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
[컬처]by 조선일보

'기생충' 속 자화상 전시합니다

후니훈

'북치기, 박치기'로 유명했던 래퍼

작곡 막힐 때 취미로 그린 그림… 봉준호 감독 눈에 띄어 작업 시작


1000만 관객을 돌파한 영화 '기생충'에는 박사장(이선균) 아들 다송이가 그린 그림이 14점 등장한다. 다송이가 스케치북에 혼자 크레파스를 끄적이는 장면부터 기택(송강호)이 도주하는 마지막 장면까지 다송이의 그림은 영화 곳곳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 어린아이의 서툰 그림 같지만 작가는 따로 있다. 1998년 데뷔한 20여년 경력 래퍼 후니훈(39·본명 정재훈)이다.

조선일보

'기생충' 속 그림을 그린 래퍼 후니훈의 작업실. 화려한 색상의 그림들이 벽을 채웠다. 그는 "모든 생물에겐 눈이 중요하다고 생각해 눈을 크게 그린다"고 했다. /고운호 기자

지난 26일 서울 서초동 작업실에서 만난 그는 어린아이 같은 그림을 그리는 이유에 대해 "아직 철이 안 들어서 그렇죠, 뭐…" 하며 머리를 긁적였다. 작업실 벽에는 영화보다 더 다채로운 색깔로 채운 그림 수십 점이 빼곡히 걸려 있었다. "평소에는 영화에 나오는 그림보다 조금 더 발랄하고 유머 있게 그리는 편"이라고 했다.


댄스 그룹 유니티의 랩 담당으로 데뷔한 그는 '비트박스 보이'로 더 유명하다. 2004년 한 통신사 광고에 스웨그 넘치는 힙합 복장으로 출연했다. "비트박스를 잘하려면 두 가지만 기억하세요. 북치기, 박치기"라는 대사와 함께 고난도 비트박스를 선보였다.


광고에 힘입어 인기가 급등했지만 그 뒤로 불운이 겹쳤다. 그는 "그룹이 해체된 뒤 개인적으로 준비하던 힙합 음반마저 소속사와 의견이 갈려 발매가 무산됐다"며 "공익 근무를 마치고 온 뒤에는 음반 작업도 잘 안 풀렸다"고 했다. 비주류였던 힙합은 주류로 떠올랐고 신인 래퍼들이 쏟아져 나왔다. 하지만 머리를 싸매도 좋은 곡이 떠오르지 않았다.

조선일보

영화 '기생충'에 등장하는 '다송의 자화상'(왼쪽). 오른쪽은 봉준호 감독의 선택을 받는 데 결정적 역할을 했던 그림. 기택(송강호)이 도주하는 장면에서 스쳐 지나가듯 나온다. /후니훈 제공

그때 몰두한 것이 고교 시절 좋아했던 그림 그리기다. 그는 "랩이 잘 안 풀려서 머리가 아플 때마다 그림을 그렸다"고 했다. 화가로서 '지비지(ZIBEZI)'라는 예명(藝名)도 지었다. "친구들이 어디냐고 물어볼 때마다 틀어박혀 그림을 그리느라 '집이지'라고 대답했던 데서 착안했죠(웃음)."


손에 잡히는 아무것이나 들고 그림을 그렸다. 지금도 크레파스·파스텔·마커 등 다양한 재료를 사용한다. 그는 "성격이 급해서 완성까지 오래 기다려야 하는 유화(油畵)는 질색"이라고 했다. 파스텔과 크레파스로 그린 그의 작품을 보고 봉준호 감독이 '낙점'했다고 한다.


영화 '기생충'에 나오는 다송이의 자화상 한 점을 위해 23점을 그렸다. "감독님이 시나리오 전체를 주더니 '침팬지 형상을 지닌 사람'을 그려 달라고 했죠." 집 벽에 걸린 '다송이의 자화상'은 기정(박소담)을 박 사장 가족과 이어주는 매개체로 등장한다. 23점을 그린 뒤 사진으로 찍어서 보냈더니 봉 감독은 그중 10점을 추려 "이걸 다 합친 느낌으로 다시 그려 달라"고 주문했단다. 그렇게 탄생한 그림이 다송이의 자화상이다.


봉 감독은 그에게 그림 오른쪽 하단에 특별한 상징을 넣어 달라는 주문도 했다. 기정이 다송이의 심리 상태를 설명하는 장면에서 나오는 용어 '스키조프레니아 존(schizophrenia zone·조현병 구역)'을 표현하려는 영화적 장치였다. 후니훈은 "별, 사람 눈, 세모까지 별의별 모양을 다 그렸다가 결국 눈에 두드러지지 않는 편이 낫겠다 싶어서 검은색으로 칠했다"고 했다.


그가 31일부터 '기생충'에 나왔던 그림 14점을 모두 전시한다. '기생충'의 배경을 염두에 둔 건 아니지만 전시 장소도 갤러리 대신 서울 금호동 연립주택의 옥탑방을 골랐다. 몇년간 틀어박혀 그림을 그렸던 작업실이다. 그는 "전시할 생각까지는 없었는데 900만 관객 돌파를 축하하는 자리에서 봉 감독님이 먼저 '전시회 안 하냐?'고 물었다"고 했다.


8월 11일까지 열리는 전시회가 끝나면 다시 음반 작업에 들어간다. 그는 "그림이 유명해지긴 했지만 내 직업은 래퍼"라며 "힙합·하우스 등 장르를 가리지 않고 매일 가사를 쓰고 곡을 만든다"고 했다. 그는 "올해 중으로 앨범을 내려고 했지만 '기생충'이 1000만 관객을 돌파하면서 일정이 늦어졌다"며 "내년에는 싱글 앨범이라도 꼭 내놓을 것"이라고 했다.


김수경 기자

오늘의 실시간
BEST
chosun
채널명
조선일보
소개글
대한민국 대표신문 조선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