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착같이 모은 600억, 인문·예술에 바친 ‘괴짜’ 단추회사 회장님
[김미리 기자의 1미리]
인문학교 ‘건명원’ 이어 미술관 여는
오황택 두양문화재단 이사장
“저는 거룩한 말, 경건한 말 할 줄 모릅니다. 허허.” 다음달 문 여는 경기도 양평 이함 캠퍼스에서 오황택 두양문화재단 이사장이 함박웃음 지었다. /이태경 기자 |
7년 전 각계 유명 학자들이 의기투합해 인문학을 가르치겠다고 팔 걷어붙여 화제가 됐다. 최진석(철학) 배철현(종교학) 김대식(뇌과학) 김개천(건축) 등이 참여한 서울 가회동의 건명원(建明苑)이라는 학교였다. 사재 100억원을 쾌척해 이 학교를 세운 사람은 오황택(74) 두양문화재단 이사장. 1978년 단추회사 ‘두양’을 설립한 사업가였다. 대기업도 선뜻 하기 힘든 일을 중소기업이 해 조명받았지만, 개교 날 그는 카메라 앞에 서지 않았다. “주인공은 내가 아니다”라는 이유였다.
2015년 두양문화재단이 만든 서울 가회동의 인문학교 '건명원'. /이진한 기자 |
‘괴짜’ 단추회사 회장님이 이번엔 미술관을 연다. 다음 달 중순 개관 예정인 경기도 양평 ‘이함 캠퍼스’. 남한강 주변 1만 평에 전시장, 강연장 등 건물 8동으로 구성된 대형 문화 시설이다.
“나는 거룩한 말, 경건한 말 할 줄 모릅니다. 그저 평범한 단추 파는 상인일 뿐이에요. 인터뷰? ‘쫄아서’ 여태 안 했지요. 허허.” 지난 8일 이함 캠퍼스에서 만난 오 이사장은 ‘인생 첫 인터뷰’라며 너털웃음 지었다. 장신(長身)의 노신사는 계절을 새치기한 땡볕에도 아랑곳 않고 까만 운동화를 신고 미술관을 누비고 있었다.
남한강 줄기를 따라 1만 평에 조성한 양평 이함 캠퍼스. /사진가 박영채 |
범상치 않다, 이 미술관. 새로 문 여는데 노출 콘크리트로 된 건물엔 세월의 흔적이 짙게 배어 있다. 땅을 사서 건물을 지은 건 20여 년 전. 1999년 완공 이후 텅 비워놨다. “뭔가 다른 미술관을 구상했는데 딱 떠오르지가 않더군요. 답을 찾는 데 20년 걸렸죠.” 3000평에서 시작해 조금씩 사들인 땅이 1만 평으로 늘었다. 초창기 심은 메타세쿼이아 묘목이 어느새 아름드리 나무가 됐다.
미술관 설계자로 그 세월을 지켜본 건축가 김개천은 “지어놓고 어떻게라도 빨리 보여주려는 게 사람 심리인데 이런 분은 처음 봤다. 결코 시간에 쫓기는 법이 없다”고 했다. 마흔이던 건축가는 그새 예순을 훌쩍 넘긴 중진이 됐다.
건축가 김개천이 설계한 양평 이함 캠퍼스. /사진가 박영채 |
20년 고민 끝에 얻은 답은 “일반인의 문화 안목을 ‘업’ 시키는 미술관”이었다. “프랜시스 베이컨이다, 피카소다, 비싸고 유명한 작품은 이미 우리 사회 다른 분들이 보여주고 있어요. 우리는 예술 피라미드의 중하층 안목도 틔울 수 있는 예술, 덜 알려지고 실험적인 작품을 보여주려 합니다.” 개관전 초대 작가는 젊은 미디어 작가 ‘사일로 랩’이다.
이함 캠퍼스 개관전 초대 작가인 '사일로 랩' 작품. /김미리 기자 |
그는 “유명하다고 해서 다 좋은 예술은 아니다. 선입견 없이 맨눈으로 봐서 좋은 작품이 내게 좋은 작품”이라는 지론을 갖고 있다. 유럽 공장에서 쓰던 인더스트리얼 디자인 제품, 폴란드 포스터를 수만 점 보유한 소장가이기도 하다. “기능에 충실한 이들 제품이야말로 일상의 무명 디자이너들이 만든 위대한 작품”이라고 믿는다.
오황택 이사장은 인더스트리얼 디자인 제품 소장가다. 양평 창고에 그간 모은 빈티지 가구가 가득하다. /이태경 기자 |
평범한 사람의 안목에 관심 둔 계기가 있다. “1980년대 일본 출장 가서 호텔방에서 모찌를 먹는데 포장을 어찌나 정성스럽게 했던지요. 우리는 그 포장 값이면 양을 더 넣는다고 생각하던 시절이었죠. 생각해 보니 소비자가 원해서 그런 포장이 나온 거였어요. 그때 깨달았습니다. 그 나라 소비자들의 미감이 높아야 그 나라 상품 수준이 높아진다는 걸.”
미술은 소도(蘇塗) 같은 존재였다. “회사가 종로에 있는데 골치 아프면 근처 인사동 화랑에 갔어요. 거기만 들어가면 근심이 싹 날아갔습니다. 이 좋은 걸 알려야겠다 생각했죠.”
경기도 양평 미술관 '이함 캠퍼스'. /김미리 기자 |
이함 캠퍼스란 이름엔 그의 미술관 철학이 투영돼 있다. ‘빈 상자로서’라는 의미의 ‘이함(以函)’과 구글·애플 같은 IT 회사의 사옥에 주로 붙는 명칭 ‘캠퍼스’를 조합해 “문화를 담는 상자로서 기능하면서 일반인들이 예술과 교육을 경험할 수 있는 캠퍼스가 되겠다”는 뜻을 담았다.
오 이사장은 황해도 사리원 출신 실향민. “낳아주고 키워주신 부모님께 미안하기 때문에 자수성가란 말은 싫다”면서도 “학창 시절 늘 경제적 긴장 속에 살았다”고 했다. 지독한 책벌레로 국문학과(중앙대)에 진학했지만 “장사해서 돈 벌어야겠다는 일념이 앞서” 관뒀다. 친구 아버지가 하던 단추 공장과 연이 닿아 그 길로 44년간 단추만으로 한 우물 팠다.
이함 캠퍼스 입구에 선 오황택 이사장. /이태경 기자 |
그렇게 악착같이 모은 돈 600억원을 인문학, 예술에 바쳤다. “내가 돈 대는 건 김밥 장수 할머니가 어렵게 번 돈으로 장학금 내는 것과 비슷해요. 나 같은 하찮은 소상인도 하는데 진짜 돈 많은 사람, 대기업은 더 인문학·문화에 관심 두라고 메시지 주는 겁니다.”
말은 쉬워도 실천은 어렵지 않나. “애들한테 물어보세요. 99% ‘훌륭한 사람 돼서 남 돕겠다’고 해요. 그런데 어른 되면 다 잊어버려요. 나는 잊지 않았습니다. 공부를 많이 못 해서인지, 남보다 나은 게 있단 생각을 해본 적 없습니다. 그저 상식을 실천하자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남들이 다행(?)스럽게도 이놈의 상식을 실천 안 해요. 그 틈새를 내가 차지했다고 해야 하나. 허허. "
인터뷰를 마치고 서울로 돌아오는 길, 그에게서 문자 한 통이 왔다. “무지렁이 백성이 원님과 독상 받으면 이런 느낌일까요. 평범한 얘기 경청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평생 단추 만들어 모은 돈을 인문과 예술에 바친 삶. ‘평범’ 두 글자에 가둘 수 없는 인생 아닌가.
[김미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