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썩어버린 감자의 도착… ‘착한 소비’ 환불 요구하면 내가 나쁜걸까?

아무튼, 주말

[아무튼, 주말] 착한소비, 기부인가 소비인가


“돈 주고 쓰레기 산 기분이에요. 감자 상태가 너무 심하네요” “감자 깎다 스트레스받고 쓰레기봉투 값까지 듭니다” “싹 난 감자를 보고 시어머니가 씨감자 산 거 아니냐고 하시네요”….


지난 1일 강원도 농산물 쇼핑몰. 후기 게시판에는 별점 1점과 함께 배송받은 감자 사진이 올라왔다. 10㎏에 5000원이라 주문 대란을 일으킨 그 강원도 감자다. 지난달 11일부터 2주간 20만6000상자(2060t)가 팔렸다. 껍질을 벗긴 감자는 검게 상해 있거나 싹이 났다. 쭈글쭈글하고 물렁물렁한 감자, 축축하게 젖어 하얗게 곰팡이가 펴 있는 감자도 있었다.

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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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착한 소비'로 산 감자가 썩으면?


"좋은 감자를 저렴하게 샀다"는 후기도 있지만, "먹기 어려울 정도로 상한 감자를 받았다"는 후기도 이어졌다. 문제는 강원도 감자에 대한 불만을 말하면 '진상'으로 모는 분위기. 트위터 등 소셜미디어에는 '농가 돕자고 산 감자를 환불받겠다는 진상은 누구냐?' '5000원 내고 싱싱한 햇감자를 기대했느냐?'는 비난이 올라왔다.


"90% 이상이 썩었네요. 농민 도와주자는 취지로 산 거라 구매 확정합니다." "상자 열자마자 감자 썩은 냄새가 진동하는 거 보고 기겁했습니다. 기부했다고 생각하고 다 버렸습니다." 일부 구매자는 썩은 감자가 음식 쓰레기통으로 직행할지언정 반품·교환은 하지 않기로 했다. '착한 소비'였기 때문이다. 최문순 강원도지사는 코로나로 감자를 팔지 못한 농민을 돕자며 택배비와 상자 값을 지원해 감자 값을 파격적으로 낮췄다.


선의의 구매가 실패했을 때 기부한 셈치고 넘어가야 할까. 구정우 성균관대 사회학과 교수는 '착한 소비'라도 소비는 소비라고 말했다. "값을 지불하고 좋은 상품을 손에 넣는 게 소비의 전제다. 자본주의의 규칙을 어겨 소비자의 불신을 키우면 '착한 소비'는 지속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대구·경북은 강원도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더 어렵다.


이번 감자 떨이가 '착한 소비'가 아니었기에 부작용으로 생긴 논란이라는 지적도 나왔다. 천경희 가톨릭대 사회혁신융복합전공 교수(소비자학)는 "5000원이라는 금액은 너무 낮았다. 착한 소비는 '윤리적 소비'라고도 한다. 가격이 높아도 그 의미와 가치에 동의해 값을 낸다는 취지다. 너무 싼 가격에 어려운 농민을 도와준다는 마음보다 사행심이 앞섰다"고 분석했다.


썩은 감자는 교환·환불 받으세요


'착한 소비'가 가능하려면 생산자와 소비자 사이에 신뢰 구축이 중요하다. 착한 소비의 핵심은 소비자가 생산자가 누군지 알도록 하는 것이다. 천 교수는 "농업협동조합이나 도시-농촌 교류를 통한 직거래가 좋은 예다. 투명한 시스템에 대한 믿음이 쌓이면, 소비자는 비싸더라도 공동체를 위하는 마음으로 구매한다"며 "코로나 사태가 장기화될 수도 있으니 정교하게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고 말했다. "직거래를 지자체에만 맡기지 말고 지역 NGO가 앞장서서 소비자와 생산자를 보증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썩은 감자와 함께 잃어버린 신뢰는 어떻게 회복하나. 강원도청 친환경농업과 이기영 계장은 "교환을 요청하는 구매자에게는 산지 농협과 농가에서 감자를 새로 포장해 보내 드린다"며 "택배비는 농가와 농협에서 부담한다"고 말했다. "동시 접속자가 250만명에 가까웠고 폭발적인 소비자 요구에 마음이 급했다. 현장에서 세밀하게 선별하지 못했다"고 그는 해명했다. 감자 상자에 적혀 있는 산지 농협으로 연락하면 불량 감자를 교환받을 수 있다.


홍천군 내면농협 김학진 팀장은 “농가마다 품질 차이가 컸다. 마흔 농가 중 한두 곳에서 나쁜 품질의 감자까지 보내 문제가 생긴 것”이라고 했다. 김 팀장은 “판매한 감자 8만 상자 중 100상자 정도를 교환·환불 처리했다. 내면 농가에는 상품(上品)이 다 떨어져 새 감자로 교환이 어렵다. 대신 사진으로 상품 상태를 확인해 5000원씩 환불해 드리고 있다”고 했다.


[조유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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