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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컬처]by 조선일보

비운의 효명세자? '춘앵무' 만든 조선의 만능 엔터테이너

국립국악원 '세자의 하루' 공연

조선 후기 궁중무용 황금기 이룬 효명의 박접무·처용무 등 선봬


꽃무늬를 수놓은 화문석 위에 한 여인이 날아든다. 꾀꼬리를 상징하는 노란 앵삼(鶯衫)과 허리에 두른 붉은 띠가 손짓마다 떨린다. 정조의 손자이자 순조의 아들인 효명세자(孝明世子·1809~1830)는 어머니인 순원왕후 김씨의 40세 생신을 축하하기 위해 1828년 궁중무용인 '춘앵무(春鶯舞)'를 만들었다. 봄날 버드나무 가지 위에 앉아 노래하는 작고 귀여운 꾀꼬리를 표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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효명세자가 당나라 고종의 이야기에서 이름을 빌려 직접 가사를 쓰고 김창하와 함께 안무한 '춘앵무'. 궁중무용 중 보기 드물게 혼자 추는 춤이다. /국립국악원

오는 23~24일 오후 3시 서울 우면동 국립국악원 예악당에서 열리는 '동궁(東宮)―세자의 하루'는 우아함의 극치인 궁중무용을 한 편의 극으로 엮어 '하늘에서 보내신 귀하신 몸, 효명세자'의 분주한 일상과 그 속에서 건져 올린 고매한 춤의 세계를 들여다보는 기획 공연이다.


KBS 드라마 '구르미 그린 달빛'에서 배우 박보검이 맡았던 역할이기도 한 효명세자는 스물하나 짧은 생을 살다 갔으나 뛰어난 문학적 재능을 보여 정조보다 두 배나 많은 시를 남겼다. 춤과 노래에도 안목이 빼어나 조선 후기 궁중무용의 황금기를 이루는 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 대리청정 기간 3년 동안 크고 작은 궁중 연향(宴享)을 주최하면서 악사이며 무용가로 궁중에 상주한 김창하와 함께 새로운 궁중무용과 시를 만들어 예술로 왕실의 위엄을 드러냈다. 백성과 함께 예술을 나누고자 하는 애민(愛民)의 마음도 실었다.


뮤지컬 '영웅'과 창극 '메디아'의 대본을 쓴 한아름이 빈틈없는 일과 속에서도 자연의 아름다움을 놓치지 않고 이를 궁중무용으로 되살린 효명의 하루를 이야기로 푼다. 지난해 대한민국작곡상 최우수상을 받은 황호준은 춤 선에 맞춘 창작 국악 선율을 들려주고, 국립국악원 무용단 수석 출신 안덕기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는 안무로 궁중무용 고유의 멋을 살린다.


총 열 개의 무용이 무대를 수놓는다. 궁중무용에서는 원래 표정 연기가 금지돼 있으나 무용수 홀로 화사한 옷을 입고 꾀꼬리처럼 나풀거리는 '춘앵무'에서는 여령(女伶)이 하얀 이를 드러내며 곱게 웃는 순간이 백미다. 호랑나비 한 쌍이 노니는 모습을 표현한 '박접무', 세상이 바뀌기를 기다리는 백성들 마음을 담은 '처용무'는 물론이고, 문 위쪽에 뚫어놓은 구멍으로 나무 공을 던져 들어가면 상으로 꽃을 받고 들어가지 못하면 벌로 뺨에다 먹칠을 한 '포구락'과 학의 온갖 모습을 흉내 내는 '학무', 달 밝은 밤에 무인 여섯 명이 추는 '영지무'와 긴 북채로 박진감 넘치게 북을 두드리며 추는 '무고', 캐스터네츠를 치며 추는 스페인의 플라멩코처럼 여인들이 향발이라는 작은 타악기를 손가락에 끼고 추는 '향발무' 등 조선의 만능 엔터테이너였던 효명의 예술 세계가 춤으로 멋스럽게 피어난다.


김경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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