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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프]by 조선일보

“바보같이 살아도 큰일 나지 않고, 좀 논다고 굶어 죽지 않더라”

[아무튼, 주말]

“부부가 둘 다 퇴사하고 놉니다”

편성준·윤혜자 부부가 사는 법

편성준·윤혜자 부부는 ‘노는 삶’을 사는 동안 가장 크게 깨달은 것이 무엇이냐고 묻자 이렇게 답했다. “‘좋은 사람으로 살아야겠다’는 생각. 그렇지 않으면, 좋은 사람들이 우리와 놀아주지 않을 테니까!” 인터뷰 내내 성북동 ‘소행성’에선 웃음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양수열 영상미디어 기자

“여보, 나 아무래도 회사를 그만둬야겠어.” “응, 그렇게 해. 결심하느라 마음고생 했겠네.”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느라 고달픈 나날을 보내는 가장이라면 한 번쯤 꿈꿔봤을 법한 이 장면은 2019년 4월 당시 26년 차 광고회사 카피라이터였던 편성준(56)이 아내 윤혜자(52)와 나눈 대화다. 편성준이 회사에서 밤을 꼬박 새우고 난 뒤 건 전화였다. 당시 윤혜자는 다니던 출판사를 이미 그만뒀을 때. 원래 부자로 태어났거나 모아둔 돈이 많았다면 이해가 갈 법하지만, 두 사람은 그런 경우가 아니었다. 이들은 다만 ‘회사를 안 다니면 정말 굶게 될까?’란 질문을 오래전부터 마음에 품고 있었다. 지금, 이 질문에 대한 부부의 답은 이렇다. “바보같이 살아도 큰일 나지 않고, 좀 논다고 굶어 죽지 않더라.”


부부는 회사를 다니는 대신 좋아하는 일, 하고 싶은 일을 했다. 책을 읽고, 글을 쓰고, 수다를 떨고, 친구들을 불러 집밥을 먹고…. 그러면서 세 권의 책을 썼다. 그중 두 권은 저녁 밥상에서 윤혜자가 툭 던진 말에서 시작됐다. “당신, 제주에 내려가서 한 달만 있다 와. 가서 글 쓰고 책 읽으면서 좀 놀다 와.” 편성준은 윤혜자의 말을 충실히 이행했고, 부부의 이야기를 다룬 에세이집 ‘부부가 둘 다 놀고 있습니다’ ‘여보, 나 제주에서 한 달만 살다 올게’가 탄생했다. ‘글에 유머가 있어서 잘 읽힌다’는 반응이 이어지자, 지난달 ‘살짝 웃기는 글이 잘 쓴 글입니다’라는 글쓰기 책도 냈다.


한 드라마 제작사는 부부의 이야기를 시트콤으로 만들겠다고 나섰다. 이 부부가 대체 어떤 삶을 사는 건지 궁금해졌다. 서울 성북동 집에서 이들을 만났다. 자그마한 한옥인 이곳의 이름은 ‘소행성(小幸星)’. ‘작지만 행복한 별’이라는 뜻이 담겼다.

◇부부가 놀고 있습니다

지금처럼 살기 전 편성준은 광고회사에서 카피라이터로 일했다. ‘내 아이에게 물려주고 싶은 나라’(정부 캠페인), ‘주인공은 싫습니다’(장애인 공익광고), ‘커피가 착해서 커피에 반하다’(카페) 등의 카피가 그의 작품이다. 윤혜자는 주간지와 월간지 기자를 거쳐 출판사에서 기획자로 일하며 50여 권의 책을 펴냈다. 두 사람이 회사를 다닌 시간을 합치면 50년 정도 된다.


-회사를 다니지 않는 삶을 택했다.


편성준(이하 편): “30년 가까이 남을 위해 일을 했다. 모든 일이 갑(甲)을 위한 ‘을(乙)질’이었다. (회사에서) 자존심이 상하는 일이 켜켜이 쌓여갔고, 재미도 사라졌다. ‘이제 남이 시키는 게 아니라,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해보자’는 생각이 들었다. 노는 건 쉬는 것과 다르다. 어디에 예속되지 않으면서, 팔팔하게 하고 싶은 것을 하는 거다. 책도 쓰고, 칼럼도 쓰고, 독서모임도 한다. 돈이 아예 안 되거나 별로 안 되는 일들이다. 나는 돈이 되지 않을수록 재밌더라. 하하!”


윤혜자(이하 윤): “직장에 다닐 땐 내 의지로 할 수 있는 게 많지 않다. 회사에선 뭔가 해보려고 하면 방해하는 것들이 많았다. 시장성도 봐야 하고, 윗사람이 싫어하면 못 하고…. 그런데 지금은 그런 게 없다. ‘덕업일치(좋아하는 것과 일이 일치)’의 삶이랄까.”


-회사를 관두겠다는 남편에게 흔쾌히 ‘알겠다’고 했다던데.


윤: “나는 2017년에 회사를 나왔다. 전부터 소비를 줄이면서 (퇴사 이후를) 준비했다. 시기가 문제였지, 남편도 언젠가 회사를 그만두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오래 하려면 하루라도 빨리 시작해야 하니까.”


-남편에게 ‘제주 한 달 살기’를 권한 이유는.


윤: “둘 다 회사를 안 가니 매일 붙어 있어야 되지 않나. 남편이 글에 집중을 못하더라. 아는 후배가 제주도에 별장을 지었는데, 입주까지 집이 빈다기에 (남편을) 보냈다. 동굴을 마련했으니, 들어가서 글을 쓰라고 한 거다.”


편: “로또 1등보다 더 부럽다는 얘기도 들었다, 하하! 비장한 마음으로 내려갔고, 미친 듯 글을 썼다.”


-‘배부른 소리’란 시선도 있다.


윤: “일정 부분 동의한다. 편성준씨는 글 쓰는 재능이 있고, 나는 기획자로서의 커리어가 있어 이렇게 살 수 있는 거다. 복 받았단 생각을 한다. 아이가 없어 가능한 삶인 것 같기도 하다.”


편: “‘쇼 하는 것 아니냐’고 하는 사람도 있다. 한 번은 돈이 5만원도 없어서, 장례식장에 못 간 적이 있었다. 지인이 화를 내며 전화를 했길래, 솔직하게 말했더니 ‘번지르르하게 잘만 살면서…’란 말이 돌아왔다. 상처였다.”


윤: “그런 말을 들을 때마다 ‘우리 이렇게 빠듯하게 산다’면서 변명을 했는데, 이젠 변명하지 않을 생각이다. 우린 그저 적게 벌고 적게 쓰면서, 하고 싶은 것을 하는 삶을 선택했을 뿐이니까.”


-생계는 어떻게 하나.


편: “아내가 기획하고, 내가 콘텐츠를 채우는 식으로 이런저런 일을 벌인다. 원고 청탁이 들어오면 쓰고, 강연도 하러 다닌다. 책을 내고 싶어하는 이들을 코칭하는 ‘소행성 책쓰기 워크숍’도 운영한다. 돈이 정말 없을 때는 코로나 방역 아르바이트도 했다. 솔직히 한 달에 두 번, 주택담보대출금 갚는 날과 카드대금 결제일에 잠을 설친다, 하하! 하지만 회사를 다닐 때보다 훨씬 좋다. 마음이 시키지 않는 일을 계속하며 살 순 없었다.”


윤: “솔직히 노후 대책 같은 건 없다. 지금처럼 매일 즐겁게 열심히 살다 보면, 언제나처럼 해결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한다.”

편성준은 자신을 '공처가'라고 했다. "아내가 떽떽거리는 역할을, 내가 당하는 역할을 맡는 것이 암묵적으로 합의돼 있다. (아내를) 두려워하는 마음도 있고…"라는 편성준의 말에, 윤혜자는 "(남편이) 공처가라고 하기엔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너무 많이 한다"고 반박했다. /양수열 영상미디어 기자

◇'고노와다에 소주 한 잔 하실래요?’

편성준과 윤혜자는 2011년 만나 2013년 결혼했다. 두 사람 모두 마흔이 훌쩍 넘어서 한, 늦깎이 결혼이었다.


윤: “우리 연애는 100% 내가 시작했다. 출판사에서 일할 때라, 좋은 글을 쓰는 사람을 찾아다녔다. 한 후배가 ‘아는 오빠가 있는데 글을 정말 잘 쓴다’면서 편성준씨 블로그를 추천해줬다. 그때 (편씨가) ‘음주일기’란 글을 연재하고 있었는데, 선한 사람이라는 게 느껴졌다. 우연히 술집에서 만나 연락처를 교환했고, 한 달쯤 지나 ‘고노와다(해삼 내장)에 소주 한 잔 하실래요?’라는 문자를 보냈다.”


편: “반갑기도 하고 고노와다가 뭔지 궁금하기도 했다. 그때 빨래를 널고 있었는데, 마음속에서 ‘빨리 나가’란 외침이 들리더라. 하하.”


윤혜자는 당시 ‘나는 한 번 이혼을 했는데 괜찮으냐’고 물었고, 편성준은 ‘아무 상관 없다. 살다 보면 별일이 다 있는데 이혼이 뭐 어떠냐’고 답했다. 이날 둘은 연인이 됐다.


-지금껏 한 번도 싸우지 않았다고.


윤: “싸울 일이 별로 없다. 그리고 부부 문제라는 게 대부분 싸운다고 해결되지 않는다. 이를테면 이런 거다. 우리는 각자의 카드 값을 각자가 해결한다. 편성준씨가 카드 값을 낼 수 없어 혼자 끙끙대다가 결제일이 돼서야 내게 얘기를 한 적이 있다. 어떤 부부에겐 이게 싸움이 될 수도 있다. 그런데 싸우면 카드 값이 해결되나? 조용히 ‘다음부턴 미리 상의하자’고 했고, 남편은 ‘그렇게 할게’라고 했다.”


부부는 서로가 상당히 다른 사람이라고 했다. 요약하면 편성준은 구멍이 많은 평화주의자, 윤혜자는 꼼꼼한 완벽주의자다. ‘다름’이 문제가 되진 않냐고 묻자, 윤혜자는 “서로가 어떤 사람인지 충분히 알기 때문에 불편하지 않다”고 했다. 편성준이 “우리 부부는 세상을 바라보는 태도는 같다. 장애인, 채식에 대한 생각 등이 달랐다면 같이 못 살았을 것”이라고 하자, 윤혜자는 “맞다. 돈타령 하는 사람이었다면 반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맞장구쳤다.


-’결혼하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 때는.


편: “기억이 잘…. 하하! 나의 실없는 소리를 아무렇지 않게 받아줄 때? 다른 사람들에겐 나사 풀린 얘기를 못하는데, 윤혜자에겐 길 가다 똥 싼 얘기도 다 한다.”


윤: “싫어하는 사람 같이 욕해줄 때. 많은 남편들이 ‘이건 네가 잘못했고, 저건 어떻고…’ 이렇게 설명을 한다는데, 우리 남편은 ‘미쳤네!’라며 같이 욕해준다.”


두 사람 집에는 ‘같이 죽자’라고 새겨진 머그컵이 있다. 남은 인생 즐겁게 살다가 한날 한시에 죽는 것이 두 사람이 누릴 수 있는 마지막 호사란 생각에 이런 글귀를 새겼다고 했다.



조선일보

왼쪽 사진은 편성준·윤혜자 부부가 운영하는 '소행성 책쓰기 워크숍'의 모습. 책 쓰기를 원하는 사람들을 코칭하는 프로그램으로, 맨 왼쪽이 편성준이다. 오른쪽 사진은 부부의 반려묘 '순자'. 편성준은 “순자는 우리의 말을 한사코 안 듣는다. 혜자(아내)보다 순자가 높다”며 웃었다. /윤혜자 제공

◇유머와 위트가 있는 글이 잘 쓴 글

부부는 뭔가를 매일 쓴다. 편성준은 주로 신변잡기적인 글과 책·영화 리뷰를, 윤혜자는 식사 일기를 쓴다.


-어쩌다 글에 빠졌나.


편: “어렸을 때부터 공부엔 관심이 없고, 책 읽기와 글 쓰기를 좋아했다. 고등학교 때 선생님한테 ‘국문과 가고 싶다’고 하니 ‘국문과 가면 굶어 죽는다. 영문과를 가라’ 하시더라. 선생님은 서울대 국문과 나온 분이었다, 하하! 여하튼 홍익대 영문과에 들어갔는데, 영어만 하고 문학은 전혀 안 해서 너무 재미가 없었다. 겨우 학교를 졸업했다. 학점이 정말 안 좋았는데, 취업을 하려고 자기소개서를 독특하게 썼다.”


편성준이 첫 취직을 할 때 썼던 자기소개서는 이렇게 시작된다. ‘시인이 되고 싶었습니다. 대학 4년 동안 700여 병의 소주와 2만 개비의 담배를 마시고 피우는 동안에도 술잔 옆에는 늘 시집이 놓여 있었지만 정작 마음에 드는 시는 단 한 줄도 쓸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매일 쓰는 게 지겹지 않나.


편: “전혀. 내겐 쓰는 행위 자체가 놀이다. 떠오르는 생각을 즉시 메모한다. 냅킨에도, 휴대폰에도 쓴다. 메모들이 나중에 글이 된다. 광고 카피를 쓰라고 했으면 싫었을 거다. 그건 일로 느껴지니까.”


윤: “몇 년 전부터 음식을 공부하고 있다. 장과 김치도 직접 담근다. 매일 제철음식으로 밥상을 차리고, 식사 일기를 쓴다. 이왕이면 내 기록이 남한테 도움이 됐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소셜미디어로 공유한다. ‘이 정도는 나도 할 수 있겠다’ ‘오늘은 나도 이걸 해먹어야지’라는 분들이 생겨나더라.”


-살짝 웃기는 글이 잘 쓴 글이라고?


편: “내가 추구하는 글이 살짝 웃기는, 유머와 위트가 있는 글이다. 단, 처음부터 끝까지 유머로 점철된 글은 최악이다. 유머 옆에는 언제나 페이소스(동정 혹은 연민을 불러일으키는 표현방식)가 있어야 한다. 요즘 독자들은 저 높은 곳에서 호통치는 ‘작가님’보다, 자기와 비슷한 사연과 정서를 갖고 공감과 위로를 건네는 ‘라이터’를 원한다. 지금은 누구나 글을 써야 하는 시대다. 그런데 글재주가 없다며 시작조차 하지 않는 이들이 많아 안타깝다. 좀 못 쓰면 어떤가. 나라를 구하는 일도 아닌데.”


-부부와 같은 삶을 꿈꾸는 이들에게 조언한다면.


윤: “준비가 필요하다. 우리는 둘 다 20년 넘게 한 분야에서 경력을 쌓았다. 회사라는 타이틀을 딱 떼는 순간 아무것도 아닌 사람이라면 놀기 어렵다. 지금 하는 그 일을 잘해서 실력을 쌓아야 한다.”


편: “완벽한 상태가 돼야 뭘 하겠다는 생각은 하지 말기를. 완벽한 상태란 건 없다. 어느 정도 준비가 되면 자신을 믿고 한 번 저지를 필요도 있다.”


[이옥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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