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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흔둘, 난 오늘도 그녀의 얼굴에 色을 채운다

알렉스 카츠… 美 인물화 대표 현역 화가, 亞 최대 규모 개인전 열어

"그림이 '너무 가볍다'고? 글쎄… 개의치 않는다, 아직 그릴 게 많으니까"

 

아흔둘, 난 오늘도 그녀의 얼굴에 色

망백(望百)을 한 해 더 넘겼다. 화가 알렉스 카츠(92)는 지금도 매일 4시간씩 그린다. "30대 때부터 헬스장에 다녔다. 삶의 중요한 습관이다. 그리는 일도 마찬가지다. 매일 직장에 나가 일하듯 일정 시간을 그림에 쏟는다. 나이로 인해 달라진 건 없다. 여전히 그림만큼 흥미로운 건 없으니까." 미국의 대표 화가로 손꼽히는 알렉스 카츠의 아시아 최대 규모 개인전이 대구미술관에서 5월 26일까지 열린다. 뉴욕 소호 작업실에 머물고 있는 그를 서면 인터뷰했다.


유화·드로잉 등 114점을 선보이는 이번 전시는 작가의 전(全) 연대를 아우른다. 다만 카츠가 "나는 현역이고 아직 그릴 게 많다"고 주장해 '회고전' 타이틀은 뺐다. 만화처럼 단순화된 윤곽선에 색을 채워넣는 그의 특징적 회화는 "너무 가볍다"는 혹평과 새로운 비명을 동시에 불러냈다. 카츠는 "안 좋은 평을 들었을 때 비평가들에 대한 분노로 공격적인 태도를 취한 적도 있지만 지금은 개의치 않는다"고 했다. 미술관 측은 "추상표현주의가 득세하던 1950년대에 카츠는 구상 회화의 자기 길을 묵묵히 걸었다"며 "조롱과 비판에도 초지일관하면 훗날 평가받는다는 교훈을 전하고 싶었다"고 했다. 현재 그는 '가장 미국적인 화가'로 추앙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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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의 전신상을 그리고 있는 알렉스 카츠. /Vincent Katz, New York

그가 그리는 것은 사람이다. 사실주의에 기반한 간결화, 단순한 색, 그 위로 전면 부각되는 얼굴이 그 얼굴을 잊을 수 없게 한다. "그림을 시작할 당시만 해도 인물화로 성공할 수 있다는 시각이 많지 않았다"며 "그게 인물화를 선택하게 한 하나의 이유"라고 했다. "모델은 그저 내가 본능적으로 선택한 사람, 그리고 나와 어떤 식으로든 관계를 맺고 있는 인물"이라는 설명처럼 그는 친구나 이웃 등 주변 사람을 캔버스에 옮긴다. "식상하면 더는 등장시키지 않는다. 내 기분과 아이디어의 변화에 맞아야 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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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체 여인의 동작을 계절에 따라 변화하는 나무처럼 묘사한 '여름의 에어리얼'. /정상혁 기자

그러나 결코 변치 않는 모델이 있다. 아내 에이다(Ada)다. 에이다는 1957년부터 약 300점의 작품에 등장하는데, 이번 전시작 20점도 아내를 그린 것이다. 1956년 첫 만남에서 한눈에 반한 여자. 카츠는 에이다를 피카소의 애인이자 뮤즈였던 도라 마르에 빗대곤 한다. 이번 전시의 백미 '레드 스마일'(1963)도 마찬가지. 거대한 색면의 인물 배치, 원근감 거의 없는 공간성, 광고 사진처럼 확대된 대담한 구도로 '카츠 스타일'의 전형이라 평가받는다. 카츠가 "내 작품의 온전한 이해를 위해 꼭 전시돼야 한다"고 당부해 뉴욕 휘트니미술관에서 대여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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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 에이다를 그린 카츠의 대표작 ‘레드 스마일’의 일부. ⓒAlex Katz/Licensed by VAGA at Artists Rights Society, New York, NY

인물 못잖게 몰두하는 건 풍경, 꽃과 나무와 물이다. 그리고 '오후 4시 30분'에서 보이듯 풍경화 대부분은 황혼 무렵에 그려졌다. "그저 그 시간의 풍경이 마음에 들기 때문"이라며 "인물보다 풍경에 더 직관적으로 다가가는 편"이라고 했다. 몇 개의 단순한 빛으로 그려낸 풍경화는 그래서 추상에 가깝다. 풍경화에 인물화가 들어가기도 한다. 1993년작 '1월 3일'의 경우, 화면을 세 컷으로 분할한 뒤 뉴욕의 공원 풍경 한가운데 에이다의 상반신을 넣었다. 이 그림은 총 5시간에 걸쳐 제작됐고, 이를 녹화해 21분으로 압축한 영상 '5시간'도 전시장에서 상영된다.


카츠는 "내게 예술은 삶의 방식이고 전쟁보다 나은 것"이라고 했다. 그의 대표적 평면 조각 작업 '컷아웃' 13점이 전시장 밖 로비에 전시돼 있다. 잘라낸 금속판에 유화로 사람을 그려 세워둔 그것은 초상화이자 동시에 조각이다. 평면이자 입체인 그 그림을 오가며 관람객들이 열심히 사진을 찍는다. "프랑스 시인 기욤 아폴리네르는 '바지를 내리면 영감이 떠오른다'고 했다는데, 나는 오히려 (받기보다) 영감을 주는 쪽이고 싶다. 훗날 어떤 식으로 기억되고 싶다는 바람은 전혀 없다. 그저 세상을 떠나고 나면 그뿐."


정상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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