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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옷들, 현대차 제작 후 남은 가죽으로 만든 겁니다

[WEEKLY BIZ] ‘더러운 산업’ 비판받던 패션, 착한 옷으로 갈아입었어요

환경파괴 주범의 변신

지구온난화 문제가 심각해지고 기상 이변이 속출하면서 환경을 파괴하는 산업에 대한 비판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내연기관차를 만들던 완성차 업체들이 앞다퉈 전기차 생산 체제로 전환하고, 원유 채굴 업체들이 신재생 에너지 투자를 늘리는 일도 친환경 기업으로 탈바꿈하지 않으면 더 이상 소비자들의 선택을 받을 수 없다는 절박함에서 비롯됐다. 그간 중후장대 산업에 가려 있던 패션 산업 역시 ‘빅 폴루터(Big polluter·거대 환경 파괴 기업)’라는 거센 비난에 직면했다. 섬유 패션 제품 및 원료 생산 과정에서 막대한 에너지와 물, 화학약품, 살충제 등을 사용하면서 환경을 크게 오염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이에 글로벌 패션 업체들은 친환경이나 유기농 소재를 활용한 옷을 만들고, 염료 사용을 줄이는 등 팬데믹 이후 가속화된 ‘가치 소비’ 물결에서 살아남기 위한 사투를 벌이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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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6일(현지 시각) 뉴욕 패션 위크에서 할리우드 배우 사라 제시카 파커는 현대차가 자동차 시트 제작에 쓰고 남은 자투리 가죽으로 만든 옷을 입었다. 유명 디자이너 마리아 코르네호가 현대차와 협업해 ‘폐기물’에 불과하던 자투리 가죽을 스타의 옷으로 재탄생시켰다(사진 위). 디자이너 마리아 코르네호(아래 사진 앞줄)가 현대차가 제공한 자투리 가죽과 자신이 지난 시즌에서 쓰고 남은 자투리 천을 이용해 만든 옷들.

◇환경 파괴 주범 된 패션 산업

패션 산업이 환경오염의 주범으로 지목된 것은 인류가 실제 필요한 양보다 훨씬 많은 옷을 만들고, 쉽게 버리기 때문이다. 컨설팅기업 BCG에 따르면 전 세계 의류 소비량은 2015년 기준 6200만톤(t)에 달하며, 2030년에는 1억200만t에 이를 것으로 추정된다.


인류가 필요 이상의 옷을 과도하게 생산·소비하고 있다는 사실은 ‘의류 사용률’ 통계로 확인할 수 있다. 의류 사용률은 옷을 구매한 뒤 더 이상 입지 않게 될 때까지 평균 몇 번이나 입는지 수치화한 것이다. 영국 엘런맥아더재단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 2002~2016년 전 세계 의류 사용률은 36%나 감소했다. 의류 사용률이 하락하면서 버려지는 옷도 2015년 9200만t에서 2030년 1억4800만t으로 급증할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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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막대한 양의 옷을 만드는 데 필요한 각종 화학섬유는 화석연료를 기반으로 한다. 또 섬유 염색 및 가공 단계에서 대량의 물이 쓰이고, 염료가 강과 바다로 흘러들면서 패션 산업은 심각한 환경오염을 일으킨다. 섬유 제품을 세탁하는 과정에서 배출되는 미세 플라스틱 역시 해수에 있는 잔류성 유기 오염 물질을 100배 이상 높은 농도로 축적해 바다 생태계를 위협한다.


유엔환경계획기구(UNEP) 등에 따르면 패션 산업은 전 세계 온실가스 배출량의 6~10%, 해양 미세 플라스틱 배출량의 20~35%를 차지하고 있다. 명품 중고 사이트 ‘리얼리얼(RealReal)’의 창업자 줄리 웨인라이트는 “패션은 세계에서 가장 더러운 산업 중 하나”라며 “패션 산업의 탄소 배출량은 모든 국제 항공·해양 운송을 합친 것보다 많지만 감시망에는 잘 잡히지 않는다”고 했다.

◇생존 위해 친환경 기업으로 변모 중

가치 소비에 민감한 MZ세대를 중심으로 소비자들은 지속 가능하지 않은 사업 모델을 가진 패션 기업에 등을 돌리고 있다. 옷이나 신발 값이 아무리 저렴하고 예뻐도 환경 파괴를 일삼는 기업 제품에는 지갑을 열지 않는 것이다. 컨설팅 기업 맥킨지가 2020년 설문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소비자의 67%는 “친환경 포장 제품을 사용한 기업의 옷을 구매했다”고 했고, 63%는 “브랜드 구매 시 지속 가능성을 고려한다”고 답했다.


그러자 환경 문제를 등한시했던 글로벌 패션 기업들이 생존을 위해 앞다퉈 친환경 기업으로 변모하고 있다. 특히 의류 과잉 생산과 소비를 부추기는 ‘패스트 패션’ 브랜드들이 가장 적극적으로 체질 개선을 하고 있다.


H&M은 친환경·재활용 섬유 소재 비율을 2017년 35.5%에서 2020년 64.5%로 높였고, 2025년까지 의류에 사용되는 섬유의 30% 이상을 폐섬유와 폐페트병을 활용한 ‘재활용 소재’로 만들 계획이다. 유니클로는 2019년부터 폐의류를 수거해 재사용이 가능한 옷은 기부하고, 재활용이 가능한 옷은 새 제품 소재로 쓰고 있다. 자라(ZARA)는 2025년까지 모든 섬유 소재를 친환경·재활용 소재로 대체한다고 발표했다. 나이키·아디다스 등 스포츠 의류 업체와 샤넬·버버리 등 명품 브랜드들도 재활용 소재 비율을 높이고, 탄소 배출 감소 목표를 제시하는 등 친환경 행보를 강화하는 추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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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유 재활용·클로딩 테크 급성장

버려진 옷이나 플라스틱, 그물 등을 재료로 한 재활용 섬유 시장도 급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시장조사 기관 얼라이드마켓리서치에 따르면 세계 재활용 섬유 수요는 2018년 53억3200만달러(약 6조4000억원)에서 2026년 80억200만달러(약 9조6000억원)로 연평균 5.2% 증가할 것으로 보인다.


국내에선 효성티앤씨, 티케이케미칼, 휴비스 등이 재활용 섬유를 만드는 대표 기업인데 2020년 생산량이 1만t 정도다. 국내에서 처음 재활용 원사를 개발한 효성티앤씨는 패션 스타트업 플리츠마마와 협력해 버려진 페트병으로 실을 뽑아 친환경 가방을 만드는 사업 등을 벌이고 있다. 이 밖에 버섯 뿌리의 균사체를 활용한 가죽 생산(볼트스레드), 커피 찌꺼기를 통한 셔츠 제작(코알라트리), 자기장 발생 원리를 이용한 염색 기술(FS이노베이션) 등 의류 제작에 신기술을 활용하는 ‘클로딩 테크(clothing tech)’ 스타트업도 늘어나고 있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패션 업체들의 친환경 정책이 ‘그린워싱(green washing·위장 친환경)’에 불과하다는 비판도 나온다. 오염원 감축 목표를 제시하면서도 경영 활동을 투명하게 공개하지 않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버려지는 의류를 섬유 원료로 다시 쓴다고 하지만 폐기물 중 재활용되는 비율이 매우 낮은 데다 막대한 온실가스를 배출하는 대량생산 체제는 포기하지 않는다는 지적도 잇따른다. 패션 잡지 보그(VOGUE)는 “패션 산업은 그린워싱의 가장 나쁜 범죄자 중 하나”라고 평가했다.


김지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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