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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나없이 모르는 짜장면 출생의 비밀

[아무튼, 주말]

다시 찾아온 블랙데이

짜장면의 오해와 진실

이신영 영상미디어 기자

하루에 600만 그릇이 팔린다는 국민 음식. 짜장면은 외래 음식으로는 유일하게 한국의 100대 문화 상징에 포함되며, 정부가 물가를 관리하는 품목이기도 하다. 짜장면의 기원을 두고 여러 설이 있지만 1880년대 개항기 인천 부두에서 일하던 중국 산둥 출신 노동자들이 끼니를 때우던 값싼 국수 요리에서 비롯됐다는 게 대표적이다.


14일은 짜장면 소비가 많은 날 중 하나인 ‘블랙데이’. 짜장면 출생의 통념을 깨는 ‘한국 중화요리의 탄생’(이데아)이 최근 출간됐다. 화교 3세대로 인천화교협회 부회장과 인천화교학교 부이사장인 저자 주희풍씨는 그동안 기억과 추정에 의존해 온 짜장면 기원설을 과거 기록을 토대로 조목조목 반박한다.


주씨가 오류라고 지적하는 것은 크게 세 가지. 첫째는 짜장면의 탄생 지역이고, 둘째는 탄생 시기, 셋째는 가격이다. 주씨는 “짜장면은 1912년 즈음 중국 베이징에서 탄생했다”고 주장한다. 그는 본지 전화 인터뷰에서 “짜장면의 베이징 탄생설은 중국에서는 기정 사실로, 베이징의 다관(茶館)에서 처음 만들어졌다는 기록이 수두룩하다”고 했다. 다관은 차와 함께 요리를 파는 고급 식당이다.


“중국인민대회당 수석 요리사였던 우정거는 ‘짜장면을 먹고자 하거든 자오원(竈溫)으로 가라’고 요리책에 썼어요. 자오원은 1912년 건국한 민국(中華民國) 초에 개업한 식당이고, 손님들에게 자주 짜장면을 내놨다고 합니다. 중국 근현대 문학 거장 루쉰이 쓴 소설 ‘분월(奔月)’과 저명 소설가·극작가 라오서의 연극 ‘다관’에도 짜장면이 등장하죠. 그 밖에도 여러 문학 작품에 짜장면이 나오는데, 배경은 모두 베이징 다관입니다. 짜장면에서 빼놓을 수 없는 재료 ‘톈몐장(甛麵醬)’은 베이징 특산물이죠.” 톈몐장은 베이징을 대표하는 요리 카오야(烤鴨·오리구이)를 찍어 먹는 장이기도 하다.

이신영 영상미디어 기자

짜장면은 지금처럼 흔히 먹을 수 있는 저렴한 대중 음식이 아닌 값비싼 고급 국수 요리였다는 주장이다. “특히 한국에서는 잔치 때나 겨우 먹을 수 있는 음식이었습니다. 이것을 한국에 진출한 중국인 부두 노동자가 간편하게 먹었다는 건, 지금 잣대로 과거를 재는 거죠.” 서울시정개발연구원이 발행한 ‘서울연구포커스’(2004년)에 따르면, 1960년대 시내버스 요금이 8원(1965년)일 때 짜장면 한 그릇은 50원(1968년)이었다.


그렇다면 개항기 중국인 노동자들은 뭘로 끼니를 때웠을까. 저자에 따르면 호떡의 일종인 ‘강터우(槓頭)’였다. “강터우는 베어 물기 힘들 정도로 딱딱하게 구운 데다, 소가 들어 있지 않아 맛이 없었어요. 워낙 딱딱해서 돌머리에 빗대기도 했는데, 화교 학교 선생님들이 꿀밤을 날리며 ‘이 강터우 같은 놈아!’ 하기 일쑤였죠(웃음). 짐꾼 우두머리라는 뜻도 있어요. 우두머리가 짐꾼들에게 나눠준다고 해서 유래했다는 설도 있고, 나만 맞고 남들은 틀렸다고 따지기 좋아하는 사람을 일컫는 말이기도 합니다. 짐꾼 우두머리는 성격이 딱 강터우 같았다는 거예요.”


짜장면이 한국화된 건 1949년 중화인민공화국 수립과 6·25전쟁으로 양국 외교가 단절되면서부터다. 톈몐장이 중국 본토에서 들어오기 어려워진 데다, 1948년 화교 왕송산씨가 톈몐장에 캐러멜을 첨가해 개발한 춘장이 한국인 입맛에 더 잘 맞아 아예 톈몐장을 대체한 것이다.

이건송 영상미디어 기자

짜장면 먹을래, 짬뽕 먹을래. 이 질문에 사람들은 종종 고뇌한다. 짜장면의 ‘영원한 라이벌’ 짬뽕은 한중일 3국 합작품이다. 주씨는 이것을 “일본 이름을 가진 한국 입맛의 중국 면 요리”로 정의한다. 일본 나가사키에서 중국 화교들이 처음 만든 ‘나가사키 짬뽕’이 기원이다. 나가사키 짬뽕은 돼지고기와 채소가 주재료이고, 고춧가루가 들어가지 않아 국물이 맵지 않고 뽀얗다.


한국에 전해진 짬뽕이 빨갛게 바뀐 것은 1960년대 후반. 주씨는 짬뽕이 얼큰해진 배경으로 육개장에서 영감을 받았다는 설과 손님들이 우동과 짜장면 등에 고춧가루를 뿌려 먹는 걸 보고 아이디어를 얻었다는 설, 손님들이 고춧가루를 넣어 만들어달라고 주문했다는 설을 소개했다. 그는 “1960년대 후반에는 떡볶이도 마찬가지로 빨갛게 됐다”며 “고춧가루를 대량생산하기 시작하던 시기와 맞물린다”고 했다. 여기에 홍합·바지락·갑오징어 등 해산물이 다양하게 더해지면서 한국형 짬뽕이 완성됐다. ‘웃기는 짬뽕’이라는 말도 함께.

주희풍 인천화교협회 부회장이 펴낸 '한국 중화요리의 탄생'./이데아

[김성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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