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 50에 홀로 美구글 본사로… 그녀가 말하는 구글러로 살아남는법
[김성민의 실밸 레이더]
정김경숙 구글 커뮤니케이션 디렉터 인터뷰
정김경숙 구글커뮤니케이션 디렉터. /정김경숙 디렉터 제공 |
세계 각국의 구글 법인과 본사의 중간다리 역할을 하고, 구글 본사가 있는 미 실리콘밸리에 나와 있는 독일·프랑스·일본·한국 등 해외 언론 특파원과의 소통 업무 등을 한다. 구글의 개발자와 제품의 뒷이야기를 발굴하는 역할도 한다. 지난달 미 실리콘밸리 마운틴뷰 구글 본사에서 만난 정김경숙 디렉터는 “50대여도 넘치는 체력이 나의 무기”라고 했다. 그는 최근 자신의 인생과 도전기를 바탕으로 한 책을 냈다. 제목이 ‘계속 가봅시다 남는게 체력인데’다. 정김경숙 디렉터는 “긴호흡의 중요성을 이야기하고 싶었다”고 했다.
정김경숙 구글 커뮤니케이션 디렉터. /김성민 기자 |
◇국내에서 이룬 것 내려놓고 미국으로
그는 구글코리아에서 12년간 몸을 담았다. 커뮤니케이션 담당 전무였다. 2019년 6월 구글의 전 세계 커뮤니케이션 담당자가 1년에 한번 모이는 행사에서 정김경숙 디렉터는 구글 부사장에게 “미국이 아닌 해외 특파원을 담당하고, 해외 각 구글법인과 본사를 연결하는 역할을 신설하자”고 제안했다. 얼마후 구글은 관련 직책 채용 공고를 냈다. “원래 내 직급(디렉터)보다 낮은 자리였지만 관심을 표했죠. 본사에선 해당 직책의 직급을 올려줬고 결국 전 샌프란시스코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습니다.”
50살에 가족들과 생이별을 하고 홀로 미국 생활을 시작하는 건 쉽지 않았다. 그는 “주변에선 굳이 나이 50에, 홀로 해외 생활을 해야되느냐고 물었다”며 “하지만 은퇴하기 전에 해보고 싶은 거, 본사에서 일해보는 것을 하겠다는 결심으로 나갔다”고 했다. 그는 현재 미국 본사에서 일한지 3년이 됐다.
사실 그는 지독한 내성적 성격이었다. 연세대 독문과 86학번인 그는 졸업 후 이랜드 기획실에서 1년간 근무하다가 남편과 함께 유학을 떠났다. 자신을 바꾸고 싶었고, 유학이 좋은 기회라 여겨졌다. 남편과 떨어져 혼자 네브래스카대 링컨캠퍼스 경영학 석사(MBA) 과정에 입학했고, 기숙사에 있는 모든 사람을 만날 것, 매 식사를 다른 사람과 함께 할 것, 모든 수업시간에 질문이나 의견을 낼 것, 운동할 것을 실천사항으로 삼았다. 그는 “이를 1년하니 성격이 적극적으로 바뀌었다”고 했다.
그는 국내로 돌아와 스마트폰 회사 모토로라와 제약회사 릴리 한국 법인에서 일했고 2007년 구글코리아에 입사했다. 중간중간 필요한 지식을 채우기 위해 연세대 언론홍보대학원, 경희대 e비즈니스 석사 과정, 서울대 행정대학원 등 5개의 대학원을 거쳤다.
정김경숙 구글 커뮤니케이션 디렉터. /정김경숙 디렉터 제공 |
◇열정적으로 일하고 신나게 노는 구글 문화
구글의 근무 문화는 어떨까. 그는 “구글엔 일을 안하면 자기만족이 안 되는 사람, 자기 일을 찾아서 하는 사람들만 있다”고 했다. 일할 때도 쉴 때도 열정적이라는 것이다. 그의 책상 앞엔 ‘이런 건 어때요’라는 문구가 붙어있다. 항상 주도적으로 제안하는 그에게 구글코리아 동료들이 붙여준 별명이다. “구글러들의 특징은 똑똑하면서 성숙한 것이에요. 누가봐도 천재인데 잘난척하는 사람이 별로 없지요. 그 안에서 살아남는 방법요? ‘내가 잘하는 것에 더욱 집중하자’는 것입니다.”
그는 평생을 워킹맘으로 살고 있다. “양가 부모님께 신세를 많이 졌다”고 했다. 그는 “워킹맘으로 가장 중요한 것은 아이를 일하는 엄마의 아이로 키워야 하는 것”이라고 했다. 아이에게 스스로 가방을 싸고 숙제를 할 수 있도록 책임감을 강조해야 하고, 쉬는날은 아이에게 100% 집중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인권에도 관심이 많다. 30살 때 자신 안의 반쪽인 엄마에 대한 존중감을 표현하기 위해 이름 앞에 어머니 성을 붙였다고도 했다.
그는 직장 생활에서 성공하기 위해서 성실성과 체력을 강조한다. “성실성과 창의성이 배치되진 않아요. 체력을 바탕으로 항상 사람을 만나고 이야기하고 듣고, 느끼는 성실함에서 아이디어가 나옵니다. 아무 것도 없는데 새로운 것이 나오진 않아요.”
[실리콘밸리=김성민 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