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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프]by 조선일보

"다른 거 없슈~ 노래하는 농부, 그게 꿈이여유~"

'8년차 농부' 16세 한태웅군, 한국농어촌공사 홍보대사 위촉… 직접 키운 쌀 청와대 전달하기도

"매일 5시에 일어나 소 먹이 주고 논밭에 물까지 대고 학교 가죠"


'음메~.' 염소가 쉴 새 없이 울어대는 한적한 시골에서 사춘기 소년이 말했다. "요즘 비가 안 오는 게 인생 최대 고민이유." 소년 농부 한태웅(16)군은 "두 달 전 심은 들깨가 전부 타 죽었슈"라며 울상을 지었다. "물도 못 퍼다주는 비탈밭이라 엊그제 갈아엎고 모두 다시 심었지 뭐예유. 올해 밭농사 포기할까도 했는디, 농사꾼이 어떻게 땅을 놀리겄슈."


태웅군은 어엿한 8년 차 농부다. 할아버지를 돕던 꼬마가 모내기서부터 수확까지 어느새 혼자 척척 한다. 구수한 충청도 말씨로 느릿느릿 말하며 소처럼 바지런히 모종을 심고, 구슬땀 흘리며 농번기를 지낸다.


다큐멘터리·예능 프로그램에 연이어 출연한 그는 작년 12월 청와대에서 열린 '농업인 초청 간담회'에 농업인 자격으로 참석, 대통령에게 직접 농사지은 '태웅미(米)' 5㎏을 전달하더니 지난달엔 한국농어촌공사 홍보대사도 됐다. 지난주 경기도 안성에서 만난 태웅군이 어른처럼 말했다. "지는 다른 거 없시유. 자나 깨나 농사 생각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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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안성에서 만난 소년 농부 한태웅군이 농사일을 할 때 입는 셔츠와 몸뻬, 장화를 신고 600평 논둑에 앉아 있다. 태웅군은 “할아버지께서 말씀해 주신 ‘진인사대천명’ 심정으로 일을 한다”고 했다. /조유미 기자

꼬마 때부터 논밭이 놀이터였다. 이앙기가 들어갈 수 없는 구석 자리에 모를 한두 개씩 심고 나왔던 게 시작이었다. "훌쩍 자라 가을에 벼가 되니께 뿌듯했슈. 낱알은 쌀 되고, 추수 뒤 볏짚은 소 먹이 되지 않어유? 농사는 많은 생명에게 도움 주는 귀한 일이라 느꼈쥬."


중학교에 들어가자 아빠, 엄마에게 '농부가 되겠다' 했지만, 곧 격렬한 반대에 부딪혔다. "조부모께서 고생하시는 모습을 보셨기 때문"이라고 했다. 농고가 멀어 가까운 안성두원공고에 진학한 후에도 변함없이 부지런한 모습을 보여주자 설득이 됐다. "등교 시간은 9시지만서두 새벽 5시에 일어나 소 먹이 주고, 논밭에 물도 대유. 6시 반쯤 일어나믄 늦잠 잔 거유." 작년엔 부모님이 농업용 트랙터도 마련해 줬다. "농번기 땐 수업 내내 졸아요. '스마트 팜' 배우러 농대에 가고 싶은디, 성적 때문에 고민이쥬."


시행착오도 많았다. 처음엔 '많은 게 좋은 거'란 생각으로 논에 과하게 비료를 줬다 낭패를 봤다. 알맹이가 지나치게 맺히면 바람에 금방 쓰러진다는 것. "작년엔 다 키운 벼 절반을 태풍에 잃었어유. 농기계가 비싸 추수철 탈곡기인 콤바인 대여를 하려다 때를 놓치기 쉬운데, 정부의 농촌 지원이 절실하다는 걸 깨달았쥬."


태웅군은 "애가 무슨 농사냐고 눈총도 받았는데, 요즘은 동네 어르신들이 소작도 준다"고 했다. 덕분에 3500평이던 논밭이 어느새 훌쩍 늘었다. 4000평 논을 관리하고, 3000평 밭엔 고추·들깨와 소 사료 작물을 심는다. 작년부터는 할아버지 도움 없이 혼자 논농사를 시작했다. 첫 수확은 쌀 7t 정도다.


'태웅 농장'엔 소 17마리, 염소 50마리와 닭 40마리도 있다. 마을에 또래 친구가 없어 소와 닭을 벗 삼아 놀던 태웅군은 작년 조류인플루엔자(AI) 예방 차원에서 키우던 닭 '대박이'와 300마리를 하늘로 보내고는 펑펑 울었다고 했다.


대농(大農)이 되고 싶다는 태웅군에겐 한 가지 꿈이 더 있다. 노동요를 부르는 '농촌 가수'가 되는 것. '흙에 살리라' 한 소절을 구성지게 뽑아낸 그는 "농번기로 바쁜 농업인들에게 노래로 힘을 주고 싶다"고 했다. "가끔 몸살도 앓고 힘도 들지만서두 잡초 깎고, 여물 주고 하루 제 할 일 허믄 그렇게 개운할 수 없시유. 풍년이유? 가물든, 홍수든 제 할 일 다하고 풍년은 하늘에 맡기는 거지유."


[안성=조유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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