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지行 제주 활어차 열었더니, 생선 대신 불법체류자가…
무비자로 입국후 몰래 섬 빠져나가는 외국인들 급증
지난 6월 25일 오후 1시쯤 제주 동부 해안가. 인적 드문 한 포구에 3t짜리 낚싯배가 도착했다. 그날 아침 110㎞ 떨어진 전남 장흥에서 출발한 배였다. 부두에 서 있던 중국인 뤼모(35)씨가 배에 올랐다.
한국인 선장이 모는 배는 곧장 출항해 다시 장흥으로 향했다. 첩보를 입수한 제주해양경찰청 소속 단속정이 낚싯배를 추격해 세웠다. 수사관들은 "비자 없이 제주도를 떠나려 한 혐의로 체포한다"며 뤼씨에게 수갑을 채웠다.
무(無)비자로 제주도에 입국한 후 몰래 육지로 빠져나가려는 외국인이 늘어나고 있다. 비자 없이 제주를 떠나려다 잡힌 외국인(브로커 포함)도 올 들어 7월까지 50명이었다. 작년 전체 검거 인원(48명)을 이미 넘어섰다. 대다수는 중국인이나 동남아인이다.
수조에 물고기는 없고 사람이… 車 뒷좌석 담요 사이에 숨어 - 비자 없이 제주도에 입국한 후 몰래 육지로 빠져나가려는 외국인이 늘고 있다. 한 외국인이 활어를 실어 나르는 물칸에 들어가 출도(出島)하려다 단속반에 적발됐다(사진 왼쪽). 지난 5월 한 외국인이 차량 뒷좌석에 옷가지와 담요 사이에 숨어 있다(오른쪽). /제주해양수산관리단 |
단속에 걸리지 않고 이미 육지로 숨어든 외국인 수는 이보다 더 많을 것으로 보인다. 비자 없이 제주도로 입국한 외국인 중 무비자 기간(30일)을 넘겨 불법 체류자가 된 사람은 7월 말 1만1979명으로 처음으로 1만명을 넘었다. 대부분 소재가 파악되지 않는다.
제주도는 외국인 관광객 유치를 위해 2002년부터 특별법으로 무비자 입국을 허용했다. 현재 예멘 등 24개국을 제외한 세계 169개국 국민은 비자 없이도 제주도에서 30일간 머물 수 있다. 이들이 비자 없이 육지로 나가는 것은 불법이지만 일부 외국인은 일자리를 찾아 섬을 떠나려 하고 있다.
경찰과 해경, 해양수산부 제주해양수산관리단이 항구, 공항 등에서 단속하고 있지만 이를 피하기 위한 수법도 다양해지고 있다. 지난 4월 10일 오후 4시쯤 제주항. 제주산 감귤을 실은 4.5t 탑차가 검문을 통과해 여객화물선으로 들어갔다. 한국 비자가 없었던 중국인 추모(53)씨는 탑차 화물칸 감귤 상자 사이에 숨어 있었다. 오후 8시쯤 배가 전남 여수 여객선터미널에 도착한 직후 추씨는 첩보를 입수해 출동한 경찰에 검거됐다. 외국인들이 물을 뺀 활어차에 들어가거나, 승합차 루프캐리어(차 지붕 위에 달린 짐칸)에 숨었다 적발되는 경우도 있다.
제주해양수산단은 단속반 20여 명이 제주항 입구 8곳에 드나드는 차량을 24시간 감시한다. 차량 화물칸 안쪽까지 확인할 수 있는 특수 검사 장비를 쓰기도 한다. 그러나 오가는 차량이 많다 보니 모든 차량을 검사할 수는 없다고 한다. 제주항을 몰래 빠져나가는 외국인들은 이 점을 이용한다. 단속 인원이 줄어드는 교대 시간을 파악해 이 시간대를 노리기도 한다.
비행기를 이용하는 사례도 있다. 중국인들은 한국인 주민등록증을 위조해 한국인 행세를 하는 경우가 많고 동남아인들은 한국 비자가 있는 같은 나라 사람의 여권을 빌린다고 한다. 경찰은 지난 2월 제주공항에서 다른 베트남인의 여권을 빌려 비행기를 타려던 베트남인 2명을 검거했다.
불법 출도(出島) 시도가 늘어난 데는 제주도 건설 경기가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이다. 제주해양수산단 관계자는 "중국인 투자로 제주도에 건설 붐이 일었던 최근 몇 년간 불법 상륙 시도 건수가 적었는데 최근 다시 늘어나고 있다"고 했다. 과거엔 돈벌이 목적으로 입국한 외국인들이 제주 공사장에서 불법으로 취업했지만, 제주에서 일자리가 줄면서 육지로 나가려 한다는 것이다. 대한건설협회에 따르면 올해 7월까지 제주도 내 신규 발주 공사 총규모는 작년 같은 기간보다 25% 줄었다.
최근 제주공항·제주항에 대한 당국의 검색이 강화되면서 브로커와 무비자 외국인들은 제주도 해안에 100곳 넘게 있는 소규모 어항(漁港)으로 눈을 돌리고 있다. 여기서 미리 섭외된 배를 타고 육지로 들어가는 것이다. 해경 관계자는 "제주도 배가 아닌 육지 배를 이용하고, 해상 위치 표시 장치도 꺼버려 첩보 없이 포착하기 쉽지 않다"고 했다.
[권순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