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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컬처]by 조선일보

이중섭보다 소를 먼저 그렸던… 잊힌 근대 화가 진환의 발굴

아무튼, 주말

구보경·황정수·윤주 등 5인

'진환 평전' 사후 70년 만에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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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환의 대표작인 ‘우기(牛記)8’. 진환 연구자들에 따르면 이중섭의 소 그림에 영향을 줬을 것으로 보인다.

전라북도 고창 출신인 진환(본명 진기용·1913~1951)은 일제강점기에 일본미술학교로 미술 유학을 떠나 1936년 도쿄에서 열린 신자연파협회 제1회 전시에 입상했다. 베를린 올림픽 부대행사로 열리는 예술경기전 입선이었는데, 총 출품작 30점 중에 조선인은 진환이 유일했다.


1941년 일본에서 이쾌대, 이중섭 등과 '조선신미술가협회'를 창립했고 이 동인 활동은 나중에 경성(京城·서울)에서도 이어졌다. 해방 후 홍익대 미대 창립 구성원으로 활동하다가 6·25전쟁이 일어나 고향으로 돌아간다. 1951년 고향 인근에서 마을 의용군에게 적으로 오인받아 총을 맞고 38세 나이에 죽었다. 한국 근대 서양미술사에서 진환의 존재는 잊혀갔다.


'망각의 화가' 진환 사후 70년 만에 그를 본격적으로 재조명하는 책 '진환 평전'이 나왔다. 서양화·드로잉 등 모든 작품과 그가 쓴 수필, 편지 등이 수록됐다. 구보경 철학 박사, 황정수 근대미술연구가, 안태연 미술사가, 최재원 독립 큐레이터, 윤주 한국지역생태연구소장 등 다섯 명이 글을 쓰고 진환기념사업회가 이를 엮었다. 진환이 한국 근대미술에서 갖는 의미를 설명한 황정수와 유족에게 들은 진환의 일대기를 펼친 윤주 소장을 만났다.


현재 알려진 진환의 작품은 유화 여덟점과 스케치 등 총 30여점이다. 한 작가의 작품 세계를 분석하기에 적은 숫자가 아닐까. 황정수는 "6·25전쟁 이전 근대기에 활동하던 화가 중 작품이 30점 이상 남아 있는 사람은 많지 않다. 김환기나 이중섭도 40년대 남긴 작품 수는 이보다 적을 것이다. 30여점이 많다고 할 순 없지만, 충분히 분석할 만하다"고 했다. "경성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는 요즘, 진환처럼 잊혀가는 근대 인물을 재조명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화가로서 정규 엘리트 코스를 밟고, 일본 화단에서도 상당한 인지도를 갖고 활동한 진환은 한국 근대미술사에서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는데도 연구가 많이 되지 않아서 안타까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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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환 평전’을 펴내는 데 참여한 다섯 작가 중 황정수(왼쪽)와 윤주. /진환기념사업회

윤주 소장은 진환의 큰아들 진철우씨와 외조카 노재명씨에게서 화가의 이야기를 예전부터 들었다. 그는 "진환은 제자가 잘못 쏜 총에 맞아 죽었다. 유족은 황망하게 죽은 진환을 미워하기도 그리워하기도 한다. 아들 철우씨는 아버지가 직접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린 '그림책'을 아직도 갖고 있다"고 했다. "'항아리 옆에 병아리 종장종장' 같은 자작 동시를 보면 진환의 문학적 소양을 함께 느낄 수 있어요. 아들의 낙서까지 더해져서 책에서 부자(父子)가 대화하는 듯한 느낌마저 듭니다."


한국의 소[牛] 그림은 이중섭의 작품이 가장 잘 알려졌지만, 그보다 먼저 소를 그린 화가가 진환이다. 남아 있는 진환의 작품 중 태반이 소를 그린 것이고, '소의 일기'에서는 소의 '힘차고도 온순한 맵시'를 예찬하기도 했다. 예전부터 이중섭이 진환이 그린 소를 보고 영향을 받았을 것이란 얘기가 있었는데, 이번 책에서는 이를 전면적으로 다룬다. 황정수는 "소는 이중섭만 다룬 독특한 주제가 아니다. 당시 일본에선 소와 말을 그리는 게 유행이기도 했다. 진환은 고향 고창에서 경험한 향토성을 소에 많이 반영했다. 진환은 이중섭보다 먼저 유학한 세 살 많은 선배이자 동인에서 함께 활동한 동료였다. 진환은 50년대 이전에 소를 그렸지만, 이중섭은 50년대 이후에 소를 그리기 시작했다"고 했다. 이중섭이 진환의 영향을 받았을 가능성이 충분히 있다는 것이다.


진환을 다시 화단(畫壇)으로 불러내고자 하는 건 단지 그의 작품 세계 때문만은 아니다. 유복한 집안에서 태어난 그는 문학적·예술적 감수성을 갖춘 당대의 멋쟁이였다. 성격이 까탈스러운 이쾌대에 비해 진환의 성품은 넉넉했다. 이쾌대가 해방 직후 진환에게 보낸 편지엔 "이때가 어느 때입니까. 기어코 고대하던 우렁찬 북소리와 함께 감격의 날은 오고야 말았습니다. 원컨대 형이여! 하루바삐 상경하셔 큰 힘 합쳐 주소서"라고 적혀 있다. 황정수는 "근대 화가 중 이쾌대와 진환은 동년배였고, 무리에서는 맏이 역할을 했다. 서로 의지하는 관계였던 것 같다"고 했다. 진환의 얼굴은 흐릿한 흑백사진 한두장으로 확인할 수 있지만, 진환의 친구였던 시인 서정주의 묘사만 들어도 그가 어떤 인물이었는지 짐작이 간다. "여름이면 항시 촌농부의 밀짚모자 차림으로 빙그레한 어린애 같은 미소를 지으며 내 앞에 나타나던 진환의 모습." 진환은 자신이 그려낸 천진하고도 슬픈 소를 닮았음이 분명하다.


[변희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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