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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죽은 땅에…" 잘나가던 대전 중심가의 몰락

[발품리포트] 도청 떠나고 세종시에 치이고…영화를 잃은 원도심

자금부족으로 재생산업 난항…"대기업 투자유치 방안 마련해야"

"다 죽은 땅에…" 잘나가던 대전 중

KTX 대전역 앞에는 10년 넘은 낡은 건물들이 많다. /이지은 기자

"다 죽은 땅에…" 잘나가던 대전 중

한복거리, 한약거리, 인쇄거리가 들어찬 대전시 중앙동 상가. /이지은 기자

지난 2일 찾은 대전광역시 동구 중앙동. KTX(고속철도)역과 지하철 1호선 대전역을 끼고 있어 대로변엔 차와 행인이 많았다. 하지만 이면도로로 들어가자 전혀 딴판이었다. 대낮인데도 골목길 상가는 인적조차 찾기 힘들만큼 고요했다. ‘○○건강원’, ‘○○한복’ 등 상가 간판만 봐도 손님이 꼬일 만한 업종을 찾기 힘들었다. 다 쓰러져가는 모텔 건물도 곳곳에서 눈에 띄었다. 이곳에서 식당을 운영하는 A씨는 “입지나 접근성은 참 좋은데 장사가 잘 안된지 오래됐다”면서 “이제는 상권 전체가 슬럼가 비슷한 분위기로 전락해 안타깝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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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 중구 은행동 이면도로. 건물 1곳당 점포 두 세개씩은 공실이다. /이지은 기자

중앙동과 함께 과거 대전의 양대 상권이던 중구 은행동도 마찬가지다. 대로변 건물인데도 ‘임대 중’이란 종이를 써붙인 가게가 한 건물에 두 세개씩 눈에 들어왔다. 은행동의 편의점 주인은 “맞은편 1층 건물 점포는 방을 뺀 지 두 달이나 지났는데 아직도 비어있다”고 했다.


2000년대까지만 해도 대전역~충남도청에 이르는 중앙동과 은행동 상권은 충남도청을 낀 최대 번화가로 인근 지역 집값과 상가 임대료를 좌우하는 지역이었다. 하지만 도청이 2013년 충남 홍성군 내포신도시로 이전하고 서구 도안신도시와 세종시 개발까지 가속화되면서 옛 도심은 급속하게 쇠락의 길을 걸었다. 중앙동 A공인중개사사무소 관계자는 “대전 주택 시장과 상권은 모두 신도심(서구·유성구) 위주로 재편되다보니 구도심(중구·동구·대덕구)이 침체기를 맞은 것”이라고 말했다.

모든 개발 대세는 서쪽…소외받는 원도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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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의 최고 상권이던 중구 은행동 일대 뒷골목. 고정 수요를 잃은 후 빈 가게가 많아졌다. /이지은 기자

대전의 중심 상권은 이제 은행동과 중앙동에서 서구 둔산동으로 이동했다. 둔산동은 정부대전청사, 대전시청 등 공공기관이 가까워 고정 수요는 물론 유동인구 역시 풍부하다. 반면 은행동은 도청 이전 등으로 인해 그동안 탄탄했던 수요 기반을 잃었다.


실제 한국감정원에 따르면 올 2분기 원도심의 소규모 매장 공실률은 10.4%에 달한다. 대전 전체 평균(5.1%)의 배가 넘는다. 중대형 매장 공실률도 13.5%로 대전 평균(10.1%)을 웃돈다. 대전에 사는 대학생 이모(24)씨는 “친구들과 저녁 먹거나 술 약속을 잡으면 무조건 둔산동에서 만난다”며 “은행동 거리는 밤이면 어두컴컴하고 무섭기도 해서 젊은이들 발길이 끊겼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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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 원도심 상가 공실률 추이./ 자료=한국감정원

임대료가 비싼 것도 대전 원도심 공실률을 높인 원인으로 지목된다. 올 2분기 기준 구도심 상권 ㎡당 평균 임대료는 1만2600원이다. 은행동에서 옷가게를 운영하는 김모씨는 “원도심을 찾는 고객은 점점 줄어들고 월세도 비싸다보니 상인들이 하나둘씩 떠나고 있다”고 했다.


권리금도 사라지거나 대폭 낮아지는 추세다. 국토부에 따르면 대전의 ㎡당 평균 상가 권리금은 51만1000원으로 2015년 대비 6.07% 감소했다. 인천(59만원), 대구(66만8000원)가 각각 8.46%, 8.97% 상승하는 등 전국 대도시 상가 권리금이 2년 연속 상승한 것과는 정반대다. 이상혁 상가정보연구소 선임연구원은 “대전의 경우 구도심 상권 침체가 워낙 심각해 전체 권리금을 끌어내렸다”며 “대전처럼 원도심 몰락을 겪고 있는 광주(-7.09%)도 비슷하다”고 말했다.

주택 시장도 대전 동서쪽 양극화 심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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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아파트 청약 경쟁률 상위 5개 단지 중 3개가 대전 서구에 있다. /조선DB

동쪽의 원도심과 서쪽의 신도심간 격차는 주택 시장에서도 두드러진다. 각종 개발 호재가 몰린 대전 서쪽에 주택 수요가 몰리며 원도심은 인구가 오히려 빠져나가고 있다. 부동산정보업체 부동산114에 따르면 올해 전국 아파트 청약 경쟁률 상위 5개 단지 중 3개가 대전 서구에 있다. 반면 중구는 미분양 주택만 늘고 있다. 지난 6월 기준 대전시 미분양은 총 1035가구인데, 이 중 중구가 348가구로 가장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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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5~6월 대전지역 미분양 현황. /대전시

개별 단지를 살펴봐도 구도심에 위치한 단지일수록 미분양이 많다. 중구 용두동의 드림스테이는 214가구 중 200가구, 중구 오류동 서대전역코아루써밋은 154가구 중 84가구가 미분양됐다. 동구 판암동 판암역삼정그린코아1단지 1245가구 중 149가구가 빈 집으로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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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말 대비 6월 대전 주택매매가격지수 변동률. /KB국민은행

집값도 마찬가지다. 국민은행에 따르면 지난 6월 중구의 전년말 대비 주택가격지수 변동률은 0.34%로 대전시 평균(0.44%)보다 낮았다. 반면 신도시 개발 호재를 맞은 서구는 0.77%로 평균을 웃돌았다.

자금 부족으로 좌초하는 원도심 개발 사업

그나마 대전시가 추진하는 원도심 재생 사업도 줄줄이 난항을 겪고 있다. 막대한 개발 비용이 필요한데 재원이 마땅치 않은 탓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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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역세권 개발 프로젝트' 조감도. /대전시

대전시가 가장 기대를 걸었던 사업은 1조원 규모의 ‘대전역세권 개발 프로젝트’. 2009년 5월 대전역세권 촉진지구로 지정된 3개 구역 중 코레일이 86%를 소유한 중앙·소제동 일대 복합2구역(3만2444㎡)을 상업·업무·숙박·컨벤션 기능을 갖춘 복합 광역 생활권으로 개발하는 사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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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역세권재정비촉진사업 계획도. 1조원 규모 복합2구역 개발은 민자유치에 두 차례 실패했다. /대전시

하지만 이 프로젝트는 2008년 민자 유치에 실패했고 2015~2016년 재유치 기간에도 응모한 기업이 한 군데도 없었다. 대전시는 오는 9월 다시 공모할 방침이지만 성공 가능성은 낮은 상황이다. 은행동 B공인중개사사무소 관계자는 “다 죽은 땅에 어떤 기업이 투자하겠다고 나설지 의문”이라며 “사업이 또 무산되면 지역 주민들에게 패배감만 심어주는 게 아닐지 걱정”이라고 말했다.


대전시는 지난 7월 ‘베이스볼 드림파크’ 신축 계획도 공개했다. 2024년 목표로 중구 부사동의 한밭종합운동장에 2만2000석 규모 새 야구장을 짓는 사업이다. 지역 문화 발전과 원도심 활성화 두 마리 토끼를 잡겠다는 목표인데 사업비(1360억원) 조달 여부는 아직 불투명하다.


전문가들은 구도심 개발 사업은 15~20년에 걸친 ‘장기 프로젝트’로 추진해야 한다고 말한다. 지자체가 임기 내 해결 의무감으로 사업 계획을 자주 수정하거나 서두르면 안된다는 것이다. 기업체와의 적극적인 민관협력도 필수적이다.


고종완 한국자산관리연구원장은 “대기업 투자가 절실한만큼 대전시가 기업 수익성을 일정부분 보장하는 사업안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며 “다만 대전은 이근 신도시가 원도심 수요를 블랙홀처럼 빨아들이고 있어 개발 성공은 낙관하기가 쉽지 않다”고 했다.


이지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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