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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유정 '야만적 조리돌림' 우려돼 현장검증 안했다"…제주수사팀, 부실수사 해명

고유정 수사팀, 경찰 내부망에 올린 해명 글 보니...

"폴리스라인 설치 안한 건 주민들 불안할까봐"

"현장검증은 고유정 ‘조리돌림’ 걱정돼 안했다"

전문가들 "수사中 해명, 표현과 시점 모두가 문제"


‘제주 전(前) 남편 살인사건’ 피의자 고유정(36)의 초동 수사를 담당했던 제주동부경찰서 경찰관 5명이 경찰 내부망에 부실수사 논란에 대한 해명글을 올린 것으로 25일 확인됐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이마저도 사실과 다르거나, 수사의 기본 원칙을 어겼다"고 지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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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일 경찰 업무용 포털 ‘폴넷'에 게시된 고유정 사건과 관련한 제주경찰의 입장문. /최효정 기자

경찰에 따르면, 지난 20일 오후 8시 20분쯤 경찰 내부 통신망인 ‘폴넷’에는 ‘제주 전 남편 살인사건 수사 관련 입장문’이라는 제목의 글이 올라왔다. 이 입장문은 고유정 사건의 초동 수사를 맡았던 제주동부경찰서 소속 경찰관 5명 공동명의로 작성됐다. 이들은 "우리 경찰서 관내에서 발생한 살인사건과 관련해 일부 왜곡된 언론보도로 인해 경찰의 명예가 실추됐다. 몇가지 사실관계에 대하여 말씀드리겠다"고 글을 시작했다.

①"초동수사 부실 지적은 결과론적 시각서 나온 비판"

이들은 글에서 사건초기 이 사건을 타살보다는 단순 실종이나 자살사건에 더 무게를 두고 수사에 나섰다고 밝혔다. 이들은 "지난 27일 (피해자가) 자살할 우려가 있다는 최초 신고에 따라 피해자의 최종 휴대전화 기지국 위치를 파악, 실종수사팀원 2명을 투입해 주변을 수색했고, 다음날 펜션 인근 분교 방범용 CCTV를 확인했다"고 적었다.


이들은 이어 "피해자 차량을 발견해 확인했지만 자살로 의심될만한 정황이 없었고, 29일 피해자 유족이 펜션 옆에 있는 가정집 CCTV를 확인 요청해 확인하니 피해자 이동 모습이 확인되지 않아 범죄 혐의점이 의심됐다. 그래서 바로 형사 3개팀을 동원해 현장 주변 CCTV를 폭넓게 확인한 것"이라고 했다. 이들은 또 "이혼한 부부가 어린 자녀와 있다가 자살의심으로 신고된 사건에 대해 초기부터 강력사건으로 보고, 수사를 하라는 비판은 결과론적 시각에서 바라보는 비판"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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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유정이 피해자 강씨의 시신 등이 담긴 종량제봉투를 유기했을 수 있다는 주장이 나온 제주시의 한 펜션 인근 쓰레기 분리수거장. 양쪽에 CCTV(붉은 원)가 설치돼있다. /김우영 기자

그러나 경찰의 부실수사 정황은 곳곳에서 드러나고 있다. 경찰은 사건발생 현장인 제주 펜션 인근의 CCTV 영상이 있는지도 모르고 있다가 피해자 유족이 직접 찾아다가 갖다주고 나서야 수사에 착수했다. 경찰은 또 유족이 피해자와 고유정 차량의 블랙박스 영상을 찾아 달라고 요청한 뒤 사건발생 사흘이 지나서야 블랙박스 영상을 확보했다.


특히 경찰은 사건발생 이틀 뒤인 지난달 27일 고유정이 범행 장소를 떠나면서 쓰레기 종량제봉투 4개를 버린 사실을 미리 알고도 알리지 않았다. 피해자 유족이 쓰레기 처리시설에 설치된 CCTV에 찍힌 영상을 확인한 뒤에야 이같은 사실을 인정했다. 경찰 관계자는 "고유정의 범행 과정을 봤을 때 범행을 숨기기 위해 제주지역에는 시신을 유기하지 않은 것으로 판단했고, 펜션 주변에 버린 것은 범행 과정에 사용했던 이불이나 수건 등으로 판단했다"고 해명했다.


그러나 유족 측 등은 사체 일부가 있었을 수도 있었지만, 경찰이 수색했을 때는 이미 다 소각된 뒤여서 이같은 사실을 감춘 것으로 의심하고 있다. 경찰이 그동안 줄곧 고유정 전 남편의 시신 유기 장소로 완도행 항로, 김포시 고유정의 아버지 아파트 등만 언급해왔기 때문이다.

②"펜션 문 잠겨 현장보존 됐기에 폴리스라인은 필요 없었다"

이들은 "해당 펜션은 독채이고 주 범죄 현장이 펜션내부, 지난달 31일 펜션 내부에 대한 정밀 감식 및 혈흔 검사를 완료했다"면서 "감식 종료 후 범죄 현장을 타인이 사용하지 못하게 사건 송치(送致)시까지 위 펜션을 경찰에서 지난 1일부터 12일까지 임대해 출입문을 시정(施錠)했다"고 밝혔다. 일각에서 살인사건 현장에 폴리스라인도 설치하지 않았다는 지적에 대한 해명이었다.


경찰은 사건이 발생한 지 일주일이 지난 5월 31일 혈흔을 찾는 루미놀 검사를 실시하고, 이후 현장을 보존하지 않은 채 펜션 주인이 현장을 청소를 할 수 있도록 허락했다. 그리고는 폴리스라인 없이 현장을 방치했다.


이에 대해 이들은 "루미놀 검사가 완료된 뒤, 다만 펜션 내부를 청소하겠다는 주인의 요청을 허락한 사실은 있다"면서 "폴리스라인은 설치시 불필요하게 인근 주민들에게 불안감이 조성되고, 주거의 평온을 해할 우려가 있었다"고 해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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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유정이 피해자 강씨를 살해하고 시신을 훼손한 제주시의 한 펜션. 지난 17일 펜션 주변에 폴리스라인이 없다. /권오은 기자

하지만 전문가들은 수사팀 해명에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오윤성 순천향대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주인이 청소를 했다는 것은 현장을 훼손했다는 말"이라며 "경찰 주장이 해명인지, 잘못을 축소하려는 변명인지 모르겠다"고 했다. 익명을 요구한 한 전문가는 "주민들 불안때문에 범죄현장 폴리스라인을 못친다는 것이 말이되는가"라면서 "경찰관들의 수사에 대한 의지가 의심되는 표현"이라고 했다.

③"고유정, 야만적인 조리돌림 당할까봐 현장검증 안했다"

제주동부서는 체포된 고유정이 살인 혐의 등을 인정한 다음날인 지난 7일 현장검증은 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당시 경찰은 "피의자가 지속적으로 우발적 살인을 주장해 현장검증의 실익이 없다"면서 "현장검증 미시행은 검찰과 협의가 완료된 부분"이라고 했다.


경찰청 본청 지침에도 현장검증은 지양하고, 불가피하게 하더라도 최소한으로 실시하자는 내부 방침이었다는 설명도 덧붙였다. 하지만 고유정만 예외로 하는 것이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기도 했다.


글을 올린 수사팀 경찰관들도 "현장검증은 피의자를 대상으로 현장에서 범행을 재연하도록 함으로써 다른 형태의 증거를 확보하는 과정"이라며 "피의자가 범행 동기에 대해 허위 진술로 일관하고 있었고, 굳이 현장 검증을 하지 않더라도 범죄입증에 필요한 DNA, CCTV 영상 등 충분한 증거가 확보된 상태에서 현장검증을 할 필요성을 느끼지 않았다"고 적었다. 그리고는 "이런 상황에서의 현장검증은 ‘야만적인 현대판 조리돌림’이라는 제주동부경찰서 박기남 서장의 결단이 있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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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의자 고유정이 지난 6일 제주동부경찰서 유치장에서 진술녹화실로 이동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에 대해 오윤성 교수는 "비록 경찰 내부망이라고 하더라도 수사책임자인 경찰서장이 현장검증이라는 정상적 수사절차를 ‘야만적 현대판 조리돌림’이라는 표현을 써가며 피의자를 보호하려는 의도를 내비친 것에 대해 또다른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어 우려된다"고 지적했다. 또 다른 범죄심리 전문가는 "현재 검찰에 피의자가 송치돼 보강 수사가 진행되고 있는 상황에서 경찰이 입장을 섣불리 발표하는 것 역시 문제가 있다"고 했다.


이들이 올린 글은 현재 1만 4000여건의 조회수를 기록하고 있다. 댓글도 수백개에 이른다. 한 경찰 관계자는 ‘댓글 대부분이 비난 기사에 대해 소상한 설명이 있어 자부심이 생기고 형사들이 고생했다는 것을 알겠다’ ‘사건수사에 100%라는 것은 있을 수 없다. 너무 자책하지말라’ 등 응원과 격려의 반응"이라고 했다. 또 다른 경찰 간부는 "고생한 것은 맞지만, 사실 수사에 미진한 부분이 있었던 것도 사실"이라며 "수사중인 사건과 관련해 수사팀의 이런 식의 해명이 과연 적절한지, 이런 글로 경찰 내부의 호응을 얻는 것이 앞으로 어떤 긍정적인 효과가 있을지 모르겠다"고 했다.


[최효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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