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는 장애인에 얼마나 친절할까
이제까지 이야기를 직접적으로 꺼내진 않았지만 지난 10월27일 애플의 이벤트에는 맥북 프로만 나온 게 아닙니다. 이날 키노트의 시작은 장애인에 대한 이야기였습니다. 애플은 이날부터 장애인을 위한 접근성 페이지를 개편했습니다. 우리나라 페이지도 열렸습니다.
접근성은 사실 우리에게 매우 낯선 개념입니다. 사실 개개인으로서는 접근성에 대해 알 필요가 없는 편이 좋겠지요.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질병, 혹은 사고 등으로 장애를 겪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다행인 것은 우리 사회가, 그리고 기술이 접근성에 대한 고민을 한다는 겁니다. 예전같으면 손이 불편하면 아예 컴퓨터를 쓰는 건 생각하기도 어려운 일이었을 겁니다. 이제 컴퓨터, 그리고 스마트폰, 태블릿은 장애인들이 그들의 한계를 극복하는 디딤돌이 되고 있습니다.
애플의 새 광고를 한번 볼까요? 이 광고가 TV에 나오는지는 모르겠습니다. 키노트 시작에 선보였던 영상입니다. 이 영상은 여러 장애를 겪고 있는 이들이 애플의 기기를 통해 불편을 극복하고 있다는 내용입니다. 실제로 영상의 주인공인 새디(Sady)는 맥과 파이널 컷 프로X으로 영상을 편집하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새디는 이 영상을 직접 편집하기도 했고, 화면 뒤로 흐르는 목소리의 주인공도 맡았습니다.
저는 사실 이날 쿠퍼티노에서 행사 입장을 기다리다가 새디를 잠깐 마주쳤습니다. 갑자기 사람들이 자리를 터주길래 누가 오나 했더니 전동 휠체어를 탄 사람이 지나가더군요. 옷깃만 스쳐도 인연이라던데 조금 뒤에 시작된 키노트 영상에 등장하는 걸 보고 ‘아!’ 소리가 절로 나왔습니다.
팀 쿡 CEO는 그리 길게 이야기하진 않았지만 장애인들에게 기기가 장애로 다가가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말을 했습니다. 그런 모습은 제가 직접적으로 겪지 않은 일이어서 덤덤하고 아름답게만 보일 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아주 가끔씩이지만 접근성과 관련된 기술들을 바라볼 때 ‘내 일이었다면 어떻게 쓸까?’라는 고민을 함께 해보기도 합니다. 그래도 이해할 수는 없겠지요.
다만 그들의 목소리를 듣는 건 아주 흥미로운 일입니다. 그리고 좀 더 많은 사람들이 이를 이해했으면 좋겠습니다. 애플은 지난 6월 WWDC에서 애플워치 OS3를 발표하면서 ‘운동’에 휠체어 타기를 넣었습니다. 당시에 키노트를 들으면서 뒷통수를 한 대 맞은 것 같은 느낌을 받았습니다. 우리에게는 한 발짝씩 떼는 게 걸음이지만 휠체어를 타는 장애인은 바퀴를 한 번 미는 ‘스트로크’가 걸음의 단위입니다. 이를 운동량에 포함하는 건 당연한 일이자, 손목에 차고 있는 애플워치로는 어쩌면 걸음 계산보다 더 정확하게 알아챌 수 있는 움직임이기도 합니다.
정말 겪어보지 않으면 상상도 못할 일이지만 그럼에도 접근성은 아주 중요한 개념입니다. 꽤 오래전 일이긴 한데, 장애인을 위해 저작권에 관계 없이 콘텐츠의 형태를 바꿀 수 있다는 마라케시 조약을 돌아보는 토론회에 참석했던 적이 있습니다. 그때 연세대학교 작업치료학과의 김종배 교수를 처음 만났습니다. 김조배 교수는 전자책이 주는 또 다른 가치를 아주 직관적으로 설명해주었습니다. 책은 아주 중요한 경험의 소재인데, 문제는 책을 읽는 방법이라는 겁니다. 우리가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하는 ‘책장 넘기기’가 누군가에게는 엄청난 장애물인 겁니다. 오디오북이나 전자책의 읽어주기 기능도 마찬가지입니다. 물리적인 장벽 때문에 책 읽기가 어려웠는데 전자책이 나오면서 독서량이 부쩍 늘고있다는 이야기도 들을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답답한 이야기도 있습니다. 예전에 구글이 어떤 일로 한 외국 학자를 한국에 초대한 적이 있습니다. 그는 시각 장애인이었는데 비행기를 타고 한국 땅을 밟자마자 진짜로 ‘맹인’이 되어버렸습니다. 그에게 구글 지도와 안드로이드의 접근성은 지팡이이자, 길을 안내해주는 또 다른 눈이었는데 한국에서는 구글지도와 관련된 기능이 하나도 작동하지 않다 보니 혼자서는 아무 것도 할 수 없게 된 것이지요. 지도 데이터 반출에 대한 논란이 끊이지 않지만 우리는 이런 부분도 고민의 중심에 넣어야 할 겁니다.
스마트폰은 누군가에게 눈이 되어주기도 하고, 귀가 되어주기도 합니다. 컴퓨터 화면을 통해서 세상을 들여다볼 수도 있지만 다른 한편으로 장애인들이 세상에 자연스럽게 뛰어들 수 있는 기회를 주기도 합니다. 앞서 이야기를 꺼낸 새디는 “이 질환이 내 삶에 어려운 도전 과제를 많이 안겨주긴 하지만, 저를 가로막지는 못해요”라고 말합니다. 누군가에세는 조금 어려울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과정만 조금 다를 뿐 불편을 갖고 있다고 해서 정보 제공이나 기회에 차별을 두면 안 될 겁니다.
더 많은 서비스들이 장애인에 대한 고민을 함께 했으면 좋겠습니다. 이는 기술적인 문제보다도 의지에 달린 문제일 겁니다. 눈이 안 보여도 가족 사진을 찍을 수 있고, 귀가 안 들려도 등산을 할 수 있습니다. 남들과 똑같이 일하고 결과물로 평가받을 수 있습니다. 물론 아직도 장애인들은 세상의 많은 부분에서 불편을 느낍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이런 접근성에 대한 고민과 노력들이 다름과 불편의 간극을 줄입니다. 버튼 하나가 세상을 바꿀 수 있는 것입니다.
글. 최호섭