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시령을 넘자 맛도 색도 달라졌다… 춘천은 비벼서, 인제는 말아서 먹는 이 국수!
[아무튼, 주말] 춘천·인제·고성·속초·용인
막국수 찾아 떠난 면식수행
산 너머 골마다 하나씩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수많은 막국수 집이 강원도 전역에 포진해 있다. 그만큼 막국수는 강원도를 대표하는 음식이다.
타 지역 사람들은 막국수라고 하면 ‘매콤새콤달콤한 국물에 말아 먹는 갈색 국수’로 알지만, 같은 강원도라도 지역 따라 맛과 모양이 다르다. 양념에 비벼 먹는 마을이 있는가 하면, 맑은 국물에 냉면처럼 말아 먹는 동네도 있다. 국물도 동치미를 쓰는가 하면, 사골 육수를 쓰거나, 동치미와 사골 육수를 섞기도 한다. 뽀얀 크림빛부터 메밀 겉껍질이 거뭇거뭇 박힌 검정까지, 면발 색과 굵기도 다르다. 막국수라는 이름 하나로 묶어도 될지 의문이 들 정도다.
막국수의 정체는 과연 뭘까. 어떻게 변해왔을까. 마침 연중 이맘때는 동치미가 알맞게 익고 햇메밀이 나와 막국수가 가장 맛있는 때. 강원도로 ‘면식수행(麵食修行)’을 떠났다.
◇막국수의 메카, 춘천
춘천은 자타 공인 막국수의 메카. 신북읍 ‘샘밭막국수’(033-242-1712) 조성종(51) 대표는 “춘천에서 영업 중인 막국수 집이 200곳쯤 된다”며 “그것도 이전보다 줄어든 숫자”라고 했다.
샘밭막국수는 춘천에서 가장 오래되고 유명한 막국수 전문점 중 하나다. 조 대표가 태어난 1970년 어머니 최명희(87)씨가 “먹는 장사를 하면 식구들 끼니는 거르지 않는다’는 시어머니 말에 세 칸짜리 초가집에서 막국수를 뽑아 팔기 시작했다.
춘천이 막국수 고장으로 알려지기 시작한 건 샘밭막국수가 문 열 무렵. 막국수는 본래 화전민이 먹던 음식이다. 1970년대 초 화전민이 정리되며 본격적으로 세상에 나왔다. 때마침 1970년대 소양강댐 공사로 전국에서 노동자들이 몰렸다. 노동자들과 강원도에서 군 생활 한 남성들, MT 온 대학생들이 막국수를 맛보고는 “싸고 맛있고 소화도 잘된다”고 소문 냈다.
조 대표는 “춘천 막국수가 본격적으로 대중화한 건 1980년대”라고 기억했다. “경기가 좋아지면서 집마다 차 한 대씩 소유한 ‘마이카’ 시대가 됐잖아요. 춘천으로 드라이브 온 사람들이 막국수를 맛보면서 유명해진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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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화를 나누는 사이 갓 뽑은 막국수가 나왔다. 대접에는 양념장, 김 가루, 참깨를 뒤집어쓴 국수 한 덩이와 삶은 달걀 반쪽이 담겨 있었다. 국물은 주전자에 담겨 열무김치, 겨자와 함께 따로 나왔다. 조 대표는 “춘천 막국수는 비빔이 기본”이라며 “육수는 취향에 따라 부어 먹는다”고 했다.
면이 흔히 아는 막국수와 달리 흰색에 가깝다. 속메밀만 쓰기 때문이다. 메밀을 한 번 벗기면 녹쌀이 나온다. 쌀로 치면 현미(玄米)다. 녹쌀을 한 번 더 벗기면 흰 메밀쌀이 나온다. 녹쌀을 빻으면 우리가 흔히 아는 겉메밀, 메밀쌀만 빻으면 속메밀이다. 샘밭막국수에서 일반 막국수는 춘천의 다른 막국수 전문점과 마찬가지로 속메밀가루 70%와 밀가루 30%를 섞어 면을 뽑고, 순메밀 막국수는 100% 속메밀가루로 뽑는다.
메밀은 찰기가 없어서 뚝뚝 끊기고 국수가 잘 안 된다고 알려졌다. 이 집 국수는 그렇지 않았다. 씹는 즐거움을 느낄 정도의 탄력을 지녔으면서 동시에 메밀 특유의 구수한 향이 짙었다. “메밀이 국수가 되지 않는다는 건 옛날얘기죠. 제분 기술이 좋아져서 옛날보다 훨씬 곱게 빻을 수 있어요. 열에 약하고 금방 탄력이 떨어지는 메밀의 예민한 성격을 이해하고 거기 맞춰 면 뽑고 삶는 기술까지 더하면 매끄럽고 차진 면을 뽑을 수 있죠.”
속이 뻥 뚫리는 듯 시원하면서도 입에 착 감기는 국물은 동치미와 사골 육수를 섞어 쓴다. 어머니 최명희씨가 화전민에게 배운 비법이다. “이북이 고향인 화전민이 말해줬대요. ‘우리 동네선 소뼈를 우려내 동치미 국물과 함께 섞어 냉면 육수로 쓴다’고요. 동치미 국물이 시원하지만 부족한 감칠맛을 사골 육수가 보완해줬죠.”
조 대표는 국수를 맛있게 비비는 노하우를 알려줬다. “보통 손님들은 젓가락을 한 손에 쥐고 비비세요. 저는 젓가락을 하나씩 양 손으로 쥐고 비벼요. 그래야 양념이 뭉치는 곳 없이 고르게 비벼져서 짠 부분도, 싱거운 부분도 없지요.” 그가 알려준 대로 막국수를 비벼 입에 넣었다. 고소한 메밀·참기름 냄새가 코를 찔렀고, 양념장은 너무 맵거나 달지 않아서 메밀의 풍미를 가리지 않았다.
그는 “막국수를 다 먹고 남은 그릇을 보면 춘천 사람인지 타지 사람인지 알 수 있다”고도 했다. “춘천 사람들은 막국수 먹고 빈 그릇에 면수(麵水·국수 삶은 물)를 부어 마셔요. 스님들이 공양 마친 뒤 발우를 뜨거운 물로 부시는 것과 비슷하죠.” 조 대표가 알려준 대로 식사 전 주전자에 담겨 나와 있던 면수를 그릇에 조금 따라 휘휘 저어서 마셨다. 그런데 이게 또 별미다. 면수와 조금 남아 있던 국물, 양념이 섞이자 멸치국수 비슷한 구수한 맛이 우러났다.
◇냉면보다 섬세하다, 인제
면수로 입을 헹구고 춘천을 떠나 동북 방향으로 65km가량 떨어진 인제 ‘남북면옥’(033-461-2219)으로 향했다. 현존하는 아주 오래된 막국수 집 중 하나다. 1950년대 중반 남북리에서 문 열었다가 소양강댐이 완공되며 남북리가 수몰되자 지금 자리로 옮겼다.
이 집을 비롯해 인제 막국수 집들은 순메밀로 뽑은 하얀 면발에 동치미 국물을 기본으로 한다. ‘순메밀 동치미물국수’를 주문하자 인제의 명소 자작나무 숲처럼 새하얀 면발에 오이채와 무절임, 참깨만 얹혀 나왔다. 양념장은 아예 없다. 양념장이 올라간 ‘순메밀 비빔국수’가 따로 있다. 동치미 국물은 투명한 플라스틱 주전자에 담겨 나왔다. 국물을 국수에 붓고 식초, 겨자, 설탕을 입맛대로 더해 먹는다.
막국수보단 평양냉면에 가까운 맛. 식당 주인은 “냉면과 비슷해 그런지 6·25 때 고향을 떠나 내려온 이북 어르신들이 자주 찾는다”고 했다.
◇까만 ‘토면’의 고장, 고성
미시령 터널을 나오니 눈앞에 동해가 펼쳐지고, 오른쪽으론 설악산 울산바위가 우뚝 서 있다. 백두대간을 중심으로 춘천·인제가 있는 강원도 영서(嶺西)와 강릉·속초·고성 등 영동(嶺東) 지역은 지형 차이만큼 막국수도 다르다. 영서가 속메밀만 사용해 국수가 흰 반면, 영동은 겉메밀까지 섞어 짙은 갈색이다.
겉메밀이 들어간 국수를 동치미 국물에 만 막국수는 고성에서 시작됐다고 알려졌다. 금강산 불교 사찰에서 고기 육수 대신 동치미 국물을 쓰면서 탄생했다고 전해진다. 고성 사람들은 자기네 막국수가 흙빛이라 하여 ‘토면(土麵)’이라 부른다.
토성면에 있는 ‘동루골막국수’(033-632-4328)는 고성 막국수의 전형을 보여준다. 둥그렇게 만 면발이 대접을 가득 채울 만큼 거대하다. 김가루와 양념장이 올라 있다. 얼음이 둥둥 뜬 동치미 국물을 국수 위에 붓자, 진한 들기름 향이 사방으로 퍼진다. 자작하게 비빈 막국수에 식탁에 놓인 식초·겨자·들기름·설탕을 입맛대로 더해 간을 맞춘다.
면발을 들어 올리자 구수한 메밀 향이 짙게 피어오른다. 들기름과 환상적으로 어울린다. 찰기가 있지만 이내 뚝뚝 끊긴다. 거뭇거뭇한 메밀 껍질이 이에 씹힌다. 까끌까끌하지만 불쾌하지 않고 오히려 식감을 돋운다.
동루골이 아는 사람만 찾는 ‘인싸 막국수 집’이라면, ‘백촌막국수’(033-632-5422)는 고성에 가면 누구나 찾는 전국구 맛집. 명태식해를 꾸미로 올리는 게 특징이다. 명태식해는 속초 ‘함흥냉면’에서 함경도 가자미식해를 명태로 대신해 개발해 퍼졌고, 막국수에까지 오르게 됐다.
◇ 속초로 역진출한 서울 막국수 집
지방에서 성공한 맛집이 서울로 입성하는 게 일반적인 루트다. 속초 ‘남경막국수’(033-633-1060)는 이를 거슬렀다. 서울에서 성공해 지방으로, 그것도 막국수 명가(名家)가 수두룩한 강원도 속초에서 결판 보겠다며 도전장을 던졌다.
긴 대기 줄을 보면 도전에 성공했음을 알 수 있다. 서울 유명 막국수 체인점에 실망한 임수호 대표가 강원도 진부 할머니 집에서 3년간 살며 배웠다. 주문이 들어오면 즉석에서 면을 뽑고 양념해 낸다. 다른 집보다 훨씬 굵은 면이 독특하다.
비빔 막국수는 다른 집들처럼 미리 만들어놓은 양념장을 국수에 얹어 내지 않는다. 주문이 들어오면 바로 만들어 비벼 낸다. 막국수에 김가루와 오이 정도만 올려 내지 않고 깻잎·참나물·상추 등 생채소를 잔뜩 올린다. 할머니가 내던 방식 그대로라는데, 샐러드에 익숙한 요즘 손님들이 선호할 만한 싱싱한 맛이다.
◇들기름 막국수의 탄생, 용인 고기리
막국수 면식 수행의 종착점은 강원도가 아닌 경기도 용인시 고기리다. 선풍적 인기를 끌고 있는 ‘들기름 막국수’를 개발한 ‘고기리막국수’(031-263-1107)가 있기 때문이다. 메밀 국수를 들기름, 참깨, 김가루, 간장에 비빈 들기름 막국수는 이곳 김윤정·유수창 대표 부부가 2012년 만들었다.
들기름 막국수를 개발한 건 100% 순메밀 국수의 맛과 향을 즐기며 더 맛있게 먹기 위해서였다. 이 집에선 모든 메뉴에 순메밀 국수를 쓴다. 들기름 막국수는 완전히 비벼져 나온다. 직원이 “젓가락으로 살살 집어 드시라”고 안내했다. 국수를 입에 넣자 메밀 풍미가 입안을 가득 채웠다. 국수를 버무린 들기름과 간장이 메밀 풍미를 살릴 뿐, 뒤덮어 가리지 않았다. 참깨와 김가루가 바삭하게 씹히며 경쾌한 식감을 더했다.
이 집 막국수는 면발이 유난히 동그랗고 단단하게 말려 나온다. 인스타그램 등 소셜네트워킹서비스(SNS)가 식당 홍보의 주요 수단으로 떠오르면서, 음식은 얼마나 예쁘게 사진 찍히는지가 맛만큼 중요해졌다. 김윤정 대표는 “동그랗고 예쁘게 말려 나오는 건 오로지 맛 때문”이라고 했다.
“국수에 수분이 남아 있으면 맛이 싱거워져요. 더 안 좋은 건 막국수를 낼 때마다 수분 함량이 달라지는 거예요. 그러면 우리가 의도한 양념장과 국수 비율이 깨지고, 손님이 드실 때마다 막국수 맛이 달라지거든요. 우리가 동그랗게 마는 건 그래야 수분을 최대한 짜낼 수 있기 때문이에요.”
맛있게 만들려다 보니 예뻐졌다는 설명. ‘형태는 기능을 따른다’는 모던 디자인의 가장 중요한 이념이 막국수에서 구현됐다. 그러고 보니 식초나 참기름, 설탕, 간장 등 막국수 집 테이블에서 흔히 보이는 양념도 없었다. 손님이 요청하면 가져다 준다. 보통 막국수 집에서는 손님이 알아서 양념하게 하는데, 이렇게 하면 먹을 때마다 맛이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물막국수 국물도 100% 사골 육수를 쓴다. 김칫국은 담그는 시기와 담근 지 얼마나 됐는지에 따라 맛 차이가 크기 때문이란다. 김 대표는 “동치미 막국수는 겨울철에만 한정 판매한다”고 했다.
서울로 돌아오며 ‘막국수란 무엇인가’를 떠올렸다. 거칠게 ‘마구’ 만들어서가 아닌, 메밀의 풍미를 최대한 만끽하도록 빠르게 ‘방금’ 만들어내는 국수, 그게 막국수였다.
들기름으로 지진 두부, 얼큰한 장칼국수… 별미도 잊지 마세요
면식수행 중 들른 강원도 겨울 맛집
닭갈비는 막국수만큼이나 춘천을 대표하는 음식. 요즘 트렌드는 고구마·떡·양배추 등과 함께 볶는 철판식이 아닌 숯불 구이다. 넓게 펼친 닭 허벅지 살을 석쇠에 얹어 숯불에 굽는다.
막국수 집 바로 옆에서 ‘샘밭닭갈비’(033-243-1712)를 운영하는 조성종 대표는 “숯불 닭갈비가 10여 년 전부터 유행했다”며 “허벅지 살만 사용해 손님들이 선호한다”고 했다. 매콤한 양념 닭갈비(1만2000원)와 담백한 허브 닭갈비(1만2000원) 두 종류가 있다. 닭갈비를 처음 팔았다는 춘천 명동 ‘원조숯불닭불고기집’(033-257-5326)은 숯불에 구워서 파김치와 상추에 싸 먹는다. 그러니 요즘 숯불식은 닭갈비 본래 모습으로 돌아간 셈이다.
강원도에는 막국수만큼 두부 잘 만드는 집이 많다. 인제에도 이름난 두부 집이 꽤 있다. ‘인제재래식순두부’(033-463-1858)가 그중 하나. 100% 인제산 콩만 쓴다고 주장하는데, 맛을 보면 진짜 같다. 식당 문을 열고 들어서자 구수한 들기름 냄새가 진동한다. 국물을 넉넉하게 두고 바글바글 끓여 먹는 두부전골(9000원)과 졸이듯 자박하게 끓이는 짜박두부(9000원)도 맛있지만 두부 자체의 맛을 즐기려면 들기름두부구이(9000원)가 낫다. 겉은 노릇노릇 바삭하고 속은 푸딩처럼 희고 보드랍다. 두부전골과 짜박두부는 2인분 이상만 판다.
고성, 속초 등 강원도 동해안 지역은 장칼국수가 맛있다. 속초 ‘왕박골식당’(033-632-5524)은 고추장을 듬뿍 풀어 넣은 국물에 칼국수와 애호박, 감자, 소라 등을 넣고 칼칼하게 매우면서도 구수하고 걸쭉한 장칼국수(8000원)를 제대로 맛볼 수 있는 식당이다.
꿩고기를 넣어 만든 ‘꿩물만두’와 ‘꿩만둣국’(각 9000원)도 맛있다. 꿩고기가 들어갔는지 모를 만큼 이질적인 맛이 없다.
[김성윤 음식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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