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

[공복 김선생] 매끄럽고 뜨끈하고 파릇파릇한 겨울 바다 별미

‘잡초'에서 웰빙식품으로 격상한 매생이

조선일보

서울 ‘해남천일관’ 매생이굴국. 국이라기보다 매생이 덩어리라고 해야 할 정도로 걸쭉해야 제맛이다./조선일보DB

매생이는 겨울 남도(南道) 바다를 선명한 초록빛으로 물들이는 해조류입니다. 입에서는 달다고 할 만큼 감칠맛이 풍부하면서 부드럽고, 목을 넘어갈 때는 매끈하면서 뜨끈한 식감이 그만입니다. 지방·칼로리 함량은 낮으면서 식이섬유·영양소 등이 풍부한 건강식품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매생이가 겨울 건강 별미로 각광받게 된 건 최근 일입니다. 1990년대까지만 해도 ‘잡초’로 천덕꾸러기 취급 받았죠.

매생이가 천덕꾸러기 취급 당한 까닭

‘생생한 이끼를 바로 뜯는다’는 뜻의 순 우리말인 매생이는 12월 중순부터 2월 말까지가 수확철입니다. 매생이 생육에 적당한 온도가 섭씨 8도로 낮기 때문입니다. 파래보다 더 가늘고 부드럽고 짙은 초록색을 띠는 매생이는 최장 30cm까지 자라는데, 5cm가 넘으면 수확이 가능합니다.


전남 완도·강진·장흥·고흥·해남 등 청정해역에서만 자라는 남도 지방의 특산물입니다. 매생이는 조류가 거칠지 않으면서 흐름이 좋은 바다에서 잘 자랍니다. 이러한 조건을 특히 제대로 갖춘 곳이 완도이지요. 매생이 생산량의 대부분이 완도에서 나오는 이유입니다.


그런데 매생이가 잘 자라는 서식 조건은 김과 같습니다. 일제강점기 이후 김은 가장 중요한 해조류로 자리 잡습니다. 일제는 수탈을 위해 해태(海苔·김) 증산정책을 펼치며 김 장식을 장려합니다. 견습 학교도 세웠죠. 전라도 최초 어업조합도 완도에 만들어진 해태어업조합입니다.

조선일보

매생이 양식에서 가장 힘든 건 채취 작업이다. 배에 엎드려 가슴을 붙이고 매생이 발을 들어 올리는 어민 가슴에 매생이처럼 검은 멍이 든다./조선일보DB

김 양식을 하는 어민들은 김에 들러붙은 매생이를 잡초 취급하며 제거했지요. 매생이가 붙은 김은 품질이 떨어진다고 여겨 값이 떨어졌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김에서 떼어낸 매생이를 모아서 끓여 먹는 매생이국은 전남 일부 바닷가에서만 먹었죠.


매생이를 먹지 않았던 건 아닙니다. 기록을 찾아보면 우리 조상들은 매생이를 꽤 즐겨 먹었던 듯합니다. 조선시대 대표적 실학자 정약전은 ‘자산어보(玆山魚譜)’에서 매생이를 ‘누에가 만든 비단실보다 가늘고 쇠털보다 촘촘하며 검푸른 빛깔을 띠고 있다. 국을 끓이면 연하고 부드러우면서도 맛이 매우 달고 향기롭다’고 소개했습니다.


‘세종실록지리지’에는 전라도 특산물로 ‘매산’(매생이)이 김·감태·미역과 함께 등장하고, ‘동국여지승람’에는 전라도 관찰사에게 ‘좋은 매산을 가려 많이 올리라’고도 했습니다. 우리나라 어촌 공동체를 연구하는 사회학자인 김준 광주전남연구원 책임연구위원은 “고려·조선시대에는 매생이가 요리가 간편하고 특별한 가공 없이도 먹을 수 있기 때문에 김보다 오히려 더 식탁에 많이 올랐을지 모른다”고 말하더군요.

칼로리 낮고 영양 풍부한 웰빙식품

남도 여행객이 늘면서 매생이국이 차츰 소문나기 시작했습니다. 1990년대 중반부터는 웰빙 바람이 불면서 매생이의 효능도 알려졌죠. 특히 철분과 칼슘을 다량 함유해 중년 여성의 빈혈과 골다공증에 좋다는 소문이 돌면서 전국적으로 매생이 열풍이 붑니다. 철분과 칼슘이 많은 음식으로는 우유가 대표적인데, 매생이는 철분 함량이 100g당 43.1mg으로 우유의 40배이고, 칼슘 함량도 100g당 574mg으로 우유보다 5배 더 많다고 합니다. 엽록소와 식이섬유가 풍부해 포만감을 주면서도 소화·흡수가 빠르면서 열량은 적어서 다이어트 식품으로도 인기죠. 해장에 특효라는 아스파라긴산 성분은 콩나물의 3배라고 합니다.


마침 김 양식 방법도 바뀝니다. 1990년대 초 김 양식은 먼바다에 구조물을 띄우고 거기에 김발을 매달아 대량 양식하는 부류식으로 바뀌었죠. 이에 따라 수심이 얕은 근해 양식장은 김 대신 매생이가 차지하게 됩니다. 매생이로 억대 매출을 올리는 어민이 생길 정도로 효자 수산물이 됐죠. 김에서 매생이를 골라내는 게 아니라, 오히려 매생이에 붙은 김을 떼어낼 정도로 상황이 역전됐죠.


매생이는 해조류 중에서도 기르기가 고생스럽다고 합니다. 찬바람이 불기 시작하는 11월 대나무를 쪼개 엮어 만든 발을 바닷물이 들고 빠지는 목에 설치하고 포자(胞子)를 붙입니다. 이걸 다시 갯벌에 박은 대나무 장대에 묶어 양식합니다. 매생이 농사에서 제일 힘든 건 채취입니다. 작은 배를 타고 양식장으로 나가 배 좌현이나 우현에 엎드려 가슴을 붙이고 매생이 발을 들어 올려 채취해야 합니다. 매서운 바람과 얼음장 같은 물에 손이 꽁꽁 얼어붙지요. 이렇게 한철이 지나면 가슴에 시커먼 멍이 듭니다.


다행히 요즘은 대나무 발을 걷어 와 육지 작업장에 앉아 매생이를 뜯는 방식으로 바뀌고 있지요. 발에서 뜯어낸 매생이는 가지런하게 훑은 다음 쪽진 머리 모양으로 만듭니다. 매생이 한 덩어리의 단위는 ‘재기’로, 한 재기는 대략 400g입니다.

왜 ‘미운 사위에게 준다' 했을까

조선일보

①서울 ‘해남천일관’ 매생이전 ②매생이 덩어리 ③매생이굴떡국 ④매생이죽./조선일보DB

매생이가 인기를 끌면서 칼국수·부침개·라면은 물론 호떡·냉면·과자·막걸리·파스타까지 다양한 요리가 개발됐습니다. 하지만 제대로 맛보려면 역시 매생이국이 최고죠. 조리법도 간단합니다. 생굴 조금 넣고 끓으면 매생이 넣고 거품이 올라오면 국자로 한두 번 저은 뒤 불 끄고 간 하고 참기름 두르면 끝입니다.


매생이국은 아무리 뜨거워도 김이 나지 않아요. 매생이가 가진 고유의 점질 때문인데요, 그래서 매생이국을 무심코 한 숟갈 떠 넣었다간 입안이 홀랑 벗겨지기 십상입니다. ‘미운 사위에게 매생이국 준다’는 말은 여기서 나왔답니다.


[김성윤 음식전문기자]

오늘의 실시간
BEST
chosun
채널명
조선일보
소개글
대한민국 대표신문 조선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