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모든 걸 아내에게"… 관람객 울린 이 남자의 순정
[베르나르 뷔페展] 관람객 1000명이 뽑은 베스트 10
화가는 유언마저 그림으로 남겼다. 탁상 램프와 푸른 꽃, 그리고 흰 종이. '1963년 4월 15일, 이것은 내 유언장이다. 모든 것을 아내 아나벨 뷔페에게 남긴다.'
생애 단 한 곳을 비춘 불꽃, 화가의 사랑이 관객을 뒤흔들었다. 프랑스 천재 화가 베르나르 뷔페(1928~1999)의 국내 첫 회고전을 기념해 관람객 1000명을 설문한 결과, 전시작 92점 중 압도적 선택(26.7%)은 '유언장 정물화'(1963)로 향했다. 전시장 붉은 벽면에 걸린 채 이 유화는 가장 차분한 열애를 보여주고 있다. 특히 20대의 지지가 뜨거웠다. 관람객 이예지(20)씨는 "짧은 유언에서 작가의 마음 전부가 읽힌다"고 했다. 그림 속 유언장에 뷔페의 실제 지문도 묻어 있다.
뷔페는 소설가이자 훗날 그의 영원한 뮤즈가 된 아나벨을 1958년 만나 그해 12월 결혼했고, 이후 아내의 초상을 여럿 그린다. 2위(17.5%)는 초상화 '이브닝드레스를 입은 아나벨'(1960)이었다. 뷔페가 죽고 아나벨은 회고했다. "그가 깊이를 알 수 없는 빈 곳으로 떠났을 때 사람들은 말했다. 울어서는 안 된다고. 그는 불멸의 존재라 그의 그림이 나를 돌볼 것이라고." 관람객 신지혜(30)씨는 "사람마저 정물화처럼 표현하던 뷔페였으나 사랑하는 이에게는 자신이 아는 가장 따뜻한 색을 사용한 것 같다"고 말했다.
풍경화에 능했던 화가답게 '브르타뉴의 폭풍'(13.9%)과 '이탈리아의 추억, 밀라노 대성당'(10.7%)이 나란히 3~4위를 차지했다. 5위 '죽음10'(8.8%)은 말년에 파킨슨병으로 죽음을 예감한 뷔페가 작업한 '죽음' 시리즈로 해골(죽음)의 가슴팍에 붉은 심장(삶)을 그려넣음으로써 가까스로 희망을 붙들고 있다. 광대를 통해 인간의 이중성을 드러내곤 했던 뷔페의 대작 '음악광대들―가수'(6.9%)가 6위, 7~9위는 인물화 '와인 한 잔 그리고 여인'(5.4%), '접시 위 계란 그리고 남자'(4.8%), '빨간 머리'(3.1%)가 자리했다. 10위는 문학 작품을 회화로 옮긴 '오디세이, 율리시즈호'(2.2%)였다. 장르 및 주제별로 고른 선택을 받은 것이다. 서울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 9월 15일까지.
[정상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