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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나라 또 뺏길순 없어, 죽어라 인천바다 달렸다"

[6·25 70년, 아직도 아픈 상처] [3] 인천상륙작전 현장 찾은 노병들


1950년 9월 15일, 해병대 제1연대 소속 허영철 상등병과 권영수 일등병은 인천 앞바다 '레드 비치(Red Beach)'에 상륙했다. 6·25전쟁의 전세를 뒤바꾼 인천상륙작전이 펼쳐진 한복판이었다. "상륙함 해치가 열리자마자 무작정 뛰어나갔다. 바로 해변인 줄 알았는데, 바닷물이 가슴까지 올라오는데 눈앞이 캄캄했다." "차이나타운 쪽으로 돌격하는데, 온 인천 시가지가 불바다였다. 여기저기서 포탄이 쏟아지고." 22일 인천 월미도 상륙 현장을 찾은 노병(老兵)들은 당시를 회상하며 눈가가 붉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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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상륙작전에 참여했던 권영수(왼쪽부터) 해병2기 동기회장, 최영섭 예비역 해군 대령, 허영철 인천상륙작전 참전용사회장. /남강호 기자

인천상륙작전에서 활약했던 최영섭(92) 예비역 해군 대령과 해병 출신 허영철(90) 인천상륙작전 참전용사회 회장, 권영수(90) 해병 2기 동기회장은 이날 70년 전 작전 현장에서 만났다. 노병들은 인천 중구 만석동의 한 공장 옆에 선 표지석과 전승비를 어루만지며 "이제 전우들은 다 떠나고 없다"고 했다. 70년 전 20대 청년이었던 이들은 "총탄이 빗발치는 한가운데 서니 죽음이 정말 두려웠다"면서도 "36년간 일제에 빼앗겼던 나라를 5년 만에 또 넘겨줄 수는 없었다"고 했다. 노병들은 "죽어도 내 나라, 내 조국의 군복을 입고 죽겠다는 생각으로 싸웠다"고 했다.


6·25 때 참전했던 20대 청년들은 구순(九旬) 노인이 됐다. 70년 전 해병대 1연대 소속 상등병이었던 허영철(90)씨와 일등병이었던 권영수(90)씨는 22일 찾은 인천 동구 만석동의 한 공장 옆 갯벌가에서 70년 전을 떠올렸다. 이곳은 북한군에 한없이 밀리던 국군과 연합군이 전세를 뒤집기 위해 승부수를 던진 인천상륙작전 당시 상륙 지점이다. 공장 울타리 귀퉁이에 설치된 표지석과 전승비가 아니었다면, 이곳이 70년 전 격전의 현장이었다는 사실을 알아차리기 어려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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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0년 9월 15일 더글러스 맥아더(의자에 앉은 이) 당시 유엔군사령관이 USS매킨리호에서 인천상륙작전 상황을 지켜보고 있다. /미 육군

허·권씨는 1950년 9월 15일 인천에 상륙한 뒤 경인(京仁) 가도를 따라 동진(東進)하며 공산군을 격멸했다. 9월 28일 서울을 수복하고 중앙청에 태극기를 다시 게양했다. 권씨는 "당시 수도 서울을 되찾는다니, 사기는 정말 하늘을 찌를 듯했다"고 했다. 그러자 허씨는 "9월 21~23일 연희 고지(현 서울 서대문구 연희동 일대 야산) 전투 때 전우들을 정말 많이 잃었다"며 "원수를 갚겠다는 생각으로 더 열심히 싸웠다"고 했다.


최영섭(92) 예비역 해군 대령은 당시 한국 해군 기함(旗艦)이었던 백두산함 갑판 사관(소위)이었다. 그는 제1차 인천상륙작전 당시엔 북한 공산군을 눈속임하기 위한 장사상륙작전에 참여했다. 1951년 2월 제2차 인천상륙작전에서는 본전투에서 활약했다. 당시는 중공군 개입으로 서울을 다시 내준 뒤 평택-안성-제천-삼척 등 북위 37도선까지 후퇴를 거듭한 상황이었다. 최 대령은 적 진지에 포격을 퍼붓다가 총상을 입었지만 상륙을 강행했고 공산군 전차와 야포를 노획했다. 당시 유엔군의 인천 탈환은 공산군 남하를 저지하는 데 기여했다.


이날 월미도에선 바다 건너 3㎞ 거리 영종도의 고층 아파트 단지가 또렷하게 보였다. 권영수씨는 마천루들을 가리키며 "70년 전에야 허허벌판이었으니 그렇다고 쳐도, 세계 10대 경제 대국에서 다시 전쟁이 나면 어떻게 되겠느냐"고 했다. 허영철씨는 "전쟁은 참으로 비참한 것"이라며 "6·25의 비극과 상처는 다 우리가 안고 가겠다"고 했다. 최영섭 예비역 대령은 "국군 20만명, 미군 5만5000명, 유엔군 1만명이 흘린 피가 대한민국의 땅과 하늘, 바다에 스며 있다. 결코 다시 빼앗기면 안 된다"고 했다.

인천상륙작전

1950년 9월 15일 더글러스 맥아더 장군이 이끄는 유엔군이 인천에 상륙해 6·25전쟁의 전세를 뒤바꾼 군사 작전이다. 낙동강 전선까지 국군을 몰아붙였던 북한군은 이 작전으로 배후를 찔렸고, 국군과 유엔군은 기세를 몰아 북한군을 압록강 인근까지 밀어냈다.

인천 월미도=원선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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