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미교포 2세 감독, 선댄스 이어 아카데미 꿈꾼다
[부산국제영화제] ‘제2의 봉준호’로 떠오른 한국계 미국 감독 정이삭
어쩌면 ‘제2의 봉준호’는 재미교포 2세 감독이 될지도 모르겠다. 한국계 미국 감독인 리 아이삭 정(Lee Isaac Chung·한국명 정이삭·42)의 영화 ‘미나리’가 23일 부산국제영화제를 통해 국내 첫 선을 보였다. 지난 2월 미국 선댄스 영화제에서 최고상인 심사위원 대상과 관객상을 동시에 거머쥔 작품. 미 연예 매체 ‘버라이어티’는 내년 아카데미 영화상의 작품상·각본상·남우주연상·여우조연상 등 주요 부문 후보작으로 꼽기도 했다. 배우 브래드 피트가 설립한 영화사 플랜B가 제작을 맡았다.
정 감독과 주연 스티븐 연·한예리·윤여정의 온라인 간담회가 23일 열렸다. 코로나 바이러스 탓에 방한하지 못한 정 감독과 스티븐 연은 미국 현지에서 화상 회의 프로그램으로 참여했다. 윤여정·한예리는 부산 현지에서 간담회에 참석했다. 스티븐 연은 미 드라마 ‘워킹 데드’와 봉준호 감독의 ‘옥자’, 이창동의 ‘버닝’으로 친숙한 한국계 배우. 이번 영화의 주연과 공동 제작자로 참여한 그는 “이민자의 삶은 하나의 트라우마가 될 수도 있는데 감독이 그려낸 세대·문화적 차이나 소통의 문제에 많이 공감했다”고 말했다.
영화 '미나리' |
‘미나리’는 정 감독의 자전적 경험이 투영된 작품이다. 1980년대 미국으로 건너간 한인 가족이 남부 아칸소의 시골 마을에 정착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과정을 담았다. 스티븐 연과 한예리가 한인 부부, 윤여정은 딸의 초청으로 미국으로 건너가는 친정 어머니 역을 맡았다. 실제로 한인 이민자 가정에서 태어난 정 감독은 아칸소에서 유년기를 보냈고 예일대를 졸업한 뒤 영화계에 뛰어들었다. 3만달러(약 3300만원)의 저예산으로 르완다에서 11일 만에 촬영한 데뷔작 ‘문유랑가보’는 2007년 칸 영화제의 ‘주목할 만한 시선’ 부문에 선정됐다. 국내에서 350만 관객을 동원했던 일본 애니메이션 ‘너의 이름은’의 할리우드 실사판 리메이크가 그의 차기작이다.
간담회에서 그는 “영화를 만드는 과정에서 많은 일화를 제 가족의 이야기에서 가져왔다”고 말했다. 영화의 농장 화재 장면도 실제로 그의 가족이 겪었던 사고에서 비롯했다. 정 감독은 “부모님께서 직접 한국 채소를 재배하셨는데 농장 절반이 타버리고 말았다. 당시 가족들이 처했던 상황은 영화보다 더 심각했다.”고 말했다.
아이삭 정(정이삭) 감독 |
영화 제목 ‘미나리’는 할머니(윤여정)가 시냇가에 심고 키우는 작물이다. 영화에서 할머니는 “미나리는 잡초처럼 잘 자라니 부자든 가난한 사람이든 누구나 뽑아 먹을 수 있다”고 손자에게 말해준다. 질긴 생명력과 적응력을 상징하는 미나리는 정 감독에게도 남다른 의미를 지니고 있다. 그는 “실제로 할머니께서 가꿨던 채소 가운데 가장 잘 자랐던 것이 미나리였다. 그래서 내게 미나리는 가족 간의 사랑을 뜻한다”고 말했다.
한인 가정의 이야기를 담다 보니 한국어 대사가 영화의 절반 이상을 차지한다. 정 감독이 주변의 도움을 받아서 집필한 시나리오를 윤여정·한예리 등 한국 배우들이 직접 낭독하면서 다듬는 과정을 거쳤다. ‘기생충’의 아카데미상 수상 이후 비영어권 영화에 대한 미국 관객의 반응도 달라지고 있다. 정 감독은 “'미국 현지에서 ‘기생충’이나 한국 드라마 같은 콘텐츠를 적극적으로 껴안고 받아들이는 모습이 무척 흥미롭다”고 말했다.
[김성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