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차 아이오닉 5 N 둘러본 소감
‘전기차가 가슴을 뛰게 하면서 가족과 편하게 탈 수 있다’
현대차가 고성능 전기차 아이오닉 5 N을 영국 굿우드에서 공개했다. 사진=현대자동차 |
현대차가 전기차 전환을 선언하면서 내세운 캐치프레이즈 ‘현대 모터 웨이(Hyundai Motor Way)'. 그 과감한 전환에 있어 중요한 축으로 현대차는 고성능차를 지목했다. 현대차가 모셔온 스타 엔지니어 알버트 비어만은 “전기차도 운전이 즐거울 수 있다”고 단언했다.
현대차의 N 디비전은 벨로스터, i20, i30, 아반떼 등 컴팩트카의 고성능 버전을 내놓으면서 시장의 호평을 받았다. 가장 빠르지는 않지만 운전하는 사람의 가슴을 뛰게 하는 짜릿함을 심어 매니아들을 설레게 했다. 엔진 회전수를 뜻하는 RPM이 아니라 심장 박동수를 뜻하는 BPM(Beats Per Minute)이란 단어도 던졌다.
운전하는 사람의 가슴을 뛰게 하는 요소는 여럿 있다. 조금만 운전대를 돌려도 날카롭게 반응하고, 브레이크를 밟으면 바로 속도를 줄이고, 가속페달을 밟으면 맹렬하게 튀어나가며, 그 과정에서 귀를 자극하는 엔진의 포효와 진동, 그리고 타이어의 비명이 들린다.
스포츠카 매니아들은 전기차를 싫어한다. 아무리 빠르고 잘 달리고 잘 서도 싫어한다. 무게중심이 낮고 전후륜 중량배분도 이상적으로 할 수 있어 밸런스 좋은 섀시를 만들 수 있는데도 싫어한다. 그 이유는 엔진 사운드와 무게다.
운전의 즐거움에 있어 사운드는 매우 중요한 요소다. 오른발로 가속페달을 밟으면 엔진이 토해내는 사운드와 진동은 운전자의 오감을 자극한다. 귀를 자극하는 짜릿한 배기음과 엔진 사운드, 온 몸에 전해져오는 엔진과 구동계의 진동은 운전자와 차가 하나가 되는 느낌을 준다.
여기에 고무가 타는 냄새와 기계에서 나오는 기름냄새까지 더해지면 아드레날린은 치솟는다. 그 오감을 자극하는 중요한 일을 하는 것이 엔진과 변속기다. 아래위로 심하게 흔들리는 수직운동을 바퀴를 굴리기 위해 회전운동으로 바꿔주고, 그 과정에서 엔진의 약점인 저속 토크를 보정해주기 위해 회전수를 맞춰주면서 동력을 전달하는 트랜스미션이 맞물려 돌아가면서 느껴지는 진동과 사운드는 지난 100여 년 동안 익숙해진 날것의 기계 그 자체다.
엔진과 변속기가 사라지고, 매끈하게 회전하는 전기모터가 크랭크축, 클러치, 기어 따위를 통하지 않고 바로 바퀴를 굴려주기 시작하면서 몸과 귀로, 오감으로 느끼는 스피드의 짜릿함이 사라졌다. 테슬라 모델S가 2초 만에 100km/h에 도달해도 감흥이 없다.
전기차에는 없는 오감을 자극하는 사운드와 진동을 구현
현대는 아이오닉 5를 내놓으면서 이 부분을 먼저 손댔다. 가상 사운드를 만든 것인데, 그 사운드가 그럴싸하도록 했다고 자랑했다. 엔진이 회전하는 것과 동일하게 소리를 만들어냈는데, 스포츠카가 기어를 바꿔가며 엔진 회전수가 달라지는 것까지 그대로 모사했다고 한다.
단순히 엔진 rpm만 오르락내리락 하는 것을 스피커로 들려주는 것이 아니다. 풀가속을 하면서 기어가 바뀔 때 움찔하는 기계적 동작까지 그대로 따라했다고 한다. 1단에서 2단으로 넘어갈 때 순간적으로 기어가 바뀌면서 약간의 변속충격이 있는데, 이를 모터 구동을 제어함으로써 그대로 구현했다는 것.
현대차 관계자에 따르면 이 ‘가짜(가상)’ 변속 로직을 현대차의 8단 DCT의 그것을 그대로 모사했다고 한다. 발표 영상을 보면 업쉬프트는 물론 코너 진입 전 속도를 줄일 때 기어를 내리면서 rpm이 오르락거리는 레브매칭까지 그대로 구현했다.
이 사운드를 안에서만 들을 수 있는 게 아니다. 현대는 두 개의 외장 스피커를 차량 앞 뒤 범퍼 근방에 장착해 밖에서도 엔진음과 배기 사운드를 들을 수 있도록 했다. 아이오닉 5 N이 공식 데뷔했던 영국 굿우드 스피드 페스티벌에 등장한 3대의 아이오닉 5 N이 오르막길을 올라갈 때, 기어가 바뀌면서 오르락내리락 하는 엔진 사운드가 들려왔다.
가상 사운드는 3개가 준비됐다. ‘이그니션(Ignition)’ 모드는 내연기관 N 차량의 2.0 터보 엔진 사운드를, ‘에볼루션(Evolution)’ 모드는 RN22e와 N 2025 그란투리스모의 사운드를 계승한 전기차 전용 사운드를, ‘슈퍼소닉(Supersonic)’ 모드에는 제트기 음속 돌파 시 발생하는 소닉 붐 사운드를 변속음에 구현했다.
현대차는 이 시스템을 가상 변속 시스템 ‘N e-쉬프트(N e-Shift)’와 가상 사운드 시스템 ‘N 액티브 사운드 플러스(N Active Sound+, NAS+)라고 소개했다.
무거워진 차체로 가볍게 돌아나가는 코너링 악동을 만든 비결
아이오닉 5 N의 하체는 빈틈이 없다. 사진=민준식 |
현대차가 N 브랜드를 내놓으면서 소개한 3대 핵심요소는 ▲코너링 악동(Corner Rascal, 곡선로 주행능력) ▲레이스 트랙 주행능력(Race Track Capability) ▲일상의 스포츠카(Everyday Sports Car)였다.
이 중 달리기 성능을 좌우하는 코너링과 트랙주행을 잘 하려면 차체가 튼튼하고 무게가 가벼워야 한다. 그런데 전기차는 배터리 무게 때문에 가벼울 수 없다. 코너링 악동을 표방하고 나온 아이오닉 5 N만 해도 공차중량이 2.2톤에 달한다고 한다.
결국 무거운 차체로 잘 달리도록 하려면 섀시와 구동계 전반에 걸친 고강도 보강이 필요하다. 외신 보도에 따르면 차체를 조립할 때 스팟 용접 포인트를 42곳 추가했고, 구조용 접착재 사용구간을 2미터 가량 늘렸다고 한다. 현대차는 ‘전륜 스트럿 링’, ‘서브프레임 스테이’ 등을 적용했고, 후륜 휠하우스 안쪽 차체를 보강해 비틀림 강성을 아이오닉5 대비 11% 늘렸다고 밝혔다.
무거운 차가 코너링을 하면 옆으로 받는 횡력을 잘 받쳐줘야 한다. 고속으로 험한 길에서 코너링을 거듭하는 랠리카는 특별 제작한 차축과 허브를 사용한다. WRC 랠리카에도 적용된 기능통합형 액슬(IDA, Integrated Drive Axle)이 그것인데, 아이오닉 5 N에는 전후륜 차축 모두 IDA가 적용됐다.
여기에 경량 단조휠이 적용됐다. 21인치에 달하는 거대한 휠은 IDA와 함께 오르락내리락 하는 바퀴와 서스펜션의 무게(현가하질량)을 줄여 더욱 정교한 서스펜션 컨트롤이 가능하도록 한다.
무거운 차제가 미끄러지지 않도록 하는 가장 큰 역할을 타이어가 담당한다. 아이오닉 5 N에 적용되는 타이어는 275/35 21인치에 달하는 초광폭 여름용 타이어로, 피렐리가 전용으로 개발한 전기차용 타이어 P-제로 모델이다.
조향응답성을 개선하기 위해 전동식 스티어링의 모터 출력을 높였고, 운전대를 조금만 돌려도 바로 반응하도록 스티러링 랙 기어비를 손봤다. 코너링과 트랙주행의 필수품인 브레이크도 대거 보강됐다. 전륜에는 400mm 직경의 대구경 디스크와 4피스톤 모노블록 캘리퍼가 적용됐으며, 언더커버 디퓨저, 냉각홀 등을 통해 공기 흐름을 최적화해 브레이크가 빨리 식도록 했다. 전후륜 모터의 회생제동 또한 강력한 제동력에 일조한다. 회생제동 하나 만으로도 최대 0.6g의 제동력이 나온다고 한다.
코너링 성능 향상을 위해 서스펜션 지오메트리도 손봤다. 차체가 50mm 넓어졌으며, 그 만큼 타이어도 밖으로 더 튀어나왔다. 트레드가 넓어지면 더 단단하게 받쳐줄 수 있어 횡가속 성능이 좋아진다.
고속으로 선회하면서 다시 속도를 높일 때, 무게가 쏠리지 않는 안쪽 바퀴는 접지력이 약해진다. 이 상태에서 동력이 전달되면 접지력이 약한 바퀴는 헛돌게 되고, 이 상황에서 차는 가속을 못 하기 때문에 스피드를 잃게 된다.
그래서 좌우 바퀴의 구동력을 같게 해주는 리미티드 슬립 디퍼렌셜이 스포츠카에는 필수 장착된다. 현대차 N 브랜드에 적용된 전자식 차동 제한장치(e-LSD)는 코너에서 차가 밖으로 밀리지 않도록 해준다.
여기에 현대차는 네 바퀴 구동력을 정밀 제어하는 다양한 기술도 탑재했다. 운전자가 앞 뒷바퀴 구동력 배분을 선택할 수 있고, ‘N 드리프트 옵티마이저(N Drift Optimizer)’를 통해 차를 미끄러트리는 드리프트 거동을 자유자재로 구사할 수 있다. 현대차는 굿우드 페스티벌에서 이 드리프트 거동을 직접 선보였다.
전기차로 서킷을 장시간 탈 수 있는 비결
드리프트를 하는 모습. 사진=현대자동차 |
전기차가 스포츠 주행에 적합하지 않다는 평을 듣는 이유는 또 있다. 배터리가 금새 소진되는 것은 물론, 반복적인 가혹주행을 하면 배터리가 과열된다. 화재로 이어질 수 있는 위험성 때문에 제조사들은 이 상황에서 모터 출력을 줄여버리기 때문에 공도용 전기차로 서킷 주행은 어렵다고 알려져 왔다.
아이오닉 5N의 최대출력은 10초 동안 쓸 수 있는 ‘N 그린 부스트(N Grin Boost, NGB)’를 사용했을 때 650마력에 달한다. 최대토크는 770N-m(78.5kg-m)에 달한다. 공식 제로백은 3.4초다. 평상시 모드에서는 609마력, 75.5kg-m의 출력을 낸다. 열관리를 위해 여러 가지 대책이 들어갔는데 가장 눈에 띄는 것은 듀얼 인버터와 배터리 관리 시스템이다.
아이오닉 5 N에 탑재된 고성능 후륜 모터는 2개의 인버터를 장착한 2-스테이지 모터 시스템이 적용돼 일상 주행 시에는 하나의 인버터가, 고속 주행 시에는 2개의 인버터가 모두 작동한다. 꼭 필요할 때만 최대출력을 끌어내기 위해 더 정교하게 전류를 컨트롤하는 것이다. 여기에 배터리 냉각을 위해 헤드램프 아래쪽 디자인을 공기가 추가로 유입될 수 있도록 변경해 냉각 면적을 늘리고 모터와 배터리 각각에 강화된 냉각 장치를 배치했다.
‘N 배터리 프리컨디셔닝(N Battery Preconditioning, NBP)’은 필요에 따라 배터리 온도를 높이거나 낮춰주는 기능이다. 여기에 스프린트(Sprint) 모드, 엔듀런스(Endurance) 모드로 구성된 ‘N 레이스(N Race)’ 기능을 적용했다.
스프린트 모드는 N 그린 부스트를 반복적으로 사용할 수 있고, 엔듀런스 모드는 긴 거리를 레이스모드로 주행할 수 있도록 배터리 온도를 관리한다. 티저 영상에서 21km에 달하는 뉘르부그크링 서킷을 최대속도로 달리고 나서 한 바퀴 더 타겠다고 외치는 드라이버의 자신감 뒤에 이 기능이 숨어 있었다.
일상의 편안한 주행이 가능한 N, 그 가치는?
사진=현대자동차 |
현대의 N 브랜드 차량은 일상주행을 하기에는 불편함이 있었다. 승차감은 너무 딱딱하고 진동소음이 컴포트를 지향하는 패밀리카로 쓰기에는 적당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특히 노면에서 올라오는 소음과 진동이 아쉬웠다.
아이오닉 5 N은 긴 휠베이스와 지면에서 멀리 떨어진 크로스오버 스타일의 차체, 직경이 큰 바퀴 등 노면소음을 차단할 수 있는 요소가 많이 있다. 여기에 기존 현대 전기차의 강점인 400V/800V 멀티 급속 충전 시스템, 차량 외부로 전원을 공급할 수 있는 V2L등 특화기능이 그대로 담겨있다.
커다란 차체와 긴 휠베이스 덕분에 실내공간은 넓고, 뒷자리를 접으면 성인 두 명이 누울 수 있는 공간도 나온다. 트랙에서 운전자를 지지해주기 위해 센터콘솔은 고정형으로 바뀌었고, N 차량 특유의 버킷시트도 적용됐다.
낮아진 버킷시트와 탑승자를 지지해주는 고정형 센터콘솔. 사진=현대자동차 |
시트 포지션이 낮고 무릎 부분이 많이 들려있는 이 시트는 F1 레이싱 드라이버의 시트 포지션에 가까운 착좌감을 제공한다. 무게를 줄이기 위함인지 전동식 파워시트는 과감히 삭제됐는데, 기존에는 없었던 통풍시트 기능이 추가된 점은 반갑다.
배터리 용량은 기본 77.4 kWh에서 84kWh로 늘어났다. 국내 주행거리 인증은 아직 나오지 않았지만 370km대로 예상된다. 판매가격은 보조금을 일부 받을 수 있는 8천만원 중후반대일 것으로 전해진다. 현대차는 아이오닉 5 N을 9월 중 국내에 먼저 출시하고, 곧이어 유럽시장에, 내년에 미국시장에 출시할 예정이다.
아이오닉 5 N을 국내에 사전 공개하는 자리에 나온 개발 엔지니어들은 자신감에 차있었다. 많은 질문과 답변이 오갔고, 기자들의 관심도 뜨거웠는데 한결같은 대답이 있었다. “타보시면 압니다!”
몇 년 전 알버트 비어만이 자신 있게 말하던 호언장담이 진짜일 것이라는 확신이 들고 있다. 차를 몰아보지는 않았지만 그가 말했던 BPM(심장의 박동 수)가 빨라지는 것을 이 날 느꼈기 때문이다.
교통뉴스 민준식 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