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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복 김선생] 다음 먹방은 ‘K로제 떡볶이’로 해보세요

국민 간식 떡볶이의 진화

서울 도곡동 은광여고 옆 '그린네 은쟁반'의 떡볶이와 순대, 김밥. /이신영 영상미디어 기자

떡볶이는 거부할 수 없는 마성의 매력을 지녔나 봅니다. “떡볶이는 맛없는 음식”이라고 거듭 주장하면서 끊지 못하고, 대형 화재를 총괄할 책임 있는 자리에 있으면서도 화재 현장에 가지 못하게 주저 앉혔으니 말입니다. 전 국민이 즐겨 먹는 간식이자 소울푸드인 떡볶이는 그 동안 4번 크게 진화했고, 현재 5번째 변화 과정에 들어선 듯합니다.

◇ 아무나 함부로 못 먹던 ‘떡볶이 1.0’

‘떡볶이 1.0’은 고급 버전입니다. 본래 떡볶이는 궁중에서 임금이 자시던 귀한 음식이었습니다. 굵은 가래떡을 길게 4등분해 소고기, 버섯, 갖은 채소와 함께 간장으로 양념해 볶았습니다. 쌀은 1970년대까지도 비쌌습니다. 밥 지어 먹을 쌀도 귀했던 조선시대, 쌀로 만든 가래떡에 소고기, 버섯 등 각종 값비싼 부 재료가 들어갔으니 궁중이나 돈 많은 양반가에서, 그것도 명절에나 맛볼 수 있는 최고급 별식이었죠.


이처럼 간식으로 먹는 건 상상도 못할 귀하고 비싼 음식이던 떡볶이가 거리로 나선 건 6·25 이후입니다. 어떤 계기가 있었는지는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둥그렇고 납작하면서 가운데가 살짝 움푹한 번철에 기름을 두르고 간장 양념에 가래떡을 볶았죠. 어느 때부턴가 간장 외에 고춧가루도 넣기 시작합니다. 서울 경복궁 옆 통인시장에서 파는 기름 떡볶이가 이 즈음 등장했다고 추정됩니다. ‘떡볶이 2.0’입니다.


‘떡볶이 3.0’은 고추장과 설탕 따위를 섞은 매콤하고 달콤하면서 걸쭉한 국물에 끓이는 떡볶이입니다. 볶지 않고 끓이니 ‘떡탕’이나 ‘떡조림’이라고 불러야 더 정확하다고 말하는 이들도 있습니다만. 하여간 우리가 떡볶이 하면 떠오르는, 익숙한 형태의 떡볶이가 드디어 탄생한 거죠.


떡볶이 양념이 간장과 고춧가루에서 고추장으로 바뀐 건 1953년쯤입니다. 서울 신당동에서 떡볶이집을 하던 고(故) 마복림 할머니가 중국집에서 짜장면에 쓰는 춘장(春醬)에서 영감을 얻었다죠. 간장과 고춧가루 대신 고추장을 넣은 떡볶이는 폭발적 인기를 얻었습니다.

◇ 밀떡과 만나며 대중성 확보

떡볶이 3.0 버전은 쌀떡 대신 밀떡을 넣으면서 완성됩니다. 쌀가루로 뽑은 떡 대신 밀가루로 뽑은 밀떡이 탄생한 건 박정희 정부가 강력하게 추진·시행한 분식 장려 정책 덕분이 아닌가 추정됩니다. 설렁탕집에서도 밥 대신 국수를 쓰도록 강제했으니, 떡볶이 떡을 밀가루로 대체하라는 지시가 당연히 있지 않았을까 짐작합니다. 게다가 밀떡은 쌀떡보다 훨씬 쌌으니, 떡볶이집 주인 입장에서 밀떡을 쓰지 않을 이유가 없었겠죠.


밀가루와 쌀가루를 섞어 뽑은 떡은 고추장 양념과 만나 환상적인 ‘케미’를 일으킵니다. 맛있고 값도 싼 떡볶이 3.0은 전국 분식업계를 평정합니다.


‘떡볶이 4.0’은 2000년대 초 일어났습니다. 인지하지 못하는 분들이 많지만, 요즘 떡볶이는 맵지만 예전처럼 텁텁하지 않지요. 떡볶이 양념의 주재료가 고추장에서 고춧가루로 바뀌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변화는 프랜차이즈형 떡볶이업체에서 주도했습니다.


고추장에 들어있는 메주가루와 찹쌀가루가 떡볶이 떡에서 나오는 전분과 만나면 소스가 걸쭉하고 텁텁해질 뿐 아니라, 금방 굳고 뭉칩니다. 이러한 문제를 고민하던 떡볶이업체에서 들고 나온 해결책이 바로 고추장을 고춧가루로 대체하는 것이었습니다. 어떻게 보면 고춧가루를 사용하던 2.0 버전으로 돌아갔달 수도 있겠습니다.


떡볶이업체들은 소비자들이 선호하는 깔끔하게 매운 맛을 내기 위해 고추장을 빼는 대신 고춧가루를 배합해 사용합니다. 국산 고추는 재래종 ‘조선고추’와 외래종과 재래종을 교배한 ‘호고추’로 분류됩니다. 호고추는 매운맛이 약하지만 단맛과 향이 강하고, 조선고추는 은은하고 깊은 매운맛이 특징입니다.


대부분 떡볶이업체는 호고춧가루·설탕·간장 등을 섞어 기본 양념을 만들고, 여기에 조선고춧가루를 섞어 맵기와 색을 조절합니다. 고춧가루는 곱게 빻아 씁니다. 가루 입자가 작을수록 양념이 떡에 잘 배고, 씹어 삼킬 때 목넘김이 부드럽다고 합니다.

◇ 떡볶이 양념과 크림이 만난 ‘K로제’

‘떡볶이 5.0’은 최근 폭발적 인기인 ‘로제 떡볶이’가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로제 떡볶이는 떡볶이 양념에 크림·우유를 넣어 만든 로제 소스(rose sauce)에 버무린 떡볶이입니다.


로제 소스는 본래 서양음식에서 왔지요. 토마토 소스와 크림을 섞으면 발그스름한 주홍빛이 됩니다. 이걸 ‘분홍색’을 뜻하는 프랑스어 로제를 붙여 로제 소스라고 부릅니다. 여러 요리에 두루 쓰이지만 특히 스파게티 등 이탈리아 파스타에 즐겨 사용되는 소스로, 토마토의 새콤달콤한 맛과 크림의 고소한 맛이 어우러져 국내에서도 인기가 높지요.

조선일보

유튜브에서 '로제 떡볶이 먹방'을 하는 태영호 의원(위)와 로제 떡볶이. /유튜브·배떡

몇 해 전부터 파스타 대신 떡볶이 떡을 넣은 로제 떡볶이가 등장하더니, 최근 토마토 소스를 떡볶이 양념으로 대체한 한국형 로제 소스가 탄생했습니다. 이를 이용한 로제 떡볶이가 등장하면서 본격적인 호응을 얻기 시작했습니다. 일부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기존 로제 소스와 헷갈린다”며 ‘K로제’라고 명명했습니다.


로제 떡볶이는 왜 인기일까요. 식품공학자 최낙언씨는 “크림의 유지방이 고춧가루·고추장의 매운맛을 완화시켜줄 뿐 아니라, 단순히 맵고 달기만 한 떡볶이에 크림이 더해지면서 보다 풍성한 맛으로 변신하면서 사랑 받는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합니다.


로제 떡볶이는 중국 당면과 분모자(粉耗子)를 만나면서 더욱 인기를 얻고 있습니다. ‘로제 떡볶이의 주인공은 떡볶이 떡이 아니라 중국 당면과 분모자’라는 말이 정도입니다.


중국 당면은 원래 이름이 ‘훠궈둔펀(火鍋炖粉)’입니다. 훠궈와 마라탕이 유행하면서 국내에 알려졌죠. 기존 당면과 구분해 중국 당면으로 불립니다. 폭이 넓어 ‘넙적 당면’이라 부르기도 합니다.


중국에서 ‘펀하오쯔(粉耗子)’라고 부르는 분모자는 중국 동부지방에서 즐겨 먹는 가래떡처럼 굵고 기다란 당면입니다. 중국 당면과 분모자 둘 다 고무처럼 쫄깃한 식감이 특징인데, 꾸덕꾸덕한 로제 소스와 찰떡궁합입니다. 덕분에 로제 떡볶이 주문할 때 반드시 추가하는 필수 옵션으로 자리 잡으며 로제 떡볶이의 인기를 견인하고 있습니다.


떡볶이는 맛없는 음식이라고 주장하는 분과 화재 진압하던 시간 떡볶이 먹방 찍은 분, 두 분이 다시 함께 먹방을 찍게 된다면 로제 떡볶이로 해보시라고 추천합니다. 주영 북한 공사 출신인 국민의힘 태영호 의원이 로제 떡볶이 먹방을 얼마 전 했는데, 반응이 꽤 좋았습니다.


지난 4월 서울시장 보궐선거 기간, 20대 표심을 잡기 위해 ‘먹방(먹는 방송) 소통 라이브’를 진행한 태 의원이 선택한 메뉴가 로제 떡볶이였습니다. 태 의원은 “이거 진짜 맛있다. 진짜 중독성 있네. 한번 먹으니 계속 먹게 된다”며 연신 떡볶이를 젓가락으로 집어 들었답니다.


[김성윤 음식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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