까따깔리 메이크업 어때요?
채지형의 리틀인디아 제5화
까따깔리, 혹시 들어보셨나요? 들어본 분이라면 남인도를 이미 여행했거나, 전통 무용에 관심 있는 분일 것 같군요. 처음 들었을 때 저는 무척 생소했거든요. 남인도를 여행했던 친구들은 남인도에 가면 까따깔리를 꼭 봐야 한다고 강조하더군요. 남인도의 께랄라를 대표하는 전통 공연인 데다, 배우들의 강렬한 분장이 무척 인상적이라고요. 발음도 독특한 까따깔리. 호기심이 모락모락 올라왔습니다.
인도 4대 무용 중 하나인 까따깔리
까따깔리는 바라트 나트얌, 까딱, 마니뿌리와 함께 인도 4대 무용 중 하나로 꼽힙니다. 남인도 전통 무용이라, 북인도에서 접하기는 쉽지 않죠. 까따깔리(kathakali)의 까따는 드라마를, 칼리는 음악을 의미하는데요. 대사가 따로 없는 무언극이에요. 음악과 표정, 몸짓으로 이야기를 전개해 나가죠.
배우들이 분장하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는 관객들 |
까따깔리 공연이 다른 공연과 다른 점 중 하나는 분장하는 모습도 볼 수 있다는 점이에요. 그래서 공연은 6시에 시작하지만, 관람객들은 한 시간 전인 5시부터 자리 잡고 앉았습니다. 까따깔리를 만난 곳은 코친에 있는 께랄라 까따깔리 센터. 수십 년간 코친에서 까따깔리 공연을 올린 곳으로, 공연에 대한 자부심이 무척 높았습니다.
거울을 보며 세밀하게 직접 메이크업하는 배우들 |
안에 들어서니, 어두운 공연장에 무대만 환하게 빛나고 있었습니다. 무대에서는 배우들이 분장을 시작하고 있었거든요. 붓으로 세밀화를 그리듯, 거울을 보면서 얼굴에 그림을 그리고 있었습니다. 시간이 흐르면서 배우들의 얼굴이 조금씩 달라졌습니다. 우락부락해 보이던 중년 배우가 메이크업의 힘으로, 곱디고운 여인으로 변신했습니다. 또 다른 배우는 얼굴에 온통 녹색 물감을 칠하고 진한 검은색 아이라인을 그려 넣더군요. 강렬한 분장이라는 것이 이걸 말하는구나 싶었습니다. 그런데 그것이 끝이 아니었어요.
까따깔리 메이크업 전문가 닉슨 선생님이 화장을 마무리해주고 있다 |
전문 분장사가 나타나더니, 배우를 눕혀놓고 화장을 조심조심 고치더군요. 다음에는 얼굴에 하얀 풀을 칠하더니, 두꺼운 종이를 초승달처럼 턱 선에 붙였습니다. 더 무섭게 보이기 위한 장치인 것 같았어요. 화장하는 것을 구경하는 것이 이렇게 재미있는지 처음 알았습니다. 1시간이 어떻게 흘렀는지 모를 정도로 빠르게 지나갔거든요.
표정과 몸짓으로 건네는 이야기
메이크업이 끝나고 막이 올랐습니다. 공연에 들어가기 전, 얼굴로 어떻게 감정을 표현하는지 보여주었습니다. 사람의 표정이 다양하다는 것은 이미 알고 있었지만, 눈동자가 이처럼 수많은 마음을 표현할 수 있다는 것을 처음 느끼게 되었어요. 눈을 위아래로, 좌우로 굴리면서 여러 이야기를 건네더군요.
(왼쪽) 눈동자 연기를 보여주고 있는 배우 (오른쪽) 대사는 없지만 소리의 역할도 적지 않다. 발에 방울을 달고 긴박한 장면일 경우 큰 소리가 나도록 발을 세게 구른다 |
표정과 눈동자뿐만 아니라, 무드라라고 부르는 손동작도 중요합니다. 사물을 표현할 때 주로 손을 이용하거든요. 음악 소리에 맞춰 말 한마디 없이 기쁠 때와 슬플 때, 행복할 때와 괴로울 때를 보여줄 때는 감탄사가 절로 나왔습니다.
공연이 시작되자, 세 명의 등장인물이 차례로 나와 갈등과 고뇌의 순간들을 보여줬습니다. 분장할 때 보지 못했던 화려한 복식도 눈을 사로잡기에 충분했는데요. 일부러 큰 동작에 힘을 주기 위해 양쪽 발에 주렁주렁 방울을 달고 있는 것도 인상적이더군요.
왕자가 악인을 죽이는 마지막 장면. 표정 연기가 압권이다 |
까따깔리는 대부분 힌두신화를 바탕으로 한 이야기를 풀어내고 있는데, 이번 공연은 대서사시인 바하바라따(mahabharata) 중 일부로, 한 줄로 요약하자면 왕자의 부인을 겁탈하려는 힘 센 악인을 물리치는 이야기였어요. 스토리는 간단하지만, 배우들의 표정 연기는 대하 드라마 못지않더군요.
전통 음악이 깔리고 그 음악에 맞춰 시시각각 변하는 배우들의 세심한 표정과 섬세한 동작, 가끔 터지는 거침없는 괴성까지 흥미진진한 시간이었습니다. 막이 내렸는데도, 흥분을 가라앉히지 못하고 한참 동안 공연장에서 나가지 못하고 있었답니다.
까따깔리 배우처럼 메이크업 한번 해볼까?
눈을 사로잡은 까따깔리 메이크업 클래스 사진 |
아쉬움을 뒤로하고 나가려는 찰라, 사진 한 장이 저를 붙잡더군요. 까따깔리 배우처럼 분장한 여행자들 사진이었습니다. 물어보니, 까따깔리 배우처럼 분장해주는 메이크업 클래스가 있다는 것 아니겠습니까. 바로 다음 날로 예약, 메이크업 클래스를 받기로 했죠. 화장에 대해서는 아는 바가 거의 없지만, 얼마 전 웨딩 메이크업을 받아본 경험을 생각하며 용기를 냈습니다.
커다란 무대에 앉아 개인 강습을 받는 호사를 누렸다 |
다음 날 아침 10시. 관객 없는 무대는 썰렁하더군요. 신청자도 저밖에 없었고요. 운 좋게 개인 수업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메이크업 선생님인 닉슨 선생님은 학교에서 공연 메이크업을 배우고 수십 년간 까따깔리 분장 일을 하고 계신 전문가였습니다. 배우들에게 직접 메이크업을 해준 선생님이 가르쳐준다고 하니, 제대로 배워야겠다는 생각에 자세를 고쳐 잡게 되더군요.
본격적인 메이크업에 들어가기 전에 분장에 쓰이는 염료들을 어떻게 만드는지 자세히 설명해주었습니다. 모든 염료는 천연 재료를 사용하기 때문에, 진하게 화장을 해도 피부에 무리가 없다고 해요.
천연 재료들로 염료를 만들고 있는 과정 |
코코넛 껍질과 바나나 잎은 팔레트가 되고, 코코넛 잎 가운데 줄기는 붓이 되었습니다. 줄기 끝을 불에 태워 힘 있게 만들더군요. 그래야 잘 그려진다고요. 재료는 대부분 돌과 씨앗이었습니다. 오렌지색 광물인 마나욜라를 비롯해서, 빨간색을 내는 꿈꿈 등 신기한 재료들이 펼쳐졌습니다. 광물을 잘게 간 후에 코코넛 오일을 넣으니 물감처럼 묽어지더군요. 서예하기 전 공들여 먹을 갈듯, 얼굴에 색칠할 염료를 진지하게 만드는 모습도 흥미로웠습니다.
까따깔리 메이크업을 친절하게 가르쳐준 닉슨 선생님 |
까따깔리 메이크업 완성 |
드디어 저도 한 손에는 거울을 들고, 한 손에는 염료를 묻힌 코코넛 잎의 줄기를 들고 얼굴에 밑그림을 그리기 시작했습니다. 양쪽을 데칼코마니처럼 만들어야 하는데 쉽지 않았어요. 잘못 그리면 닉슨 선생님이 코코넛 오일로 지운 후에 다시 그려주었습니다. 몇 번 실패하고 나니, 조금 익숙해졌습니다. 선을 그린 후에는 면을 채울 차례. 색이 골고루 퍼지도록 면을 칠하는 것도 만만치 않았습니다. 과연 그림이 완성될까 싶었는데, 훌륭한 선생님 덕분에 변신에 성공하게 되었습니다. 1시간 30분 정도 걸렸을까요. 기대 이상으로 유쾌한 시간이었습니다.
인도 현지인들에게 받은 플래시 세례
까따깔리 메이크업 때문에 인도 현지인들에게 받은 플래시 세례 |
메이크업을 한 후 바로 지우기가 아까워 그대로 거리로 나왔습니다. 그때까지만 해도 몰랐습니다. 제가 그날 엄청난 플래시 세례를 받게 되리라는 것을요. 외국인이 까따깔리 분장을 하고 거리를 다니는 것이 신기했는지, 한걸음 걷기 힘들 정도로 인도 현지인들이 함께 사진을 찍자며 몰려들었습니다. 하필 그때가 인도 곳곳에서 수많은 이들이 코친을 방문할 때라 더했던 것 같아요. 코친에서 비엔날레가 열리고 있었거든요. 엉뚱한 저의 까따깔리 메이크업 도전 덕분에, 그렇지 않아도 후끈한 남인도 여행이 더욱 화끈해졌답니다. 어떠세요? 남인도에 가신다면 까따깔리 공연도 보고 메이크업 클래스도 도전해보는 것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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