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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렌드]by 조선일보

"어어어, 불이 많이 나요" 말하는 순간… 한 남자가 어르신 집으로 뛰어들었다

부산 다세대 주택서 화재

소방관 출동전 창문 뜯고 들어가 거동 힘든 60대 주민 구출해내


15일 오전 11시 34분쯤 부산소방본부 종합상황실 전화가 울렸다. "여기 불이 났어요! 검은 연기가 나요!" 부산진구 개금동에서 걸려온 화재 신고 전화였다. 신고자는 한 다세대주택에 사는 주민 이재구(29)씨. 밖에 나와 있던 이씨는 건물 뒤편 1층에서 새어 나오는 검은 연기를 목격하고 곧바로 119에 신고했다.


급하게 신고를 마친 이씨는 연기가 새어 나오는 창문으로 바짝 다가갔다. 높이 1m 정도 되는 창문 너머로 원룸이 눈에 들어왔다. 주방 쪽에 불길이 보였다. 들여다보는 이씨의 귀에 끙끙 앓는 듯한 소리가 들렸다. 창문 바로 아래에 침대가 있었고 몸이 불편한 남성이 누워 있었다. 수개월 전 고관절을 다쳐 누워 있던 정모(64)씨였다.


그때 소방본부에서 다시 전화가 걸려왔다. 본지가 확보한 통화 녹음 기록에는 당시의 긴박한 상황이 생생하게 담겨 있었다. "지금 상황이 어떤가요?"(소방) "여기 창문에 어르신이 있어요."(이씨) "어르신 보여요? 창문으로."(소방) "말하는 게 들려요, 말하는 게."(이씨)


소방은 이씨에게 "옆에 보면 가스관 있잖아요. 가스관 그거 좀 차단해 주시고"라고 했다. 혹시나 가스가 폭발할지 몰랐기 때문이다. 이씨는 급히 가스관을 찾았지만 아무리 둘러봐도 보이지 않았다. 소방본부도 다급해졌다. "위험하면 대피하라고 하고요." 정씨가 거동이 힘들다는 걸 모르고 한 말이었다. 이씨는 "어어어, 이거 불 많이 나요. 불도 보여요"라고 했다. 소방은 "소방차 빨리 가고 있으니까 어르신 한쪽 방으로 일단 대피하라고 하세요"라고 했다. 가스가 언제 터질지 모르고 불이 확 번지는 그 순간, 이씨 곁에 하나둘 모여 있던 이웃 주민 중 이모(65)씨가 갑자기 앞으로 튀어나왔다. 그는 방 안에서 불길이 번지는 창문 외부의 방범창을 뜯기 시작했다.


"지금 창문 뜯고 있어요." 이씨가 소방에 알렸다. 연기는 점점 더 자욱해지고 있었다. 그때 방범 창틀이 뜯겼다. 그 순간 또 한 사람이 뛰어들었다. 30~40대로 보이는 남자가 창문을 뛰어넘어 들어가 침대에 있던 정씨를 일으켜 세운 뒤 창가에 정씨의 상반신을 걸쳤고, 밖에 있던 두 사람이 정씨를 밖으로 끌어냈다.


3명의 발 빠른 대처로 몸이 불편한 정씨는 약 4분 만에 밖으로 나왔다. 곧이어 소방차와 구급차가 도착했다. 병원으로 이송된 정씨는 생명에 지장이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정씨를 함께 구한 30~40대 남자는 어느새 사라져 아직 신원이 확인되지 않는다.


현장에 도착한 소방 당국은 정씨 집 현관 출입문을 강제 개방하고 신고 13분 만인 오전 11시 47분쯤 불을 모두 껐다. 이 화재로 방 내부 약 20㎡(약 6평)와 에어컨 등 집기류가 불탔다. 소방 관계자는 "유독가스가 많이 발생해 구조가 늦었다면 큰일이 날 뻔했다"며 "정씨를 구한 이씨 등 3명에게 감사패 수여를 검토 중"이라고 말했다.


[부산=김준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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