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서 쓰고 영정사진 찍는 "젊은 우리"
죽음에 대해 떠올리면 더 값진 하루 살 수 있어
영정사진 찍는 청춘들
“어렸을 때는 엄마가 장례식장 근처에도 못 가게 했어요. 스무 살이 넘어 장례식장에 다니게 되면서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다양한 이유로 세상을 떠난다는 것을 알게 됐어요. 죽음이 나와는 상관없는 일이라고 생각했는데 그렇지 않다는 걸 깨달았죠. 삶과 무관하지 않은 죽음을 주제로 사진을 찍어보고 싶었어요.”
사진작가 홍산 / 김유섭 기자 |
삶보다 죽음이 더 가깝다고 느껴질 때 찍는 영정사진. 사진작가 홍산(24)씨는 그 편견을 깨고 젊은 사람들을 대상으로 영정사진을 찍고 있다. 내일 죽는다고 가정하고 나를 돌아보며 좀 더 괜찮은 삶을 살아보자는 취지에서다. 그에게 영정사진은 지루한 삶이 반복될 때 오늘 보다 나은 내일을 살기 위한 노력인 셈이다. 그의 사진이 소셜미디어를 통해 퍼지면서 삶에 대해 다양한 고민을 하고 있는 청춘들이 홍산 씨의 작업실을 찾고 있다.
“유서부터 쓰고 시작 할게요”
영정사진을 찍으러온 고객들이 제일 먼저 건네받는 것은 ‘유서’다. 손님들은 사진을 찍기 전 작은 테이블에 모여앉아 세상에 남기고 싶은 말을 천천히 적는다. 홍산 씨는 촬영 전에 마음을 가다듬고 생각을 정리하는 시간이 필요하다고 생각해 ‘유서’작성 시간을 만들었다고 밝혔다. 이날 작업실을 찾은 홍정기(26)씨는 취업을 준비하며 우스갯소리로 ”나가 죽어야지“라는 말을 많이 했는데 막상 죽는다 생각하고 유서를 쓰려니 너무 어렵다고 고개를 저었다.
“지푸라기 잡는 심정으로 왔어요”
취업준비를 하고 있는 홍정기씨가 영정사진을 촬영하고 있다. / 김유섭 기자 |
유서 작성을 마친 홍정기(26)씨는 제일 아끼는 셔츠를 입고 와서 카메라 앞에 앉았다. 그는 “수많은 자기소개서를 작성하다 보니 내가 누구인지 나도 모르겠더라. 간접적으로라도 죽음을 체험해보면 답이 나오지 않을까 하는 심정에서 오게 됐다.”고 밝혔다. 그는 “오늘 최대한 자연스러운 표정으로 가장 나다운 모습을 남기고 싶다.”며 나중에 사진과 유서가 집으로 배송되면 감회가 새로울 것 같다고 기대했다.
“본인이 짓고 싶은 표정 아무거나”
홍산씨가 찍은 영정사진들 / 홍산 제공 |
홍산 씨는 최대한 자연스러운 모습의 영정사진을 찍으려고 한다. 촬영 콘셉트가 “본인이 짓고 싶은 표정을 자유롭게 짓는 것”이기 때문에 억지로 웃기거나 인위적인 연출 요구는 거의 하지 않는다. 그는 영정사진이 “스스로 어떤 사람인지 표현해야하는 과정이라 본인이 지나치게 개입하면 촬영의 의미가 퇴색 될 수 있다.”고 말했다.
“당장 내일 죽어도 어제가 부끄럽지 않게 살래요”
영정사진을 촬영하며 홍산 씨의 삶의 가치관은 확실해졌다. 그는 죽음에 대한 고민 이후 “나 자신과 주변 사람들을 대하는 태도”에 대해 반성하게 됐다고 말했다. 또 앞으로는 나를 좀 더 돌보고 가족, 연인, 친구 등 주변 사람들에게 최선을 다하고 싶다면서 그런 삶이 “내일 죽어도 부끄럽지 않은 인생인 것 같다”고 설명했다.
양부용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