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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드]by 조선일보

못생겼다 문전'박대' 마세요… 이래봬도 맛은 '대박'

군산 박대

 

못생겼다 문전'박대' 마세요… 이래봬

판소리 다섯 마당 중 하나인 '수궁가(水宮歌)'에는 용왕(龍王)이 바다의 대신(大臣)을 차례로 호명하는 장면이 나온다. '승상(丞相) 거북, 승지(承旨) 도미, 판서(判書) 민어, 주서(注書) 오징어, 한림(翰林) 박대, 대사성(大司成) 도루묵, 방첨사(防僉使) 조개….' 여기서 5번째로 호명된 '한림'은 정9품 벼슬이다. 그런데도 정3품인 '대사성'보다 먼저 불렸다. 9품이면서도 3품을 눌렀던 바다 대신이 바로 박대다.


박대는 전북 군산에서 많이 잡힌다. 늦가을부터 초겨울이 제철이다. 먼저 눈에 띄는 것은 생김새다. 몸은 혀처럼 길게 늘어져 있고 눈과 입은 깨알만 한데 그마저도 한쪽에 몰려 있다. 혹자는 "워낙 못생겨서 문전박대를 당한다고 이름이 박대"라고 주장한다. 군산에서 20여 년째 생선 가공을 하고 있는 김영자(58)씨는 지난 11일 "한번 먹어 본 사람들은 박대를 '대박'이라고 한다"며 "생긴 건 이래 보여도 맛은 일품"이라고 말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달 군산을 방문했을 때 점심상에 오른 반찬도 박대였다.


군산 앞바다는 서해와 금강이 만나 고운 갯벌을 이뤄 박대가 살기 좋다. 펄 바닥에 사는 갯지렁이와 게 등은 박대가 즐겨 찾는 먹이다. 1970년대 초 군산 째보선창 인근에서 박대 유통이 시작된 것으로 알려졌다. 이곳은 충남 장항과 군산을 잇는 여객선이 정박해 유동 인구가 많았다. 한때는 100여 곳의 건어물 가게에서 박대를 팔았다. 최근엔 전문 가공 공장이 자리를 대신해 가고 있다.

못생겼다 문전'박대' 마세요… 이래봬

전북 군산의 명물인 박대는 11~12월이 제철이다. 하루 네 번 밀물과 썰물에 맞춰 해풍에 꾸둑꾸둑하게 말리면 윤기가 흐른다. 지난 11일 군산시 해망동 바닷가의 건조대에 박대가 가을 하늘을 물결 삼아 헤엄쳐 나가듯 누워있다. /김영근 기자

군산에선 박대를 반건조 상태로 말려 조리해 먹는다. 하루 네 번 밀물과 썰물에 맞춰 불어오는 해풍에 꾸둑꾸둑하게 말린 박대는 윤기가 흐른다. 날이 추워지는 11월부터 12월까지 자연 건조한 박대를 최상품으로 친다. 여운식(57) 임피 건어물 대표는 "햇볕과 해풍에 말린 박대는 기계에 말린 박대에 비해 더 쫄깃하고, 입에 감기는 맛이 더 난다"고 말했다.


박대는 버릴 것이 없다. 구이부터 탕, 찜, 조림 등 다양한 요리를 할 수 있다. 벗겨 낸 껍질로 묵을 쒀 먹기도 한다. 가장 대중적인 조리법은 구이다. 달궈진 프라이팬에 기름을 두르고 박대를 올려 노릇노릇하게 굽기만 하면 끝이다. 구워진 박대를 반으로 가르면 살과 뼈가 쉽게 발라진다. 잔가시가 없어 어린아이들이 먹기에 좋다. 고추장에 찍어 먹으면 매콤한 맛과 짭조름한 맛의 조합이 일품이다.


콜라겐 성분이 많이 포함된 껍질은 묵을 쒀서 먹는다. 박대 껍질에 물을 넣고 껍질이 녹아 없어질 때까지 끓인 다음 틀에 부어 굳혀 만든다. 제조법에 따라선 생강즙을 넣기도 한다. 고추·마늘·파 등을 섞어 만든 양념장을 묵 위에 살짝 얹어 먹는다. 탱글탱글한 식감이 혀를 사로잡는다. 흔들리는 모양이 벌벌 떠는 것 같다고 해서 '벌벌이묵'이라고 부른다.


무를 냄비에 깔고 박대를 얹은 다음 간장·양파·고추·대파·생강·마늘로 만든 양념장을 넣고 조려낸 박대 조림도 별미다. 비린내와 기름기가 없는 살은 쫀득쫀득하고 담백하며 부드럽다. 군산 지역에선 가마솥에 밥을 하면서 함께 박대를 쪄 먹기도 한다. 영양소도 풍부하다. 100g당 단백질 19.2%, 지방 0.7%로 고단백 저칼로리(100g당 85㎉) 식품이다. 회분 1.6㎎, 칼슘 15㎎, 인 265㎎, 철 0.3㎎도 함유하고 있다.

못생겼다 문전'박대' 마세요… 이래봬

같은 날 박대를 말리는 군산 상인들의 모습. /김영근 기자

군산 박대는 연간 300t가량 전국 각지로 판매된다. 해망동을 중심으로 판매점 65곳이 있다. 매장마다 하루 20㎏ 정도를 팔아 20여만원의 매출을 올린다고 한다. 상인 이모(48)씨는 "시집간 딸이 박대 맛을 못 잊어 친정을 자주 찾는다는 말이 생길 정도로 박대 맛은 일품"이라며 "외지로 나간 군산 출신 사람들이 명절에 특히 많이 찾는다"고 말했다.


군산시는 지난 2015년 정부·민간업체 등과 함께 30억원을 출자해 '군산 박대향토사업단'을 만들었다. 군산 특산품인 박대를 활용해 다양한 상품을 만들고 최신 장비로 가공해 식품 안전성을 높여 시장 공략에 나서기 위해서였다. 5개 업체가 참여해 만든 사업단은 첫해 34억5000만원의 매출을 올렸다. 지난해엔 52억7500만원의 매출을 올려 설립 2년 만에 153% 성장을 이뤘다.


사업단은 박대요리 경연대회를 정기적으로 열고 소비자에게 다가가고 있다. 최근엔 박대를 갈아 오븐에 구워 만든 '군산 박대 꾸이'라는 신상품도 내놨다. 성재경 군산 박대향토사업단 사무국장은 "내 집 찾아온 손님을 박대하면 벌(罰) 받고, 박대를 대접하면 복(福) 받는다는 말이 있다"며 "군산 시민들에게 박대는 복을 불러다 주는 소중한 생선"이라고 말했다. 강임준 군산시장은 "대기업이 빠져나가 군산 경제가 어렵지만 다행히 박대 매출은 꾸준히 늘고 있다"며 "박대 산업을 지속적으로 지원해 지역 경제를 활성화하고 고부가가치를 창출하는 데 힘을 보태겠다"고 말했다.


군산=김정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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