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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드]by 조선일보

장작불 대신 짚불로 지글지글… 불맛에도 유행이 있다

불맛 열풍

 

고기부터 과자까지 불향 인기… 서양식 불맛 넘어 우리 식으로

"아궁이서 구워낸 듯 은은하게 철판에 굽고 숯불로 향 입히고 본연의 맛 가리지 않을 정도만"


으슬으슬 추워질수록 지글지글 굽거나 볶고 싶어지는 걸까. 여기서도 저기서도 '불맛' 얘기다. 캠핑 마니아 김정주씨는 "찬 바람에 붉어진 단풍을 보며 숯과 장작을 지피고 그 위에 고기를 굽는 맛에 캠핑을 간다"고 했다. "그게 늦가을의 맛이잖아요?"


캠퍼들만 불맛을 따지진 않는다. 요즘 인기라는 식당의 상당수는 불맛을 내세운다. 마트에서도 불맛 열풍은 감지된다. 맛살·컵라면·과자에조차 불맛을 입힌 제품이 앞다퉈 나오고 있다. 불맛이란 음식에 불이 맞닿으며 입혀지는 독특한 풍미. 맛보단 냄새에 가까워 불향, 불냄새라고도 불린다.

갈수록 뜨겁네, 불맛 열풍

서울 용산 삼각지역 근처에 있는 고깃집 '몽탄'은 평일에도 최소 1시간 넘게 기다려야 들어갈 수 있다고 소문난 곳. 짚불에 양념갈비나 삼겹살을 초벌구이한 다음, 식탁에 놓인 무쇠 불판에 한 번 더 익혀 먹는 맛이 소문을 탔다. 이곳 조준모 대표는 "불맛에도 변화를 주고 싶었다"고 했다. 몇 년 전만 해도 숯불이나 가스불에 바로 익히는 직화구이나 팬에 통삼겹을 바삭하게 익히는 방식이 인기였다면, 이젠 향(香)이 관건이라고 봤다는 것. "장작을 벌겋게 달궈 만든 잉걸불에 고기 굽는 것도 해봤고, 쑥을 말려 태운 향을 입히는 것도 해봤는데 호불호가 갈리더라고요. 그러다가 찾아낸 게 짚불이에요. 서양식 불맛이 아닌 우리 식 불맛이잖아요. 시골 아궁이에서 풍기는 연기 냄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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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몽탄'에선 양념갈비를 짚불에 초벌구이해서 준다. 시골 아궁이에서 나오는 듯한 연기를 살짝 입은, 이른바 '우리 식 불맛'이다. ②'돝고기 506'에선 철판에 초벌구이한 삼겹살을 숯이 담긴 화로에 한 번 더 굽는다. 불맛의 균형을 얻는 과정이다. ③한우 육회도 겉면만 토치로 그슬리면 맛이 더욱 풍성해진다. /영상미디어 이신영 기자

불맛이라고 무조건 강렬해선 인기가 없다. 불향기가 너무 강하면 식재료 본연의 맛을 덮는다고 싫어하는 이도 많아서다. 조 대표는 "딱 은은할 정도로만 입힌다"고 했다. "짚불 연기를 너무 많이 쐬어도 안 돼요. 코를 찌르지 않을 정도로, 밸런스를 찾아야죠."


서울 역삼동 '돝고기 506'의 허세병 대표 역시 "불맛에도 균형이 있다"고 했다. 그가 설명하는 불맛은 두 가지로 완성된다. 고기 단백질이 열을 만나 갈색으로 익어가는 '마이야르 반응'과 타는 듯 익는 탄화(炭化) 현상이다. "이 두 가지를 어떤 도구로 얼마나 내느냐에 따라 쓴맛·고소한 맛 등을 디자인할 수가 있어요. 커피가 쓰면서도 구수하고 달큼해야 맛있는 것과 비슷해요. 어느 한 맛만 나면 질려서 못 먹죠." 돼지고기를 철판 그릴에 지글지글 구워 익힌 다음, 마지막에 숯불로 한 번 더 익히는 것도 그래서다. "철판으로 균일하게 바삭하게 굽고, 숯불로 향만 입히죠."

알수록 끌리는 '여섯 번째 맛'

책 '고기 마스터'를 쓴 시바타 쇼텐은 "불맛은 여섯 번째 맛으로도 불린다"고 했다. 단맛·짠맛·쓴맛·신맛, 감칠맛 다음으로 이젠 불맛이 꼽힌다는 얘기다. 한식·일식이 직화나 연기로 불맛을 낸다면 중식에선 반구형의 웍을 손목 스냅으로 움직여 내는 것을 진짜 불맛이라고들 말한다. '도림'의 여경옥 셰프는 "웍헤이, 즉 웍의 숨결이란 말이 있지만 사실 불맛이란 말은 한국에서 더 많이 쓴다"며 "뜨거운 기름과 향신료와 간장이 센 불에서 합쳐지는 것이 불맛이다. 알수록 복잡하고 다채로운 맛"이라고 했다.


토치로 10초만 그슬려도 불맛이 솔솔


집에서 불맛을 내는 쉬운 방법은 토치(torch)를 쓰는 것. 다 익힌 삼겹살도 마지막으로 10초가량만 토치로 그슬리면 한결 원초적인 맛이 난다. 가리비나 오징어, 문어 등을 삶아 샐러드에 낼 때도 마지막을 토치로 그슬리면 맛이 더 풍성해진다. 성냥개비를 활용하는 방법도 있다. 주꾸미 볶음 같은 것을 낼 때 접시에 포일을 깔고, 옆에 이쑤시개 4~5개를 꽂아 불을 붙여 올린 다음 커다란 뚜껑으로 덮은 뒤 2~3분만 놔두면 연기를 살짝 입어 불향기를 풍긴다. 불맛 소스는 가장 간편한 방법. 마트에서 파는 불맛 소스로 음식을 버무리면 가벼운 탄내와 쓴 냄새가 함께 난다.


송혜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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