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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五味가 실내악처럼 완전한 리듬으로 다가왔다

[아무튼, 주말]

[정동현의 pick] 북경 오리

조선일보

서울 서대문구 연희동의 중식당 연경의 북경오리. /이건송 영상미디어 기자

연희동 중식당 ‘연경’에 들어서자마자 잘되는 집임을 알 수 있었다. 가게에는 오래된 눅눅한 기운이 없었다. 그보다는 새롭게 볶은 요리에서 풍기는 신선하고 고소한 냄새가 공기 중에 감돌았다. 잘 다린 옷을 입은 종업원들은 제식훈련을 받는 헌병처럼 빠릿빠릿한 몸놀림으로 테이블과 주방을 넘나들었다. 카운터에 선 지배인은 날카로운 눈빛과 공손한 말투로 숙달되고 노련한 솜씨를 드러냈다.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특급 호텔을 빼면 한국의 중식당이란 늘 값싼 취급을 받았다. 골목과 골목을 드나드는 중국집 배달을 싸고 편하게 즐기면서도 공공연하게 험담한 것이 지난 반세기였다. 이 집에서는 주눅 들거나 퇴색한 기색이 느껴지지 않았다. 가게에 앉은 손님들도 기대감으로 살짝 흥분한 듯 보이기도 했다.


“저희 집은 북경 오리를 잘합니다.”


무슨 요리가 좋으냐는 질문에 매니저는 확신에 찬 목소리로 답했다. 보통 ‘다 괜찮아요’ 하는 투의 성의 없는 답이 십상이기 마련이다. 이 집은 명확했다. 북경 오리는 하루 전 예약해야 한다는 안내문이 있었다. 그날은 운이 좋았다. 주방에 물어보자 준비된 오리가 있다고 했다. 뒤편 주방에서 스타카토로 박자를 잘게 쪼개는 칼소리가 흘러 나왔다. 노래하듯 높낮이가 있는 중국어 특유의 성조도 들렸다. 윤이 나는 북경 오리를 내놓으며 매니저가 말하길 이 오리 한 마리를 위해 주인장이 북경을 드나들며 조리법을 배웠고 요리사도 모두 중국에서 초빙해왔다고 했다. 그 말을 들으니 주방 한편 공중에 오리가 매달려 있는 광경이 떠올랐다. 중국은 아니었다. 10여 년 전 일하던 호주 멜버른의 한 주방이었다.


자전거 바퀴에 바람을 넣는 종류의 펌프를 오리 살과 껍질 사이에 집어넣었다. 펌프질을 하자 오리가 풍선처럼 부풀어 올랐다. 공처럼 빵빵해지면 공기가 새지 않게 오리 목 근처에 매듭을 지어 허공에 매달았다. 냉장고의 한기 속에서 피부가 마르고 오리는 다시 화덕 위로 자리를 옮겼다. 북경 오리를 만드느라 거쳐야 하는 여러 공정 중 일부였다. 막내로 들어간 호주의 그 레스토랑은 동남아, 중국, 한국 등 다양한 아시아 요리를 프랑스 음식 기술로 조리해 손님에게 냈다. 요리사 대부분은 피부가 하얀 호주인이었다. 그들 중에는 이런 아시아 요리를 처음 접하는 이도 많았다.


북경 오리를 만들던 눈 파란 ‘라이언’도 마찬가지였다. 말수가 적고 우직하게 일만 하던 라이언은 오리가 들어오면 손질을 도맡았다. 화덕 위 공중에 매달린 오리를 책임지는 것도 그였다. 나무로 불을 때던 그 화덕은 가스불의 열기를 훨씬 뛰어넘었다. 오리에 훈연향이 배어들고 껍질이 완벽하게 마를 때까지 시간이 필요했다. 그러는 동안 라이언의 얼굴은 빨갛게 익어갔다. 그는 주말이면 차이나타운에 가서 사비를 털어 오리를 사 먹고, 일할 때면 온몸의 털이 그을리는 불 앞에서 땀을 흘렸다. 누구도 시키지 않은 일이었다. 하지만 해야만 하는 일이었다. 그는 직업인으로서 더 잘하고 싶었을 따름이었다.


연경에서 먹은 북경 오리에서 느낀 것은 그때와 같은 직업인의 단단한 의지와 땀이었다. 입속에 들어간 북경 오리의 껍질은 그 모든 시간과 땀을 한데 모아 졸이고 졸여 얻어낸 에센스 같았다. 도톰한 껍질을 허공에 들어 보면 진한 루비색으로 투명하게 반짝였다. 첫입은 가볍게 설탕을 찍었다. 처음에는 바삭했지만 이가 껍질을 파고들면서 폭신한 감각이 뒤이어 찾아왔다. 오리 특유의 냄새는 없었다. 산뜻한 식감 때문일까? 아니면 설탕을 찍은 덕분일까? 파삭거리는 감각 뒤로 선선한 바람이 감도는 것 같은 청량한 느낌도 돌았다.


그다음에는 야빙이라고 부르는 전병에 잘게 썬 파와 오이를 올리고 검붉은 소스를 넣었다. 입에 넣자 먼저 푹신한 전병이 아늑하게 느껴졌다. 바삭한 오이와 향긋한 파의 향기가 그 푸근한 식감에 싸여 있었다. 바삭한 오리의 껍질과 도톰한 살점이 어우러지면서 중국의 오미, 즉 신맛, 단맛, 짠맛, 매운맛, 쓴맛이 실내악을 듣는 듯 작지만 완전한 리듬과 운율로 다가왔다. 껍질을 얇게 벗겨낸 솜씨는 서울 연희동에서 볼 만한 수준이 아니었다. 북경 오리의 자태에는 살을 태우는 열기와 날카로운 칼날이 이끌어낸 찰나의 감각이 모두 담겨 있었다. 쉬운 요리도, 쉽게 얻을 수 있는 기술도 아니었다. 단련된 육체와 날이 선 집중력으로 도달한 그곳은 효율도, 가성비도, 지름길도 아닌 최선으로만 가능한 경지에 있었다.

연희동 연경

- 북경 오리 (예약 필수 / 소 5만원), 우육면 (1만3000원), 삼선볶음밥(1만2000원)

- 0507-1464-8934

[정동현 음식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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