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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한장 얻기 위해… 발이 푹푹 빠지는 갯벌에서 3km를 뛰었다

[아무튼, 주말] 고창 만돌갯벌 김 양식장 체험


물 빠진 갯벌을 달리는 경운기가 심하게 요동쳤다. 뱃멀미가 아니라 ‘경운기 멀미’를 할 지경이었다. 방풍·방한코트에 다운재킷·스웨터·발열 내의 2장을 껴입고 핫팩까지 찼지만, 이를 비웃듯 바닷바람이 칼날처럼 파고들었다. 경운기가 갯벌을 덜컹덜컹 2㎞쯤 달렸을까, 갯벌에 가지런히 줄 맞춰 꽂힌 기다란 막대 수천 개가 보였다. 경운기를 몰던 김진근(46)씨가 “저기가 우리 마을 김 양식장”이라고 했다.


겨울에 짓는 김 농사


동지(冬至)를 하루 앞둔 지난 20일은 전북 고창 심원면 만돌마을 김 수확날이었다. 마을 앞 만돌갯벌은 2010년 람사르 갯벌 습지로 지정된 청정 해역. 여기에 주민들이 가꾸는 250ha 규모의 김 양식장이 있다. 만돌마을 이장인 김진근씨는 “김 농사는 겨울에 본격적으로 이뤄진다”고 했다.


“10월 풍년 기원제를 올린 뒤 인공 배양한 김 포자(胞子)가 든 굴 껍데기를 그물망에 매달아요. 열흘 정도 지나면 붉은색 포자가 엉겨 붙어요. 한 달 좀 지나면 머리카락처럼 가느다란 김이 김발(그물망)에 가득 자라있지요. 12월 초 첫 채취를 하고, 이후로 20~25일마다 채취합니다. 오늘은 올해 두 번째 채취입니다. 초물(맏물) 김은 향이 좋고, 두물·세물 김은 연하고 맛있고, 네물·다섯물 김은 질겨서 김밥용 김이나 조미 김으로 만듭니다. 3월까지 김 농사를 짓지요. 날이 따뜻해지면 김이 모두 죽어버리죠.”


만돌마을처럼 기둥에 묶어서 하는 김 양식 방식을 ‘지주식’이라고 한다. 국내 최대 김 생산지인 전남 완도 등 남해안 지역에서는 더 현대적인 ‘부유식’이다. 깊은 바다에 구조물을 띄우고 거기에 김발을 매다는 부유식은 김이 24시간 바닷물에 잠겨 있기 때문에 더 빨리 자라고 생산량도 많다. 식감도 부드럽다.


지주식은 하루 두 차례 썰물 때마다 김이 성장하지 못해 더디게 자라고, 자연 생산성이 떨어진다. 김씨는 “지주식은 나름대로 장점이 있다”고 했다. “천천히 더 오래 자라는 데다 햇볕을 많이 쬐기 때문인지 맛과 향이 더 강해요. 오독오독한 식감도 있고요. 부유식 양식장에서는 김발에 붙은 이물질이나 기타 해조류를 제거하기 위해 유기산을 사용하지만, 지주식은 햇볕을 쬐면서 자연스럽게 제거되기 때문에 유기산을 사용할 필요가 없죠.”


역시 ‘삽질’이 가장 힘들어


만돌마을에서 김 채취는 품앗이로 이뤄진다. 이날은 김진근씨네 김을 채취하는 날로, 4가구에서 7명이 나왔다. 김씨가 경운기 뒤에 실어온 김 채취기를 내려 경운기 앞에 부착했다. 품앗이 나온 이웃 둘이 채취기가 걸리지 않도록 밧줄을 들어올리자, 김씨가 경운기를 운전해 채취기가 김발 아래 들어가게 했다. 시동을 걸자 채취기 칼날이 사선으로 돌아가며 김발 아래로 늘어진 김을 잘라냈다.


바다에 있다 뿐이지 김 양식장은 밭이나 마찬가지였다. 기둥을 줄지어 꽂은 열이 밭의 ‘이랑’이라면 김발은 ‘고랑’이다. 그물을 격자로 엮은 폭 2m 김발을 밧줄로 좌우 기둥에 고정한다.


물이 빠졌다고 해도 갯벌은 발이 푹푹 빠질 정도로 물렀다. 경운기가 자주 좌우로 흔들리며 경로를 이탈했다. 그때마다 한 사람이 경운기 한쪽에 매달린 줄을 힘껏 잡아당겨 경운기가 제 길을 가도록 도와야 했다.


나머지 사람들은 경운기가 지나가자마자 김발을 기둥에 묶은 밧줄을 풀어 다시 매줘야 했다. 쓰레기나 이물질도 제거했다. 이 작업을 거의 뛰어다니다시피 했다. 빠른 속도로 밧줄을 풀었다가 다시 묶어야 하는데, 그것도 파도나 밀물·썰물에 밧줄이 풀리지 않을 만큼 견고하면서도 당기면 쉽게 풀 수 있도록 매듭 묶기가 쉽지 않았다. 계속 버벅거리며 작업을 지체하고 있으니 짜증이 났는지 주민 하나가 “하지 말고 옆으로 비키라!”고 했다.


김발 한 줄의 길이가 120m인데, 이날 24줄을 작업했으니 2.9㎞ 거의 3㎞를 뛰어다닌 셈이다. 오전 작업을 마치고 비지땀 흘리며 헉헉대고 있으니, 김진근씨가 경운기 시동을 끄고 다가왔다. “힘들죠? 김 채취 나오면 하루 1만보는 우습죠(웃음).”


이걸로 끝인가 했더니, 가장 고된 일이 기다렸다. 어느 작업장이건 가장 힘든 건 ‘삽질’. 김 양식장도 예외가 아니었다. 채취한 김을 포대에 담는 삽질 작업이 기다렸다. 철근을 동그랗게 구부려 만든, 커다란 뜰채처럼 생긴 삽으로 채취기에 담긴 김을 퍼서 포대에 담았다. ‘김이 무거워 봐야 얼마나 무겁겠나’ 했는데, 허리가 휘청할 정도였다. 주민들이 “아무나 삽질 못 한다”며 웃었다. “물과 섞인 김이라 엄청 무거워. 한 번 풀 때 3~4kg은 될걸?”


그렇게 퍼 담은 포대 하나가 40kg쯤 된다는데, 그걸 둘이서 하나씩 들어서 트랙터에 실어야 했다. 총 992포대를 트랙터에 실어서 마을 김 가공 공장으로 보냈다. 다리가 후들거리고 허리가 뻐근했다. 앞으로 식탁에 놓인 김을 함부로 먹지 못할 듯하다.


윤기 자르르·구멍 없어야 좋은 김


김 채취를 마치고 김진근씨 집으로 갔다. 김씨의 아버지 김덕만(75)씨는 만돌마을에서 가장 일찍 김 양식을 한 이 중 하나다. 그는 “1980년대까지만 해도 김이 얼마나 귀했는지 모른다”고 했다. “채취하고, 세척하고, 분쇄하고, 모양 잡는 작업까지 전부 손으로 했으니까. 크기도 지금의 4분의 3 정도로 작았고. 완도 등 남해에서 대량으로 생산하기 전이니까. 비싸서 1톳(100장)씩 사 먹지 못해 10장씩 팔았지.”


우리나라 어촌 공동체를 연구하는 사회학자인 김준 광주전남연구원 책임연구위원은 “과거 김은 명절에 세찬(歲饌)으로 겨우 밥상에서 구경할 수 있었다”고 했다. “김 한 장을 나누는 것도 격식이 있었어요. 어머니가 할머니는 4등분, 아버지는 6등분, 그리고 우리는 수저를 덮을 정도로 작게 찢어서 나눠 주셨어요. 지주식으로 양식한 만돌마을 김은 그 옛날 먹던 김 맛에 가깝죠.”


요즘 김은 한국 경제를 먹여 살려온 반도체에 빗대 ‘바다의 반도체’라 불린다. 지난해 수출액이 5억8000만달러로, 해외 가장 많이 수출되는 국내 수산물이다. 부동의 1위를 오랫동안 지켰던 참치를 넘어섰다. 일본·중국 등 전통적 김 섭취 국가뿐 아니라 미국·프랑스·태국·싱가포르·러시아 등으로 확장됐다. 올 상반기 우리 김 최대 소비처는 미국으로, 올 상반기 김의 미국 수출액이 6909만달러나 된다.


서양에선 해조류를 과거 ‘바다의 잡초’로 여겼지만 최근 건강 식품으로 부각되고 있다. 특히 김은 일반 해조류보다 단백질 함량이 월등히 높아 김치와 함께 ‘한국의 수퍼푸드’로 소개된다. 데리야키·매운맛 등 각종 맛을 가미하거나 아몬드·코코넛 등을 첨가한 간식 김이 개발되고 있다.


김덕만씨는 좋은 김을 고르는 비결로 “윤기가 나는지 불빛에 비춰보라”고 했다. “기름 바르지 않아도 바른 듯 매끄럽고 반짝반짝해야지. 구멍이 많거나 회백색 점이 많으면 건강한 원초(原草·가공하지 않은 김)가 아니라는 증거요.”


만돌마을 재래식 김은 1톳(100장) 1만원이다. 2·3·5톳 묶음으로 판다. 택배비 4000원 별도. 010-4601-2162


[고창=김성윤 음식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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