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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컬처]by 조선일보

'언제 결혼할 거니?' 제발 교회에선 묻지 마세요

심경미 목사

교인들 "결혼하라"는 잔소리에 상처받은 싱글 여성들의 이야기 '싱글 라이프'에 담아 출간


"세상에서 상처 입고 위로받으러 온 교회에서는 제발 '언제 결혼할 거니?'라고 묻지 말아주세요."


심경미(53) 목사는 최근 펴낸 '싱글 라이프'(아르카)에서 이렇게 외친다. 심 목사는 이화여대 대학원에서 여성학을 전공하고 장로교신학대 대학원을 졸업한 목회자. 싱글인 심 목사가 이 책에서 주목한 대상은 교회 내 싱글 여성이다. 지난 3년간 30~40대 싱글 여성 20여 명을 심층 인터뷰한 내용을 바탕으로 쓴 책을 보면 교회에서 상처받는 이야기가 즐비하다.


어떤 교회 목사는 거의 매주 '청년부는 몇 살까지 참여할 수 있는지' 질문을 받는다. 결혼한 또래나 선배 그룹에 속하긴 불편하고, 청년부에 남아 있기엔 눈치가 보이는 싱글의 하소연이다. 마음의 걸림돌은 '결혼'. 누가 뭐라고 하지 않아도 주눅 들기 십상이어서 교회 내 네트워크에서 멀어진다. 심 목사가 '미혼(未婚)' 또는 '비혼(非婚)' 대신 '싱글'이란 단어를 쓰는 것도 미혼, 비혼엔 결혼이란 전제가 포함돼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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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경미 목사는 “싱글 교인도 똑같은 하나님 자녀”라며 “앞으로 세미나와 책, 유튜브 등을 통해 싱글이 스스로를 사랑하고 존중하며 행복하게 신앙 생활을 할 수 있도록 도울 계획”이라고 말했다. /김지호 기자

예배만 참석하고 빠져나오려 해도 아는 어른들 눈에 띄면 "이제 결혼해야지" 하는 '덕담'이 쏟아진다. 결혼한 사람들에게 '왜 결혼했냐?'고 묻지는 않으면서 싱글들에겐 스스럼없이 돌직구를 던진다. 싱글들이 꼽는 '결혼 독촉 3대 레퍼토리'는 이렇다. '평생 외롭게 살래?' '나이 들면 후회한다' '그러다 혼자 죽으면 어쩔래?' 거의 협박 수준이다. 오래 다닌 교회일수록 싱글의 부모까지 고통받는다. '그 집 자식도 결혼해야 할 텐데, 걱정 되겠어…' 등등. 심 목사가 꼽은 싱글에 대한 최고 무례는 '스트레스를 줘야 결혼한다'는 것. 그는 "스트레스는 스트레스일 뿐이지 그게 어떻게 결혼할 동기가 되느냐?"고 반문했다.


심 목사는 이런 '무례'는 교회 내에 알게 모르게 스며 있는 '정상 가족 이데올로기' 때문이라고 했다. 이 때문에 싱글은 '결혼 대기자'나 '숙제를 풀지 않은 사람'처럼 여겨진다. 그러다 보니 교회마다 '결혼 예비 학교' '임산부 학교' '부부 학교' '어머니(아버지) 학교'는 있어도 '싱글 학교'는 없는 경우가 태반이다. 이러는 사이 싱글들은 점점 연대감을 잃고 교회를 떠난다. 잔소리 듣기 싫어서 명절 때 집에 가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다.


심 목사가 여러 교회에서 4~5주 과정의 '싱글 세미나'를 열 때에도 선입견이 가장 큰 걸림돌이다. 주변에서 "아예 결혼 안 할 작정으로 그런 세미나 들으러 가냐"고 한다는 것. "제가 세미나에서 강조하는 건 '결혼하지 말고 싱글로 살라'는 게 아니에요. 오히려 '혼자 스스로 살아갈 수 있어야 결혼해서도 잘 살 수 있다'고 강조하지요. 저도 지금이라도 좋은 사람 있으면 결혼할 수 있고요."


다행히 변화도 생겨나고 있다. 요즘은 교인 등록할 때 과거처럼 '호구 조사' 하는 경우는 사라지고 있다. 또 '심방'도 반드시 교인 집을 방문하지 않고 직장 근처 등 집 밖에서 만나는 경우도 늘고 있다. 싱글끼리 공통 관심사를 터놓고 이야기할 수 있는 공동체를 마련하는 교회도 늘고 있다.


심 목사는 "교회부터 싱글에 대한 선입견을 고쳐야 한다"며 "무례인 줄 모르고 상처를 주는 경우도 많기 때문에 교인들이 다양한 입장을 이해할 수 있도록 교육해야 한다"고 말했다. "교회는 사랑으로 모인 공동체입니다. 현대사회는 다양한 가족 형태가 있습니다. 결혼한 사람, 이혼한 사람, 사별한 사람, 결혼하지 않은 사람들이 다 어울려 있죠. 이 모두가 하나님의 자녀라는 생각으로 배려하고 존중한다면 교회가 다시 살아날 것입니다."


김한수 종교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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