상승했다”며 “총 15석 중에서 이전에는 매달 평균 점심·저녁으로 각각 10석 정도가 찼던 반면, 미쉐린 스타를 획득하고 나서는 거의 매일 점심과 저녁에 15석이 모두 찼다”고 했다. 그게 돈으로는 얼마냐고 묻자 P셰프는 “구체적 금액은 말할 수 없다”고 했다.


그래서 계산해봤다. M레스토랑은 점심과 저녁을 단일 코스로만 낸다. 점심 코스 13만원, 저녁 코스 23만원이다. M레스토랑은 매주 일요일 쉰다. 미쉐린 스타 획득 이전 점심과 저녁에 10석씩 찼다고 가정했을 경우 연 매출은 총 11억2320만원. 스타 획득 이후 점심·저녁에 15석씩 찼다면 연 매출은 총 16억8480만원이다. 미쉐린 별 하나가 M레스토랑에 가져다 준 추가 수익은 5억6160만원이며 매출을 50% 끌어올렸다는 추정이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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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쉐린 마스코트 '비벤덤'./조선일보DB

외식·호텔 업계에서는 “미쉐린 스타의 경제적 효과는 단순히 매출로만 가늠할 수 없다”고 말한다. 미쉐린 스타가 가져다주는 마케팅·홍보 효과를 함께 따지면 금전적 가치가 훨씬 커진다는 말이다.


서울 강남의 한 특급 호텔 총주방장은 “호텔 입장에서 미쉐린 별 1개의 가치는 100억원은 충분히 된다”고 했다. “호텔 내 레스토랑이 미쉐린 스타를 받으면 해당 식당뿐 아니라 호텔 내 다른 식당들의 매출도 동반 상승한다. 미쉐린 스타 레스토랑의 음식을 맛보고 싶어 찾는 해외 손님들은 아무래도 레스토랑이 있는 호텔에 투숙할 가능성이 높다. 호텔 입장에서 식당은 돈이 되지 않는다. 객실이 차야 돈을 번다.”


미쉐린 스타는 파인다이닝 레스토랑에 특히 소중하다. 미쉐린 가이드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되고 널리 알려진 식당 평가·안내서다. 해외 미식가들을 불러 모으는 모객 능력에서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미국이나 일본처럼 파인다이닝 시장이 성숙한 극소수 국가를 제외하면, 해외 미식가 손님들의 방문은 파인다이닝 레스토랑의 생존에 필수적이다. 한 음식 평론가는 “파인다이닝을 즐기는 국내 소비자는 3000명, 많아야 5000명 정도로 추산된다”며 “이들만 가지고는 고급 레스토랑을 안정적으로 유지할 수 없다”고 했다.


별 1개를 받았던 서울 매장을 접고 미국 뉴욕 이전을 준비 중인 모던 한식당 ‘주옥’ 신창호 셰프는 “별을 받으면서 외국인 손님이 엄청 늘었다”며 “미쉐린 가이드에 소개되기 전 외국인 손님이 사실상 0%였지만, 소개된 후 30%까지 올라갔다”고 했다.

◇ 식당 폐업부터 셰프 자살까지

미쉐린 스타를 받고 망한 식당은 꽤 많다. 화려한 색감의 플레이팅(접시 담음새)으로 ‘요리계의 피카소’라 불리기도 하는 프랑스 요리사 피에르 가니에르(Gagnaire)는 1986년 별 둘, 1993년 별 셋을 받았지만 경영난을 이기지 못하고 1996년 부도를 냈다. 가니에르는 이후 파리에 다시 레스토랑을 열어 별 셋을 되찾으며 간신히 재기에 성공했다.


미쉐린 스타를 획득하고 유지하려면 끊임없이 투자해야 한다. 값비싼 식재료를 아끼지 않고 사용해야 하고, 고급스러운 분위기를 갖추려면 인테리어는 물론 식기·접시·테이블·의자도 최고급이라야 한다. 극진하고 여유로운 서비스를 제공하려면 손님을 많이 받을 수도 없다. 테이블 수에 비해 종업원 숫자가 엄청나게 많다. 파인다이닝 레스토랑들은 평균적으로 손님 대 종업원 비율이 1:3이지만, 그 이상인 곳도 많다.


당연히 식당 하나만으로는 이익을 내기 어렵다. 별 받은 식당을 플래그십으로 내세우고 더 저렴하고 대중적인 ‘세컨드 레스토랑’을 운영하거나 케이터링, 수퍼마켓용 HMR(가정간편식)·제품 개발, 기업 협찬 등으로 손실을 메워야 이익이 난다.


이러한 비즈니스로 추가 수익이 발생하지 않으면 재정이 불안정해지거나 문을 닫게 된다. 미국 코넬대학이 발간하는 호텔 외식 산업 전문 계간지 ‘코넬 호스피털리티 쿼털리(Cornell Hospitality Quarterly)’에 따르면, 미쉐린 별 2·3개를 획득한 유럽의 레스토랑 26곳 중 절반 가까이가 이익을 내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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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스타 식당 ‘모수’의 옥돔과 배춧속./미쉐린 가이드 서울·부산

미쉐린의 저주는 별 아래 등급으로 가성비 식당에 주어지는 ‘빕 구르망(Bib Gourmand)’에도 적용된다. 미쉐린 가이드는 식당을 ‘미쉐린 스타’(1~3개)와 ‘빕 구르망’, ‘플레이트(Plate)’로 구분한다. 미쉐린 스타 1개는 ‘요리가 훌륭한 식당’, 2개는 ‘요리가 훌륭해 멀리 찾아갈 만한 식당’, 3개는 ‘요리가 매우 훌륭해 특별한 여행을 떠날 가치가 있는 식당’을 의미한다. 빕 구르망은 ‘합리적인 가격으로 훌륭한 음식을 제공하는 레스토랑’에, 플레이트는 ‘좋은 음식을 맛볼 수 있는 레스토랑’에 준다.


달걀 푸딩, 단팥죽 등 중국 광둥식 디저트를 파는 홍콩 ‘카이 카이 디저트(佳佳甜品)’는 2016년 빕 구르망에 선정되자마자 건물주에게 “임차료를 10만 홍콩달러(약 1700만원)에서 22만 홍콩달러(약 3700만원)로 올리겠다”는 통보를 받았다. 가게 주인은 미쉐린에 실린 뒤 손님이 급증했지만 3000~4000원에 불과한 디저트를 아무리 많이 팔아도 2배 이상 오른 임차료를 감당하지 못했고, 결국 수십년간 지켜온 자리를 떠나 임차료가 싼 외곽으로 이전해야 했다.


스타 셰프들은 ‘별을 지켜야 한다’는 중압감이 엄청나다. 아일랜드 더블린에 있는 ‘소턴(Thorton)’은 20년간 별 하나를 유지해온 유명 식당이었지만 2015년 별을 잃자 수익이 76% 하락했고 2016년 결국 폐업했다. 별 개수가 늘수록 스트레스와 우울증이 심해진다.


2003년 프랑스 유명 요리사 베르나르 루아조(Loiseau)가 자살한 이유는 별 셋에서 별 둘로 강등될 것이란 루머에 따른 극심한 스트레스였다. 루아조는 식당을 확장하려고 은행에서 큰돈을 대출받았다. 평점이 하락하면 매출이 떨어져 빚을 갚지 못하게 될까 괴로워하다 결국 극단적 선택을 했다. 나흘 뒤 공개된 미쉐린 가이드에서 그의 레스토랑은 별 셋 그대로여서, 가족·친지와 단골들은 더 괴로워했다.


영국 요리사 마르코 피에르 화이트(White)가 1995년 5년간 유지했던 스리 스타를 반납한 후 별을 포기하거나 거부하는 요리사도 늘고 있다. 2018년 프랑스 요리사 세바스티앵 브라(Bras)는 아버지 때부터 18년간 유지해온 스리 스타를 반납하면서 “미쉐린 평가를 걱정하며 속을 태우지 않고 새로운 요리를 개발할 수 있게 돼 마음 편하다”고 했다.


미쉐린 가이드 인터내셔널 디렉터였던 마이클 엘리스(Ellis)는 “미쉐린 가이드는 하나의 의견(opinion)일 뿐이다. 관점에 동의하지 않을 수는 있지만, 되돌려줄 수는 없다”고 했다. “영화 평론가가 ‘영화가 별로다’라고 말했다고 해서 감독이 ‘당신의 의견을 되돌려주겠다’고 할 수는 없지 않나. 미쉐린 스타는 물건이 아니다.”


김성윤 음식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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