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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복 김선생] 속이 ‘고구마’라고 사이다와 함께 먹진 마세요

겨울 대표 먹거리 고구마

20세기 초까진 ‘감자’라 불러

조선일보

겨울 대표 간식 군고구마./조선일보DB

추운 겨울, 거리에서 군고구마 사먹던 추억은 누구나 가지고 계실 겁니다. 그만큼 고구마는 겨울을 대표하는 별미입니다. 그런데 요즘 고구마가 부정적인 의미로 더 자주 쓰이는 듯합니다. 지나치게 느리고 개연성 없이 전개되는 드라마를 비난할 때 ‘물 없이 고구마 100개 먹은 듯한 기분’이라고 네티즌들이 처음 사용하다가, 이제는 답답한 상황, 사람 등 별의별 경우를 표현할 때 ‘고구마’라고 말하죠.

고구마 먹으면 속 답답한 이유

맞습니다. 고구마를 먹으면 속이 답답합니다. 그게 다 섬유질이 많아 그렇습니다. 고구마는 식이섬유인 셀룰로스를 다량 함유합니다. 고구마 1개에는 약 4g의 식이섬유가 들었는데, 이는 하루 권장량의 16%를 충족하는 양입니다. 장 운동을 촉진하죠. 게다가 고구마를 자르면 나오는 끈적끈적한 흰색 유액은 ‘야리핀’이라는 수지를 함유한 물질로 변통(便痛)을 부드럽게 해주는 작용을 한답니다. 쉽게 말해 변비에 특효란 거죠.


달콤한 고구마를 먹으면서 칼로리도 높을 것 같아 살찔 거라 지레짐작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고구마 100g당 열량은 생 고구마 111kcal, 찐고구마 114kcal, 군고구마 141kcal로 생각보다 낮아요. 더 중요한 건 고구마의 GI지수(혈당지수)입니다. 고구마의 GI지수는 55로 감자(90)보다 훨씬 낮아요. ‘GI 다이어트(인슐린 분비가 적게 되므로 혈당지수가 60 이하인 음식만 먹는 식이요법)’을 하는 분들에게 고구마가 인기 높은 이유죠.


고구마는 성인병 예방에도 효과가 있다고 알려지고 있습니다. 식이섬유는 장에서 지방이나 콜레스테롤에 붙어 몸 밖으로 배출시켜 고지혈증, 고콜레스테롤혈증 예방에도 도움이 됩니다. 베타카로틴과 비타민C가 들어있는 대표적인 알칼리성 식품. 특히 속까지 보랏빛인 ‘자색(紫色) 고구마’는 항산화물질인 안토시아닌이 풍부해 노화를 막고 암 예방에도 좋다죠.


이 밖에도 비타민, 칼륨, 인, 철 등도 고루 들어있어요. 비타민A와 C는 양파·당근·호박보다 많고, 심장박동을 조절하고 혈압을 안정시키며 신경계를 조절하는 칼륨은 중간 크기 고구마 1개에 하루 권장량의 27%나 함유했지요. 미국항공우주국(NASA)에서는 고구마를 ‘우주시대 식량자원’으로 선택하기까지 했습니다.

고구마의 원래 이름은 ‘감자’

이렇게 두루 유익한 건강식품인 고구마가 원래는 감자라고 불렸던 사실, 아시나요? 김동인의 소설 ‘감자’(1925년)에서 주인공 복녀가 왕서방 밭에서 몰래 캐내던 작물도 감자가 아니라 고구마였죠. 고구마는 왜 감자라고 불리다가 고구마로 이름이 바뀌었을까요.


남아메리카가 원산지인 고구마는 꽤 일찍 한반도에 소개됐습니다. 이르면 1600년대 전반, 늦어도 1700년대 후반에는 도입된 것으로 보입니다. 당시 고구마의 이름은 감저(甘藷). 마(藷)처럼 생겼지만 단맛(甘)이 난다는 뜻이죠.


요즘 우리가 감자라고 부르는 작물은 고구마보다 한참 늦은 19세기 초 중국을 통해 들어왔습니다. 당시 감자는 ‘북방에서 온 감저’라는 뜻으로 ‘북감저(北甘藷)’라고 불렀습니다. 고구마는 따뜻한 곳에서 잘 자랍니다. 그렇다 보니 한반도에서는 경상도와 전라도 등 남쪽 지방으로 오랫동안 재배가 제한됐습니다.


따뜻한 남쪽에서만 재배되던 고구마와 달리, 감자는 아무데서나 잘 자라죠. 덕분에 빠르게 한반도 전역으로 퍼졌습니다. 감저 그리고 감저가 변형된 감자는 20세기 초반까지 고구마와 감자를 모두 뜻하는 말로 혼용되다가, 마침내 감자를 뜻하는 말로 굳어졌습니다.


고구마라는 이름은 일본어에 뿌리를 둔 외래어입니다. 일본 쓰시마(대마도) 사투리로 고구마를 뜻하는 ‘고코이모(こういも)’가 변해 고구마가 됐다고 국어학자들은 추측합니다. 하지만 어원의 흔적이 남아있는 지역이 있습니다. 바로 제주도입니다. 지금도 제주도에서는 고구마를 감자 또는 감저라고 부릅니다. 대신 감자는 ‘지슬’이라고 부르죠.

맛있게 먹으려면 찌지 말고 굽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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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이면 거리에서 흔히 볼 수 있던 군고구마 장수. 고구마 가격이 오르면서 요즘은 찾기 힘들어졌다./조선일보DB

고구마는 생으로 먹기보다는 찌거나 구워 먹어야 더 이롭습니다. 영양분이 생으로 먹을 때보다 높아지거든요. 맛있게 먹으려면 구워 먹는 편이 더 좋아요. 고구마에는 녹말을 당분으로 바꿔주는 베타아밀라아제라는 효소가 있어요. 이 효소가 활발하게 오래 활동할수록 고구마가 더 달아지는데, 찌거나 삶을 경우 온도가 빨리 올라가 효소 활동을 막거든요. 반면 고구마를 구우면 온도가 서서히 올라가 효소가 오래 활발하게 작용해 단맛을 높여줍니다.


전자레인지에 익혀도 맛이 덜해요. 전자레인지의 경우는 찔 때와 정반대 이유입니다. 즉 베타아밀라아제가 활발하게 활동하는 온도는 섭씨 70~80도인데, 전자레인지로 가열하면 그 온도는 금방 넘어버립니다. 꼭 전자레인지를 사용해야 한다면 조리온도를 70~80도로 설정하고 시간을 들여 천천히 가열하면 달콤한 고구마를 맛볼 수 있지요.


고구마를 씻을 때는 까칠까칠한 수세미는 사용하지 마세요. 수세미로 고구마를 문지르면 미네랄이 손실됩니다. 철분과 마그네슘도 30~50% 이상 빠져나가고 껍질에 유독 풍부한 칼슘은 90% 이상 사라져요. 그러니 고구마는 부드러운 스펀지나 손으로 살살 문지르면서 씻는 게 좋아요.


고구마는 서늘한 곳에서 보관해야 오래 맛있게 먹을 수 있어요. 추위에 약하기 때문에 냉장고나 냉동고에 넣어두면 상하기 쉬워요. 그렇다고 너무 따뜻한 곳에 두면 금방 싹이 터서 좋지 않아요. 싹이 나면 고구마 내부의 녹말은 없어지고 섬유질만 남아요. 이렇게 된 고구마는 질긴 심만 많고 달지 않아 맛이 없지요.


고구마가 집에 오면 햇볕에 말려 습기를 완전히 제거하고 신문지에 싸서 바닥에 구멍을 낸 상자에 넣어 섭씨 13~16도 정도에 보관하는 것이 이상적입니다. 베란다나 다용도실 그늘이 딱 알맞겠네요.


요즘 고구마와 반대 개념으로 사용되는 말이 ‘사이다’죠. 고구마 먹을 때 속 답답하다고 사이다와 같이 먹지는 마세요. 사이다가 속이 뻥 뚫리는 것 같아도 건강에 특별히 이로울 건 없으니까요. 고구마는 김치와 같이 드세요. 맛이 찰떡궁합일 뿐 아니라, 고구마의 칼륨이 김치에 다량 함유된 나트륨(소금)을 몸 밖으로 배출시켜줍니다.


[김성윤 음식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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