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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컬처]by 조선일보

연기 56년, 이 역할만 7번째…"난 진짜 배우 되려면 멀었다"

'세일즈맨의 죽음' 주연 전무송… 아들·딸·사위 모두 연극 스태프

"34년 전 처음 윌리를 연기할 땐 아들 입장서 본 아버지 그렸는데 이젠 내 절실한 체험으로 연기"


"세상 모든 아버지 마음은 다 똑같은지도 모르겠어요. 윌리 로먼이나 우리 아버지나, 또 나나."


전무송(77)이 웃으며 말했다. 1962년 평생 스승 유치진(1905~1974) 선생의 연극아카데미 1기생으로 첫발을 뗀 연기 인생이 이제 56년. 얼굴 주름살이 연기에 바친 세월만큼 또렷하다. 그가 17~26일 서울 대학로예술극장에서 '세일즈맨의 죽음'의 보험외판원이자 가장(家長) 윌리 로먼으로 다시 무대에 선다. 이 역할만 7번째다.


"34년 전 처음 윌리를 연기할 때 '거참, 울 아버지랑 똑같네' 싶었거든. 그때는 아들 입장에서 아버지 옛 모습을 그리고 상상했어요. 이제는 내가 아버지가 돼 그 체험의 절실함으로 연기해요. 아버지 마음엔 동서양 구분이 없나 봐." 부드럽고 힘 있는 말투다. 자식 밥그릇에 고봉밥을 조심조심 눌러 담는 아버지 손길 같다.

연기 56년, 이 역할만 7번째…"난

배우 전무송은 도를 닦아온 선승(禪僧)처럼 말했다. “배우는 자기 자신을 잘 알아야 한다. 남 험담하거나 깎아내리지 않으며, 스스로 내세우거나 비하하지 않고 자신을 지키는 마음의 공부가 가장 중요하다”고 했다. /이진한 기자

이 작품엔 개인적 의미도 깊다. 올해는 1984년 처음 윌리 역을 맡겨줬던 극단 성좌의 연출가 고(故) 권오일(1932~2008) 선생 10주기다. "'내년에 세일즈맨 꼭 한번 하자'고 하시더니 이듬해 돌아가셨어요. 연습하면서 선생님을 떠올리고, 선생님이 이 연극에 바랐던 점들을 되새깁니다."


이번엔 아역배우 출신 사위 김진만이 연출을 맡고 배우인 딸 전현아가 제작하고 아들 전진우가 극 중 아들 비프 역으로 나온다. "외손자는 회사 사장 아들 목소리로 출연해요. 마누라가 '그냥 가족끼리 다 하라'하며 웃더군요. 가난뱅이 연극쟁이 외길을 지켜준 아내에게 제대로 고맙단 말도 못했는데, 이 연극이 그 말 대신인 것 같아요."


무대를 반세기 지켜왔으나 대중은 임권택 감독 영화 '만다라(1981)'의 승려 지산으로 그를 처음 알아봤다. 그 역할의 모델이 된 스님을 만나기로 한 전날 밤 꿈을 꿨다. 낡은 바랑을 메고 가던 스님이 평상복에 비닐 가방 든 남자로 바뀌는 꿈이었다. 가방 안엔 연습 뒤 끓여 먹을 라면 한 봉지와 담배 여섯 개비 든 담뱃갑이 들어 있었다. "이거다!" 전무송은 배우인 자신과 깨달음을 구하는 스님의 길이 하나임을 봤다. "배우에겐 그런 순간이 있어요. 고민을 거듭하다 절실함의 극치에 다다르는 순간. '안 되면 관두지 뭐'하고 생각하면 벽뿐이야. 꼭 해내겠다는 절실함이 내면에서 응결되면 퍽, 하고 뭔가 와요." 전무송은 "절실하면 길이 보이고 조금씩 완성으로 가는 것 같다. 이 나이에 건진 건 그것뿐"이라고 했다. "그게 연극하는 재미예요. 느끼고 고민하고 무대에 다시 토해내고. 몰랐던 인생살이를 들여다보고 개연성을 캐내 스스로 납득하고 공연 한 편 마치면 또 몸이 근질거리고. 미친놈이지. 거지 되기 딱 알맞은 팔자지. 하하."


젊을 때 그도 술 취하면 싸움질이 예사인 적이 있었다. 그의 연기를 아낀 유치진 선생이 따로 불러 말했다. "무대에서 말하는 데 10년, 제대로 연기하는 데 또 10년 걸린다. 그걸 넘어 훌륭한 배우가 되려면 먼저 인간이 돼야 한다." 전무송은 "그 말씀이 평생 나를 쫓아다녔고 아직도 진짜 배우 되려면 멀었다"고 했다. "이건 겸손이 아니에요, 욕심인 거지. 선생님이 말한 그 경지에 도달하고 싶은 욕심. 안 되는 걸 아니까 채우려고 계속 하는 거고." 전무송이 빙긋 웃었다.


"이 연극을 보고 사람들이 자신을 찾고 싶어졌으면 좋겠어요. 아버지는 아버지로, 엄마는 엄마로, 아들은 아들로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 스스로 질문해보게 되는 그런 무대를 만들고 싶어요."


이태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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