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 이종욱·양의지와 혹독한 훈련… 12년 만에 꽃 피운 ‘천재’ 김영수
김영수 3번홀 드라이버 티샷. 제공=KPGA |
지난 동게 훈련기간 체력훈련을 함께 한 김영수(왼쪽)와 양의지(오른쪽). 뒤쪽 김재민 프로는 김영수의 해군 시절 후임으로 그를 따라 프로골퍼가 됐다. /올댓골프 |
“어떻게 이런 선수가 12년 동안 우승이 없었을까요?”
포털사이트로 골프 중계를 보던 한 팬이 이런 글을 올렸다. 이날 많은 갤러리가 끝까지 놀라운 경기력을 발휘하는 김영수(33)를 보며 비슷한 생각에 잠긴 듯 감탄사를 연발했다. 나흘간 72홀 경기를 한 것도 모자라 3차 연장까지 가는 접전을 벌였지만 두 번째와 세 번째 연장에서 버디를 잡을 만큼 조금도 샷이 흐트러지지 않았다. 어려서 신동이라 불렸으나 프로 데뷔 초기 지독한 허리 부상을 당해 선수 생활을 중단하고 입대를 선택했다. 전역 후에도 2부투어까지 떨어지는 등 오랫동안 우승과 인연을 맺지 못했던 선수라고는 믿기지 않았다.
11월13일 경기도 파주의 서원밸리 골프장(파72)에서 열린 KPGA 코리안투어 시즌 최종전인 LG 시그니처 투어챔피언십(총상금 13억원) 최종 4라운드. 2타차 2위로 출발한 김영수는 이날 보기 없이 버디 6개를 잡아 합계 24언더파 264타로 재미교포 한승수(36)와 연장에 들어갔다.
김영수는 18번홀(파4)에서 계속된 1차 연장에서 파, 2차 연장에서 버디로 비긴 김영수는 3차 연장에서 다시 버디를 잡아 보기에 그친 한승수를 제치고 역전 우승에 성공했다. 김영수와 한승수가 벌인 이날 경기는 팬들로부터 “남자골프 정말 재미있다” “심장이 쫄깃쫄깃하다”는 감탄사가 쏟아진, 코리안투어에서 손꼽을 만한 명승부였다.
지난달 제네시스 챔피언십에서 2011년 프로데뷔 이후 12년 만에 107번째 대회에서 정규 투어 첫 승을 거둔 김영수는 이번 최종전 우승으로 제네시스 대상과 상금왕 타이틀을 차지하며 코리안 투어 최고의 선수로 우뚝 섰다.
늘 응원해주시는 부모님께 감사 인사를 올린 김영수는 뒤이어 “체력훈련에 눈을 뜨게 해준 프로야구 NC다이노스의 이종욱 코치님과 이번 시즌을 앞두고 체력훈련을 함께해준 NC 다이노스의 양의지 포수께 감사드린다”고 했다. 2008년 베이징올림픽 금메달리스트 출신으로 ‘노력의 화신’이라 불리던 이종욱(42) 코치와 인연은 6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창원이 집인 김영수는 야구를 워낙 좋아해 자주 야구장을 찾았고 지인의 소개로 이종욱 코치를 알게 됐다. 골프 선수인 그가 허리 부상으로 고생했고 좀처럼 예전 기량을 찾지 못한다는 이야기를 듣고는 먼저 연락을 했다고 한다. 그때부터 시간이 맞을 때 NC 다이노스 홈구장에 있는 체육관에서 함께 운동할 수 있도록 기회를 만들어 주었다. 39세의 나이에 은퇴할 정도로 체력관리를 열심히 하였던 이종욱은 현역 후반부 시절 “야구는 똑같은 것 같다. 누가 빨리 몸을 만들어서 궤도에 오르느냐, 슬럼프가 왔을 때 먼저 극복하느냐. 이 차이에서 갈리는 것 같다”는 말을 했다. 은퇴하는 날까지 최선을 다했던 이종욱의 자세와 체력의 중요성을 김영수는 뼈에 새겼다. 그리고 지난 동계 훈련 때는 양의지(35)와 함께 체력 훈련을 했다. 해군에서 선임과 후임으로 만나 KPGA정회원이 된 김영수의 캐디 김재민(29)도 함께 했다.
김영수는 “우리나라 최고의 포수인 양의지 선배님과 함께 훈련하면서 엄청난 자극을 받았다. 스쿼트할때 140kg 바벨을 들고 하면 200kg을 갖고 하셨다. 겨우내 일주일에 5번 이상 하루 두 시간씩 입에서 단내가 달 정도로 스쿼트와 밸런스 운동을 하며 확실히 체력이 좋아졌다”고 말했다. 체력 훈련의 성과는 대단했다. 김영수의 20대를 부진의 늪에 빠트렸던 허리 통증이 4년 전부터 확실히 좋아졌다. 그리고 지금도 완치되지는 않았지만, 운동을 통해 몸이 부상을 이겨내고 있는 것이다.
김영수가 13일 경기 파주 서원밸리CC에서 열린 LG 시그니처 플레이어스 챔피언십 최종 4라운드에서 우승을 차지한 뒤 기념 촬영하고 있다. /KPGA |
김영수는 올 시즌 최종전 우승으로 2위였던 제네시스 대상 포인트에서 1위로 올라섰고, 우승 상금 2억6000만원을 받아 3위였던 상금순위에서도 선두(7억9320만원)로 올라섰다. 김영수는 2018년 박상현(39)이 세운 코리안투어 시즌 최다 상금(7억9006만원)을 넘어섰다.
김영수는 제네시스 대상에 주어지는 코리안투어 5년 시드와 보너스 상금 1억원, 제네시스 자동차, 그리고 내년 DP 월드투어(옛 유러피언투어) 출전권 등 푸짐한 보너스를 받았다.
김영수는 2007년 허정구배 한국아마추어선수권과 송암배와 익성배 등 대한골프협회가 주최하는 주요 대회 우승컵을 모두 들어 올렸던 ‘골프천재’였다.
하지만 2011년 코리안투어 데뷔 후 허리 부상을 당해 이렇다 할 성적을 내지 못하다 이듬해 시즌 도중 입대했다. 해군 갑판병으로 군 복무를 한 김영수는 전역 후 원 아시아투어와 일본투어, 중국투어 등을 전전하다 2018년 KPGA 2부 투어인 챌린지투어에서 상금왕에 올라 2019년 코리안투어에 복귀했다. 허리부상과 슬럼프의 깊은 수렁에 빠졌던 20대가 얼마나 힘들었을까? 그는 “몇차례나 골프를 그만두고 싶다는 생각이 났지만 하루를 견디면 또 하루가 시작됐다”고 말했다.
주니어 시절 신동 소리를 듣던 시절이 김영수 골프 인생의 1장 1절이라면, 허리 부상으로 힘겹게 보낸 20대가 1장 2절쯤이었을 것이다.
먼길을 돌고 돌아 새롭게 펼쳐진 김영수 골프의 2장 1절에는 어떤 내용들로 채워질지 궁금하다.
[민학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