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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방지축 강아지 등살에 고양이는 '개고생'

이용한의 애묘일기

이웃 마을 고양이 ‘덩달이’가 강아지들의 장난을 피하는 법

엎드려 자는 척하다 유유히 마당 빠져나가기

천방지축 강아지 등살에 고양이는 '개

이웃 마을에 사는 고양이 덩달이는 한 식구처럼 자란 강아지들에게 인기가 많다./사진 이용한

이웃 마을에 ‘덩달이’라는 고양이가 있다. 본래 마당고양이로 착하고 성격 좋기로 이만한 고양이가 없다. 내가 이웃 마을로 마실이라도 가면 녀석은 만사를 제쳐놓고 마중 나와 발라당(바닥에 누워 좌우로 몸을 뒤집는 행동)을 하곤 했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내가 녀석의 집 앞을 지나도 마중이 늦거나 뒤늦게 헉헉거리며 내 앞에 나타나곤 했다. 알고 보니 천방지축 강아지들 때문이었다. 덩달이가 마당을 벗어나 산책하러 나갈라치면 강아지들이 덩달이를 붙잡고 ‘가긴 어딜 가느냐’며 함께 놀자고 찰싹 매달리는 거였다.


같은 마당에서 한 식구처럼 자라다 보니 강아지들은 덩달이를 제 어미처럼 때로 언니처럼 따른다. 강아지들은 그저 좋다고, 반갑다고, 신난다고 그러는 건데, 어쩐지 덩달이의 얼굴은 귀찮아 죽겠다는 표정이다. 그도 그럴 것이 요 녀석들이 한꺼번에 두 마리가 목마를 타겠다고 덩달이의 등에 올라타는가 하면 목덜미와 귀까지 깨물깨물 물어대는 거였다. 덩달이도 요 녀석들 귀여운 쥐방울 시절부터 지켜본 터라 차마 때리지도 밀쳐내지도 못한 채 그저 강아지가 하는 대로 맡겨두고 언제 끝나나, 하는 표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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덩달이가 산책을 하러 갈라치면 강아지들은 놀아달라고 철썩 매달린다. 마당을 빠져나오기 위해 매번 덩달이는 신고식을 치러야 한다./사진 이용한

하지만 좀처럼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자 덩달이의 표정도 ‘귀여우니까 내가 참는다’에서 ‘귀찮아 죽겠네’로 바뀌었다가 조금씩 ‘개짜증’으로 넘어갔다. 개짜증이란 말은 이럴 때 써도 무방할 것 같았다. 한두 번도 아니고 마당을 빠져나올 때마다 덩달이는 이렇게 신고식을 치러야 했다. 점잖은 고양이 체면에 촐랑거리며 도망치듯 냅다 내달려 마당을 빠져나올 수도 없고, 우아하게 빠져나온다는 것이 번번이 이렇게 강아지에게 들켜서 봉변(?)을 당하는 것이다.


혹자는 이것이 개짜증을 넘어 ‘개고생’에 가깝다고 하겠지만, 착한 덩달이는 대놓고 강아지들에게 화를 내본 적이 없다. 그래도 마당을 벗어날 때마다 이렇게 고생할 수는 없어서 덩달이는 한 가지 묘안을 생각해냈다. 엎드려 자는 척(죽은 척 아님)하는 것이다. 덩달이가 잠시 엎드려 자는 체하자 강아지들도 에잇 잠들었잖아, 재미없어 이제 인간 괴롭히러 가자, 하면서 저만치 물러나 저희끼리 또 까불며 현관으로 달려가는 거였다. 때는 이때다, 하면서 덩달이는 유유히 마당을 빠져나온다. 덩달이는 매번 이런 식으로 빠져나오는데, 매번 강아지들이 속는다는 게 신기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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착한 덩달이는 이런 ‘개고생’에 화를 내는 대신 묘수를 생각했다. 바로 자는 척하기다./사진 이용한

마당을 빠져나온 덩달이는 내 앞에 당도해 예의상 몇 번 발라당을 하고는 일어나 숨을 고른다. 그래도 덩달이 녀석 강아지와 함께한 날보다 나하고 알고 지낸 시간이 훨씬 길어 매번 개짜증을 참고 이렇게 나를 만나러 와주니 그 우정이 눈물겨울 지경이다. 언제나처럼 우리는 천천히 논두렁길을 걸어 느티나무 그늘에 당도했다. 자 그럼 이제 여기 앉아 너도 쉬고, 나도 좀 쉬어보자꾸나. 폭염의 날들을 견디느라 너도 수고 많았다.


이용한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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