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둥실’ 공중 산책 후지산 패러글라이딩
채지형의 여행살롱 44화
후지산을 바라보며 공중산책 |
따뜻한 아랫목이 그리운 날들입니다. 그러나 집에만 있다 보면, 에너지가 스멀스멀 사라지죠. 가끔은 밖으로 눈을 돌려보는 것은 어떨까요. 스키나 스노보드처럼 겨울에만 즐길 수 있는 스포츠를 즐겨보는 것도 방법이고요. 겨울이라 더 좋은 여행지도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은 겨울이 더 아름다운 ‘후지산 패러글라이딩’을 소개해드리려고요.
일본의 대표 아이콘, 후지산
두근두근, 비행기에서 보이는 후지산 |
후지산은 일본을 대표하는 산이죠. 해발 3,776m로, 일본에서 제일 높은 산인데요. 일본 사람들의 후지산에 대한 마음은 물리적인 숫자보다도 훨씬 높답니다. 신앙에 가깝다고나 할까요. 후지산에서 영감을 받아 만들어진 예술작품도 많고요. 일본을 여행해 보셨다면, 일본의 전통 풍속화인 우키요에를 한 번쯤 보셨을 거예요. 후지산은 우키요에의 단골 모델이기도 하죠. 후지산은 유네스코가 선정하는 세계유산에 등재되어 있는데요. 특이하게도 자연유산이 아니라 문화유산에 이름이 올라가 있어요. 자연 그 자체의 의미보다, 일본사람들의 문화와 연결된 부분을 더 인정을 받았기 때문이랍니다.
아름다운 후지산을 보기에는 여름보다는 겨울입니다. 겨울에 시야가 더 좋기 때문인데요. 그래서 패러글라이딩 만족도도 겨울이 더 높죠. 1~2월이 후지산을 바라보며 패러글라이딩을 즐기기에 딱 알맞은 시기랍니다. 그 이유 중 하나는 바람 때문입니다. 아무리 패러글라이딩을 타고 싶어도 바람이 너무 세면 탈 수가 없는데, 겨울에는 바람이 잔잔한 날이 대부분이라고 해요. 패러글라이딩을 할 수 있는 날이 80% 정도라, 일본 패러글라이딩 애호가들이 이곳을 자주 찾는다고 하더군요.
겨울에 더 좋은 후지산 패러글라이딩
후지산이 가까워질수록 설렘도 배가 된다 |
‘후지산 패러글라이딩’을 위해 일본 시즈오카현 후지노미야시로 향했습니다. 어디에서든 흰 모자를 쓴 후지산이 눈에 들어오더군요. 후지산이 점점 가까워질수록 가슴이 두근두근 뛰었습니다. 시즈오카의 유명 패러글라이딩 숍인 ‘스카이 아사기리’에는 사람들이 북적북적하더군요. 이른 아침이었는데도 말이죠. 맨몸으로 온 저와 달리, 대부분 개인 장비를 가지고 왔더라고요. 나고야와 삿포로, 가나자와, 도쿄 등 사는 곳들도 각양각색이었습니다.
후지산 패러글라이딩을 위해 찾은 패러글라이딩 숍 '스카이 아사기리' |
숍에 들어오자마자 다들 관심을 두는 것이 바람이었습니다. 바람이 어느 정도 부느냐에 따라 패러글라이딩을 할 수 있을지 없을지가 결정되기 때문이죠. 스카이 아사기리에는 풍속 예보를 볼 수 있는 게시판이 따로 마련되어있었습니다.
하늘은 높고 더없이 잔잔한 날이었기 때문에, 패러글라이딩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는데요. 아뿔싸. 아래는 바람이 잔잔하지만, 패러글라이딩을 하는 산 위는 바람이 세게 불어서 비행을 할 수 없다고 하더군요. 실망이 이만저만이 아니었죠. 그러나 어쩌겠습니까. 기도하는 마음으로 기다리는 수밖에요.
후지산 풍경 속으로 날다
다음 날 아침. 하늘은 파랗고 날씨는 더없이 좋았습니다. 그래도 마음을 놓을 수가 없더군요. 산 아래와 산 위의 바람 세기가 다를테니까요. 오늘도 바람이 세면 어떡하나 조바심을 내며 풍속 예보판을 기웃거렸습니다. 그랬더니 패러글라이딩 인스트럭터인 야마자키 씨가 함박웃음을 지으며 한 말씀 건네더군요. 오늘은 바람이 좋아 100명도 탈 수 있을 것 같다면서요. 제 얼굴에도 환한 웃음이 피어오른 건 말할 것도 없고요.
해발 1000m. 날기위해 준비중 |
본격적인 패러글라이딩을 위해, 스카이 아사기리 전용 차량을 타고 이륙 장소로 향했습니다. 이륙 장소에 도착하자 저도 모르게 감탄사가 나오더군요. 아래서 올려다보기만 하던 후지산과 달라도 너무 달랐습니다. 마치 전망대에 오른 관광객처럼 하염없이 눈앞에 펼쳐진 풍경만 바라보게 되더라고요. 패러글라이딩을 하러 온 목적은 뒤로 던져둔 채로 말이죠. 새파란 하늘과 후지산의 하얀 눈이 어찌 그리 멋진 조화를 이루던지요.
“그냥 즐겨”
이곳은 해발 1000m. 야마자키 씨가 낙하산을 바닥에 먼저 펼쳤습니다. 저는 비행할 때 앉을 하네스를 등에 메고 헬멧을 썼고요. 갑자기 겁이 나더군요. 야마자키 씨에게 물었습니다. “주의할 점은 없나요?”라고요. 그랬더니 한마디 돌아오더군요. “그냥 즐기면 돼”
긴장감 넘치는 출발전 |
해가 뜨기 바로 전 새벽이 가장 어두운 것처럼, 출발하기 바로 전 시간이 가장 긴장되더군요. 흥분을 가라앉히고 잠시 눈을 감았습니다. 좋은 바람이 오기를 기다리면서요. ‘고(Go)’라고 외치는 야마자키 씨의 주문과 함께 발을 빠르게 굴리기 시작했습니다. 몸이 버둥버둥 어느새 허공에 떠 있더군요. 그때도 저는 계속 발을 구르며 달리고 있었습니다.
눈 깜짝할 사이더군요. 하늘이었습니다. 새가 된 것 같기도 하고 구름이 된 것 같기도 한 느낌이었습니다. 두둥실 하늘을 날다니. 언제 긴장했냐는 듯이 어느새 하늘 위의 산책을 즐기는 저를 발견했습니다. 놀이공원에서 바이킹에 오른 것처럼 혼이 쏙 빠질 줄 알았는데, 전혀 다른 종류의 스릴이더군요. 안정적으로 하늘에서의 순간순간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신밧드가 된 것처럼 하늘을 ‘두둥실’
후지산을 바라보며 공중산책 |
바람을 타면서, 방향을 이리저리 돌렸습니다. 마법의 양탄자를 타고 하늘을 나는 기분이 들었습니다. 하늘 위의 청명한 기운들이 제 몸속으로 들어오는 것 같았습니다. 켜켜이 쌓여 있던 근심들이 툭툭 털리는 것 같기도 하고요.
공중 산책이 이렇게 편안할지 몰랐습니다. 여유가 생기자 사방을 둘러봤습니다. 발아래 펼쳐진 숲에는 낙하산 그림자가 유유히 흐르고 있더군요. 시간이 더 천천히 흐르면 얼마나 좋을까 싶었습니다.
하늘에서 살포시 내려와 착지 |
하염없이 하늘 위에 떠 있을 수는 없는 일. 흔들흔들 착륙장을 향해 내려갔습니다. 발이 땅에 닿으면 달리듯 발을 움직이다 멈추라는 설명을 들었지만, 몸이 마음대로 움직여지지 않더군요. 멋지게 착륙하고 싶은 마음과 달리, 땅에 엉덩방아를 찧고 말았습니다.
길지 않은 시간이었지만, 자연의 기운을 한껏 얻은 기분이었습니다. 에너지를 받는다는 것은 이런 것이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언젠가 힘을 내야 할 때, 다시 찾아야겠다고 마음을 다지며 집으로 돌아왔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